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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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여성문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조선 전기 ․ 중기(14~16세기)의 여성 문학
1. 조선 전기의 여성 문학 : 다양한 작가 층과 품격 높은 시문학
2. 조선 중기의 여성 문학 : 전문적 여성작가의 대두와 소재의 전면 확대
3. 조선 후기 여성 문학 : 작가와 작품의 양산 및 문단 형성

Ⅲ. 나오며

본문내용

시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있다. 이각의 부인과 그 시에 관한 언급은 당시 일반 가정에서 글을 익히고 시를 지을 수 있었던 여성들이 상당수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최치운의 딸인 최씨도 남편에 대한 망부사 〈悼亡夫詞〉 : 봉황새 어울려 날며/ 봉새에 화답하며 즐겼는데/ 봉새 가고 아니 오니/ 황새 홀로 우는구나.
를 지었다. 최씨는 부친으로부터 시경 서경 효경을 배웠다는 김지용, 앞의 책, 584p.
기록이 있어 조선 초기부터 가학이 일반 가정에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성희의 딸이며 최당의 부인인 성씨, 정자순의 딸이며 정찬우의 부인인 정씨, 유여주의 부인 김벽임당 그리고,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등이 있다. 조선전기 문인으로는 문집을 가지고 있는 여성은 없어 전문적인 여성 문학인은 없는 듯 하다. 다만 문학 장르 중에서 한시만을 사대부가 여성들이 즐겨 공통적으로 한 두 편 읊조리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던 시대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신사임당은 한시뿐 아니라 서(書) 화(畵)에도 능한 조선 초기 여성 문화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사임당의 시는 몇 편 되지 않는다. 「踰大關嶺望親定」「思親」「落句」
그러나 그의 시를 많은 사람들이 애송했고, 칭친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세 편의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慈親鶴髮在臨瀛 어머님 백발 되어 임영땅에 계시는
身向長安獨去情 이 몸 홀로 서울 가는 마음이여
回首北坪時一望 머리 돌려 북평 땅 바라보니
白雲飛下募山靑 흰 구름 나는 밑에 저녁 산만 푸르네
千里家山萬疊峰 천리의 고향은 첩첩이 만봉으로 막히고
歸心長在夢魂中 가고 싶은 마음 꿈속에 끝없구나
寒松亭畔孤輪月 한송정 정자 가에 달빛만 외롭고
鏡浦臺前一陣風 경포대 앞에는 한바탕 바람이라
沙上白鷺恒聚散 모래 위 해오라비 모였다 흩어지고
波頭漁艇各西東 바다 멀리 물결 타고 고기 배 오가면
何時重踏臨瀛路 어느 때나 다시 임영 땅 밟아 볼까
綵服班衣膝下縫 어머니 슬하에서 비단 옷 꿰매리
夜夜祈向月 밤마다 달을 보고 비는 뜻은
願得見生前 생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고자 김명희 외, 『조선시대 여성문학과 사상』, 이회출판, 2003, pp17-18
사임당은 진사(進士) 신명화의 딸이며 일찍이 학자의 집안에서 자라나 엄격한 교훈 밑에서 유학의 경전과 명현들의 문집을 탐독하여 글과 자수와 그림과 서예에 뛰어난 재인이자 조선조 유학자 이율곡을 길러낸 현모양처의 사표다. 사임당은 연산 10년 1504에 출생하여 명종 6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사임당은 어머니 이씨로부터 삼강행실을 배우며 교육을 받아 조선 초기 혼례법에 따라 친정살이를 하게 된다. 사임담은 어머니 이씨와 함께 아들과 딸을 훈육하여 조선 초기 대 유학자 이율곡을 배출하는데 성공한 어머니 상이다. 그런 사임당이 어머니 곁을 떠나 시집으로 들어가면서 〈대관령 고개를 넘으며 踰大關嶺望親庭〉를 지어 친정을 떠나는 여성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었다.
대관령 고개를 넘으며 친정어머니 생각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효심이다. 그 다음 시도 임영 땅 강릉 어머니 계신 곳을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있다. <낙구 落句> 역시 어머니를 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뵈었으면 하는 여성의 정의(情意)를 나타내는 문학성에 감동하게 된다. 서강대 여성문학연구회, 『한국문학과 모성성』, 태학사, 1998, pp53-55
한편, 문사들과 교유하는 직업인 기녀들이 격조 높은 시조와 한시를 창작하게 된다. 이 시기의 시인으로는 조운(朝雲)과 황진이가 유명하다.
조운은 남곤의 정인(情人)이었고, 황진이는 전설적인 기녀 시인이다.
명월이라는 기명을 지닌 황진이는 뛰어난 자색과 시적 재능으로 한시와 시조를 창작하며 서경덕, 소세양 등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당대 풍류객들의 기를 눌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에 대한 문학적인 평가는 실로 대단하다. 그녀는 전문적인 가객이며 시인이라 할 수 있다. 황진이에 대한 논문과 연구는 다수 있다. 강전섭, 『황진이 연구』, 창학사, 1985 : 황진이의 인간됨과 문학관, 황진이 연구의 원류, 황진이 연구의 문헌자료선, 황진이 시조 영역시초 등이 총 정리 되어있다.
황진이는 개성의 자연을 특히 사랑했다. 특히 고려의 예술과 문화가 정겹게 남아있는 만월대를 사랑했고, 웅장한 박연폭포를 사랑했다. 고려의 수도인 송도 자체를 사랑하기도 했다. 고려는 그녀에게 영원한 휴식처요, 안식처며, 고향 같은 존재였다. 고려 왕조의 화려했던 꿈을 진이는 송악에 비겨 노래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 소세양을 더없이 사랑했다. 〈소세양을 보내며〉라는 시에서 소세양은 한양에서 황진이의 소문을 듣고 30일 기약으로 당대의 문사들과 어울리다가 돌아갔다. 돌아가는 판서를 보고 황진이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月下梧桐盡 오동잎 가을밤에 달 아래 떨어지고
霜中野菊黃 들국화 제철 만나 서리 속에 누렇구나
樓高天一尺 누대는 높이 솟아 하늘과 한 자 사이
人醉酒千觴 사람은 취해 있되 천만 술을 마셨구나
流水如琴冷 흐르는 물소리 거문고처럼 차갑고
梅花入笛香 피리소리 구성진 속에 매화는 향그럽다
明朝相別後 내일 아침 우리 이별하고 나면
情興碧波長 사무지는 정 길고 긴 물결처럼 끝없겠지 김명희, 「조선시대 여성 문학과 생활」,『조선시대 여성문학과 사상』, 이회, 2003, 19p
소세양은 황진이의 ‘아쉬움과 미련에 대한 솔직함을 토로하는’ 시를 듣고는 원칙주의 자로 소문이 무성했던 유학자였지만 하룻밤 더 머물 수 밖에 없었다는 고사에서 우리는 조선 명기 황진이의 예술성과 문학성과 재치에 판서라는 근엄한 성리학자인 남성이 패배를 당한 것이라고 역설할 수 있다. 기녀 황진이는 정인(情人) 소세양에게 바치는 한시를 두 편이나 더 지었다. 시조 문학의 대가인 황진이가 소판서와 같은 지체 높은 양반들을 상대할 때는 품격 높은 한시 장르를 통해 애정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어져 내일이여……’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로더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冬至ㅅ 기나긴 밤을……’ 冬至ㅅ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 니블 아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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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7.01
  • 저작시기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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