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동기〕
〔해체〕
[개요]
[장왕과 問鼎經重]
[하희라는 여자]
[초나라에 관한 예화]
▒ 정적을 물리치는 법 ▒
▒ 질투심 많은 여자를 이용하라 ▒
〔레포트를 마치면서.....〕
〔해체〕
[개요]
[장왕과 問鼎經重]
[하희라는 여자]
[초나라에 관한 예화]
▒ 정적을 물리치는 법 ▒
▒ 질투심 많은 여자를 이용하라 ▒
〔레포트를 마치면서.....〕
본문내용
장왕에게 간청하여 데리고 살았는데 양로 역시 전쟁터에서 죽어 돌아왔다. 얼마 안가 그 아들 흑요가 하희에게 반하여 데리고 살았다.
그 하희에 대하여 은밀히 연정을 불태우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초장왕에게 간언하여 하희를 단념토록 하고, 장군 자반에게 충고하여 하희에게서 손을 떼게 했던 무신 바로 그 사람이었다.
무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희를 자기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궁리 끝에 우선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설득했다.
하희를 먼저 친정인 정나라로 보낸 후, 자신은 노나라와 치기 위해 제나라의 협력을 구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제나라에 사신으로 떠났는데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거기서 하희와 남은 여생을 함께 할 계획이었다.
무신은 초나라 왕족의 일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있었고 현대부로서 백성들의 추왕과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는데도 하희 라는 여자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다.
당시 하희의 나이는 아무리 젊게 계산해도 쉰 살은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나이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친정인 정나라에서 이미 삼각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그 때 나이 15세 전후 되었을 것이다. 그 후 진나라 하어숙에게 시집 갔으니 18~19세 정도였을 것이고, 아들 징서가 모욕을 느껴 진영공을 죽였으니까 아무리 어리게 보아도 징서 나이 17세쯤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희의 나이는 36~38세로 40을 바라보는 나이였을 것이다.
그 후 초장왕 17년의 필지지전에서 양로가 죽었고 초장왕 25년에 장왕이 죽고 무신이 제나라 사신으로 떠났으니 그 사이가 적어도 8년으로 하희가 무신의 계획에 따라 정나라로 떠났을 때는 50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2천6백 년쯤의 일이다. 그 당시는 현대와 달리 남녀가 다같이 일찍 늙었다고 보야야겠는데, 쉰 살의 하희가 모든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으니 보통 미녀는 아니었을 것이다. 희대의 요부(妖婦)라 할 것이다. 중국에서는「하희가 세 번이나 젊어졌다」는 말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정도다.
아무튼 무신이 제나라로 가려다 길을 바꿔 진나라로 들어가 제 발로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자 진 경공은 기꺼이 대부로 삼아 봉토를 주고 후대하였음은 물론이다.
무신의 배신행위가 초나라에 알려지자 모두를 격노케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길길이 날뛴 사람은 장군 자반이었다.
전에 자반이 장왕에게 하희를 달라고 했을 때 하희가 불길한 요부라 하여 반대를 한 자가 무신이 아닌가. 그런 자가 하희를 차지하기 위해 자반을 속이고 계획적으로 일을 꾸며 왔다니 피가 거꾸로 흐를 지경이었다.
마침내 자반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초나라에 남아 있던 무신의 일가친척을 모조리 죽이고 흑요까지 주살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무신의 친척들이 소유하고 있던 전답과 노예, 심지어 처첩까지 모조리 차지해 버렸다.
멀리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무신은 불같이 화를 냈다. 원래 배신자는 무신이었는데 그가 오히려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이 원수는 반드시 갚겠다. 내 반드시 자반 이놈을 사로잡아 갈갈이
그 하희에 대하여 은밀히 연정을 불태우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초장왕에게 간언하여 하희를 단념토록 하고, 장군 자반에게 충고하여 하희에게서 손을 떼게 했던 무신 바로 그 사람이었다.
무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희를 자기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궁리 끝에 우선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설득했다.
하희를 먼저 친정인 정나라로 보낸 후, 자신은 노나라와 치기 위해 제나라의 협력을 구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제나라에 사신으로 떠났는데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거기서 하희와 남은 여생을 함께 할 계획이었다.
무신은 초나라 왕족의 일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있었고 현대부로서 백성들의 추왕과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는데도 하희 라는 여자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다.
당시 하희의 나이는 아무리 젊게 계산해도 쉰 살은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나이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친정인 정나라에서 이미 삼각관계를 맺고 있었으니 그 때 나이 15세 전후 되었을 것이다. 그 후 진나라 하어숙에게 시집 갔으니 18~19세 정도였을 것이고, 아들 징서가 모욕을 느껴 진영공을 죽였으니까 아무리 어리게 보아도 징서 나이 17세쯤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희의 나이는 36~38세로 40을 바라보는 나이였을 것이다.
그 후 초장왕 17년의 필지지전에서 양로가 죽었고 초장왕 25년에 장왕이 죽고 무신이 제나라 사신으로 떠났으니 그 사이가 적어도 8년으로 하희가 무신의 계획에 따라 정나라로 떠났을 때는 50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2천6백 년쯤의 일이다. 그 당시는 현대와 달리 남녀가 다같이 일찍 늙었다고 보야야겠는데, 쉰 살의 하희가 모든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으니 보통 미녀는 아니었을 것이다. 희대의 요부(妖婦)라 할 것이다. 중국에서는「하희가 세 번이나 젊어졌다」는 말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정도다.
아무튼 무신이 제나라로 가려다 길을 바꿔 진나라로 들어가 제 발로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자 진 경공은 기꺼이 대부로 삼아 봉토를 주고 후대하였음은 물론이다.
무신의 배신행위가 초나라에 알려지자 모두를 격노케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길길이 날뛴 사람은 장군 자반이었다.
전에 자반이 장왕에게 하희를 달라고 했을 때 하희가 불길한 요부라 하여 반대를 한 자가 무신이 아닌가. 그런 자가 하희를 차지하기 위해 자반을 속이고 계획적으로 일을 꾸며 왔다니 피가 거꾸로 흐를 지경이었다.
마침내 자반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초나라에 남아 있던 무신의 일가친척을 모조리 죽이고 흑요까지 주살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무신의 친척들이 소유하고 있던 전답과 노예, 심지어 처첩까지 모조리 차지해 버렸다.
멀리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무신은 불같이 화를 냈다. 원래 배신자는 무신이었는데 그가 오히려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이 원수는 반드시 갚겠다. 내 반드시 자반 이놈을 사로잡아 갈갈이
추천자료
[방송대] 세계사 기말고사 완벽정리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의 고등교육기관
고려 무신정권의 성립 및 변천과 무신정권 붕괴의 역사적 의의
고려- 조선시대 교육사 요약정리
시경이란 무엇인가?
중국어 고사 레포트 (원본+해석본 5개)
유교 조사, 연구, 분석
고려-조선시대 교육사 요약 정리(한국 교육사)
서주의 봉건제
『장자』를 통해 본 노장사상
[한글 차, 한글 차 명언, 한글 차 고사성어, 한글 차 사자성어, 한글 차 한자성어, 한글 차 ...
채동번의 역사소설 『후한통속연의(後漢通俗演義)』 31회 32회 33회
[한국교육의 역사]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발전과정) -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