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 백석의 초기 생애 (1930-1936)
- 20代의 오랜 유랑과 다양한 경험
(2) 백석의 초기 문학 세계
(3) 백석의 중기 생애 (1936-재북 이전)
-만주에서의 생활과 달라진 시 세계
(4) 백석의 중기 문학 세계
(5) 백석의 후기 생애와 문학 세계
- 새로운 고향에서 (재북에서 사망까지)
3. 결론
4. 참고 문헌
2. 본론
(1) 백석의 초기 생애 (1930-1936)
- 20代의 오랜 유랑과 다양한 경험
(2) 백석의 초기 문학 세계
(3) 백석의 중기 생애 (1936-재북 이전)
-만주에서의 생활과 달라진 시 세계
(4) 백석의 중기 문학 세계
(5) 백석의 후기 생애와 문학 세계
- 새로운 고향에서 (재북에서 사망까지)
3. 결론
4. 참고 문헌
본문내용
1920년대의 문학정책은 끝났고, 일제는 이른바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였다. 정치적, 경제적인 억압은 물론이고 문학 활동도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 말에 이르면 문학 작품 창작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할 정도로 침체되었다. 가장 큰 영향은 1926년에 결성된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연맹)의 해체를 들 수 있다. 카프는 사회주의의 이념에 따라 계급주의 문학을 내세운 단체로, 대개의 작가들이 카프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동반자 계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사상 논쟁과 일본 경찰의 집요한 탄압 때문에 1935년 카프는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1920년대까지의 문학가는 계몽주의 입장이나 사회주의 입장에 동조하며 문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지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일제의 거듭된 탄압을 작가들로 하여금 이런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 문학 작품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련된 문장과 현실성 있는 내용전개, 섬세한 심리묘사 등으로 예술적 안성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1. 백석의 초기 생애 (1930-1936)
-20代의 오랜 유랑과 다양한 경험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白行)이다. 그는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아버지 백시박과 어머니 이봉우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석은 오산소학교와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백석은 가정 형편상 진학을 하지 못하고 1년간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문학공부를 하여 이듬해 1930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부분에 당선하게 된다. 이때 당선작의 제목은 『그 母와 아들』이었다. 이렇듯, 백석의 공식적인 문단활동은 시 분야에서 시작되지 않고, 소설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백석은 두 편의 창작소설과 세 편의 번역소설 말고는 거의 모든 힘을 시 창작에 쏟게 된다. 아무튼 신춘문예 당선 이후 백석은 정주에서 금광으로 부자가 된 계초 방응모의 후원으로 장학금을 받아 일본의 동경에 있는 청산학원에 입학한다. 이 때 백석의 나이는 19세였다. 그는 1930년 봄부터 1934년 봄까지 만 4년 동안 청산학원을 다녔고, 이곳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기독교적인 분위기의 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함으로써 이른바 서구적인 세계를 접하게 되는데 이는 후에 그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모더니즘 성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백석은 영어 이외에도 일본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에 이르기까지 어학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훗날 함흥의 영생고보 시절에 이론과 회화에 능통한 영어교사로 명성을 날린다. 백석은 졸업과 동시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 1934년 백석은 방응모 소유의 조선일보사 교정부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유형의 산문과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이런 과정을 거친 후 「定州城」을 비롯한 「山地」「주막」「비」「나와 지랭이」「여우난곬族」「통영」「힌밤」등의 시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1936년에 이르러 『사슴』이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100부 한정판으로 간행한다. 백석은 이 시집을 출간함으로써 우리 시사에 중요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주요 시인으로 평가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이렇듯 조선일보 시절은 그에게 내외적으로 많은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백석은 조선일보사에 안주하지 않고 1936년 4월 초순에 함흥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직장을 옮긴다. 함흥고보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의 연극반 활동과 축구부를 지도하는 활동을 겸했다. 이를 통해 백석은 시 뿐 아니라 소설, 수필, 번역, 연극 등 관심분야가 폭넓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1936년에서 1938년까지 약 2년간 함흥영생고보에 재직한 후 개인적시대적 이유로 다시 서울로 돌아와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재 입사하여 <여성>지 편집 일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여성>지의 편집일을 담당한 기간은 무척이나 짧아 채 1년도 못되어 그 해 말에 편집일을 사임하고 서울을 떠나 만주의 신경(현재의 장춘)으로 가게 된다. 백석의 초기 생애인 30년대는 개인적, 사회적 원인이 작용하였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20대의 대부분을 고향을 떠나 떠돌이로 보낸 셈이다. 이 시기 동안 유랑 아닌 유랑을 하며 특별히 항일운동을 하거나 그룹을 만들어 문학활동을 하거나 일제에 의해 직접적 탄압을 받은 일은 전혀 없다. 굵직한 일이 그에게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에는 간접적으로 그가 유랑(?)을 하며 겪은 시대의 모습과 내면적 갈등이 점차적으로 나타나 있다. 요컨대 일본에서의 유학, 기독교 문화와 서구문학의 만남, 봉건 유습과의 충돌, 신문사나 잡지사에서의 근무, 신식교육의 주체, 신문학과 신문화의 창출자, 만주나 간도로의 유랑 등의 다양한 체험이 바로 그것이다.
2. 백석의 초기 문학 세계
① 토속적인 서민정신
백석의 작품에 가장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토속적인 서민정신이다. 당시 30년대 모더니즘의 시단의 주요한 사조로 자리 매김 했던 상황을 염두 해 둔다면 백석의 이러한 시정신은 무척 독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토속적인 서민정신은 그의 성장환경에서 발현된 것으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약 20여 년을 고향에 머문 시간을 생각할 때 당연한 것이다. 백석은 자신의 삶에서 토대를 이루었고 동시에 체질화 된 원형질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드러냈다. 향토적이고 서민정신을 드러내는 요소로는 방언의 사용, 토속적 인물들의 등장이 있다. 특히 평범하고 순박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작품 속에 형상화 시켰다. 그의 대표작 「여우난곬族」을 살펴보자.
명절날나는 엄마아배따라 우리집개는 나를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있는 큰집으로가면
얼굴에별자국이솜솜난 말수와같이눈도껌벅거리는 하로에베한필을짠다는 벌하나건너집엔 복숭아나무가많은 新里고무 고무의 딸 李女 작은 李女
열여섯에 四十이넘은홀아비의 후처가된 포족족하니 성이잘나는 살빛이매감탕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깜안 예수장이마을 가까이사는 土山고무 고무의딸承녀 아들承동이
六十里라고해서 파랗게뵈이는山을넘어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된 코끝이
1920년대까지의 문학가는 계몽주의 입장이나 사회주의 입장에 동조하며 문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지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일제의 거듭된 탄압을 작가들로 하여금 이런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 문학 작품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련된 문장과 현실성 있는 내용전개, 섬세한 심리묘사 등으로 예술적 안성도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1. 백석의 초기 생애 (1930-1936)
-20代의 오랜 유랑과 다양한 경험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白行)이다. 그는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아버지 백시박과 어머니 이봉우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석은 오산소학교와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백석은 가정 형편상 진학을 하지 못하고 1년간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문학공부를 하여 이듬해 1930년 1월 <조선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부분에 당선하게 된다. 이때 당선작의 제목은 『그 母와 아들』이었다. 이렇듯, 백석의 공식적인 문단활동은 시 분야에서 시작되지 않고, 소설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백석은 두 편의 창작소설과 세 편의 번역소설 말고는 거의 모든 힘을 시 창작에 쏟게 된다. 아무튼 신춘문예 당선 이후 백석은 정주에서 금광으로 부자가 된 계초 방응모의 후원으로 장학금을 받아 일본의 동경에 있는 청산학원에 입학한다. 이 때 백석의 나이는 19세였다. 그는 1930년 봄부터 1934년 봄까지 만 4년 동안 청산학원을 다녔고, 이곳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기독교적인 분위기의 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함으로써 이른바 서구적인 세계를 접하게 되는데 이는 후에 그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모더니즘 성향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백석은 영어 이외에도 일본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에 이르기까지 어학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훗날 함흥의 영생고보 시절에 이론과 회화에 능통한 영어교사로 명성을 날린다. 백석은 졸업과 동시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 1934년 백석은 방응모 소유의 조선일보사 교정부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유형의 산문과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이런 과정을 거친 후 「定州城」을 비롯한 「山地」「주막」「비」「나와 지랭이」「여우난곬族」「통영」「힌밤」등의 시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1936년에 이르러 『사슴』이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100부 한정판으로 간행한다. 백석은 이 시집을 출간함으로써 우리 시사에 중요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주요 시인으로 평가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이렇듯 조선일보 시절은 그에게 내외적으로 많은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백석은 조선일보사에 안주하지 않고 1936년 4월 초순에 함흥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직장을 옮긴다. 함흥고보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의 연극반 활동과 축구부를 지도하는 활동을 겸했다. 이를 통해 백석은 시 뿐 아니라 소설, 수필, 번역, 연극 등 관심분야가 폭넓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1936년에서 1938년까지 약 2년간 함흥영생고보에 재직한 후 개인적시대적 이유로 다시 서울로 돌아와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재 입사하여 <여성>지 편집 일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여성>지의 편집일을 담당한 기간은 무척이나 짧아 채 1년도 못되어 그 해 말에 편집일을 사임하고 서울을 떠나 만주의 신경(현재의 장춘)으로 가게 된다. 백석의 초기 생애인 30년대는 개인적, 사회적 원인이 작용하였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20대의 대부분을 고향을 떠나 떠돌이로 보낸 셈이다. 이 시기 동안 유랑 아닌 유랑을 하며 특별히 항일운동을 하거나 그룹을 만들어 문학활동을 하거나 일제에 의해 직접적 탄압을 받은 일은 전혀 없다. 굵직한 일이 그에게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에는 간접적으로 그가 유랑(?)을 하며 겪은 시대의 모습과 내면적 갈등이 점차적으로 나타나 있다. 요컨대 일본에서의 유학, 기독교 문화와 서구문학의 만남, 봉건 유습과의 충돌, 신문사나 잡지사에서의 근무, 신식교육의 주체, 신문학과 신문화의 창출자, 만주나 간도로의 유랑 등의 다양한 체험이 바로 그것이다.
2. 백석의 초기 문학 세계
① 토속적인 서민정신
백석의 작품에 가장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토속적인 서민정신이다. 당시 30년대 모더니즘의 시단의 주요한 사조로 자리 매김 했던 상황을 염두 해 둔다면 백석의 이러한 시정신은 무척 독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토속적인 서민정신은 그의 성장환경에서 발현된 것으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약 20여 년을 고향에 머문 시간을 생각할 때 당연한 것이다. 백석은 자신의 삶에서 토대를 이루었고 동시에 체질화 된 원형질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드러냈다. 향토적이고 서민정신을 드러내는 요소로는 방언의 사용, 토속적 인물들의 등장이 있다. 특히 평범하고 순박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작품 속에 형상화 시켰다. 그의 대표작 「여우난곬族」을 살펴보자.
명절날나는 엄마아배따라 우리집개는 나를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있는 큰집으로가면
얼굴에별자국이솜솜난 말수와같이눈도껌벅거리는 하로에베한필을짠다는 벌하나건너집엔 복숭아나무가많은 新里고무 고무의 딸 李女 작은 李女
열여섯에 四十이넘은홀아비의 후처가된 포족족하니 성이잘나는 살빛이매감탕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깜안 예수장이마을 가까이사는 土山고무 고무의딸承녀 아들承동이
六十里라고해서 파랗게뵈이는山을넘어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된 코끝이
추천자료
[한국문학과 사회]꺼삐딴리 작품분석
'오만과 편견'에 대한 작품분석, 줄거리요약 및 나의독후감
디자인 요소 / 원리에 입각한 작품분석
[고전문학]죽부인전 - 작품분석, 연구사, 문학사적 위상
[고전문학]기재기이 - 안빙몽유록 연구 - 작품분석, 연구사
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작품분석과 지도론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의 작품분석과 수업 지도 방안에 대해
고골리(고골) - 외투 작품분석 및 작가소개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문학세계 및 각 작품분석
김훈의 '남한산성'에 대한 작품분석 및 서평
[한국문학과 사회,한국문학과 사회]무정 작품분석
황석영의 「바리데기」 디아스포라적 상상력과 초현실적 판타지를 통한 작품분석
[국어국문학과 A+과제]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 작품분석 및 감상
연암 박지원의 사상, 문학관, 연암 박지원의 작품분석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