정민선생의 한시미학산책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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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민선생의 한시미학산책 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많은 산수유기와 만나게 된다. 유기遺記는 산수를 향한 고인의 진지한 열정의 산물이니, 여기에는 자연 앞에 선 외경이 있고, 인간의 왜소를 돌아보는 겸허가 있다. 오늘날 이들 유기는 고작 수필의 대접밖에 못 받아 설 자리를 잃고 한문학 연구자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구도자의 심경이 되어 산수간을 노닐던 고인들의 그 헌활軒豁한 정신의 경계도 다시 만날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21. 실낙원의 비가 : 유선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난세를 살아가는 전전긍긍을 서글프게 노래하였다. 그러고 보면 저 죽립에서의 청담淸淡이란 것도 초세의 방약무인이기보다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안간힘에 가깝다 하겠다. 죽림이란 이때 현실의 폭력이 미치지 않는 정치적 진공지대에 다름 아닐 터이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목전의 상황에 매여 일회일비하는 가벼운 슬픔이 아니다. 이택후李澤厚가 ‘위대한 고독감’ 이라는 헌사를 바친 이런 시들에는 인생을 향한 깊은 관조와 달관이 있다. 비분강개 속에 인생의 갖은 신산을 겪으면서 오히려 인생을 더 깊이 바라보는 중후함을 얻은 듯하다.
현실의 억압은 개체의 삶을 질식시킨다. 그러나 개체들은 닫힌 세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반란을 꿈꾼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어떤 갈등도 존재치 않으며 모든 것이 조화롭고 충분한 세계는 진정 어디에도 없는가. 인생은 그렇듯이 슬프고, 인간은 그렇듯이 나약한 존재인가. 이러한 삶의 짙은 회의 속에서 시인들은 무의식의 저편에 저장된 언젠가 떠나온 곳,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것은 모든 것이 완벽한 꿈의 세계이다.
선계의 광경은 어떠한가. 앞의 「요지연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동원할 수 있는 상상력이란 상상력은 모두 한데 모아 엮는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선계의 형상은 현실에서의 억압이 역으로 투사되어, 열린 세계로의 비상을 꿈꾼 결과이다. 굼은 무의식의 체계이다. 인간의 의식이 한계에 도달할 때 무의식이 열린다. 무의식의 세계는 원초적 상징들로 가득 차 도달할 때 무의식이 열린다. 상징은 좌절되었던 본능적 충동을 만족시키려는 욕구와 관련된다. 이러한 상징들은 꿈을 통해 신비한 세계를 열어 보임으로써 현실에서 상처받고 왜소해진 자아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소생시켜준다.
유선시에서 하계는 하루살이만 득실대고, 풍파 잘 날이 없으며, 만 길이나 쌓인 먼지에 시야가 흐려지는 부정적인 공간으로 묘사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티끌만 자옥하고, 급류 속에 온갖 잡귀가 질주하며, 온갖 근심이 인간의 실존을 질식시키는 공간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그곳에서의 갈등을 떠올리고, 또 하계의 존재 양태를 무의미하고 왜소한 것으로 비하시킴으로써, 선계에서 노는 기쁨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려는 의식의 과정이다. 동시에 이는 현세의 갈등과 좌절에 대한 자기 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천상 광한전을 노닌 꿈을 깨고 나서도, 꿈속에서와 같은 득의의 시간이 현세에까지 지속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득의가 주어졌더라면 이들은 결코 선계를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하계에 대한 혐오감의 표현은 자아와 현실 사이에서 형성된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에 의한 양가감정ambivalence의 투영이다. 현실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선계가 미화되는 대신 하계의 모습은 일그러져 나타난다.
초월의 소망을 담은 유선의 행위가 현실의 새로운 비전과 연결되지 못한다 해서 선계를 향한 꿈 자체를 배격할 필요는 없다. 실현될 수 없다 해서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열망이 배격되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절망이요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유선의 과정에서 만끽한 인간 한계를 초월하는 해방감을 세속적 가치의 무의미함과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새삼 인식게 함으로써 현실의 불우와 모순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준다. 유선시는 ‘중세적 꿈꾸기’의 산물이다. 이러한 꿈꾸기는 허망한 몽상이나 환상이 아니다.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꿈을 꿀 수가 있다. 문학이 다만 실천의 도구일 때, 사회는 꿈을 꿀 자리를 잃어버린다. 꿈이 없을 때 사회 개조는 있을 수 없다.” 김현의 이 말은 바로 유선시에서 ‘중세적 꿈꾸기’가 갖는 의미를 매우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의 혈관 속에 내재해 있는 원초적 상징들을, 까맣게 잊고 있던 그 기호들을 유선시는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22. 시와 역사 : 시사와 사시
시는 당당히 역사 기록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다. 시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시의 거울 속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원망願望과 애환이 그대로 떠오른다. 한 편의 시는 방대한 사료로 재구성한 어떤 역사보다도 더 생생하다. 사람들은 이를 일러 시사詩史라 한다.
맹계孟棨가 『본사시本事詩』에서 두보의 시를 논하면서, “두보가 안록산의 난리를 만나 농촉 지방을 떠돌며 시에다 이때 일을 모두 진술하였다. 본 바를 미루어 숨겨진 것까지 이르러 거의 남김없이 서술하였으니 당시에 이를 일러 시사라 하였다”고 언급한 것이 시사란 말의 첫 용례이다. 간난의 피난 시절 두보는 기주 지방까지 떠돌며 많은 시를 남겼는데, 뒷사람들은 그곳에 시사당을 세워 두보의 화상을 걸어놓고 그의 시정신을 기리고 있다.
시사란 말은 시로 쓴 역사란 뜻이니, 그 본래 의미는 시인이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해서 시를 썼다는 말이 아니다. 앞서 본 임진왜란 당시의 시처럼 시인이 자신이 견문한 당시의 일을 시로 기록해둔 것이 뒷날 사료적 가치를 지니게 됨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즉 시를 읽으면 그 시대가 눈앞의 일처럼 낱낱이 펼쳐지니 그 시대가 어떠했는지를 알려면 굳이 역사책을 뒤질 것 없이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삼정의 문란을 말할 때, 당시 이를 증명하는 어떤 통계수치보다도 우리는 이 「애절양」한 편을 통해 그 시대 백성의 절규를 실감으로 듣게 된다. 시는 이렇게 해서 역사가 된다.
역사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도는 것이다. 누가 역사의 교훈을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시인들은 지나간 시대의 역사의 거울에 현재를 비추어보곤 한다. 예전 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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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8페이지
  • 등록일2006.06.24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6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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