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악의 개념 및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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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례악의 개념 및 분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A. 연례악의 개념 및 역사
B. 연례악의 분류
C. 연례악의 실제

Ⅲ. 결론

Ⅳ. 참고문헌

Ⅴ. 부록
A. 연극 대본
B. 관련 기사
C. 역할 분담표
D. 발표용 파워포인트 자료

본문내용

용하여 삼현으로 삼았기 때문에, 통일 신라의 향악은 실제적으로 한민족의 향악기를 모두 잘 전승하였다. 신라 현악기의 등장은 6세기의 가야국의 우륵에 의해서 비롯되었다. 거문고가 삼국통일 직후에 신라사회에 수용되지 않고 중대 이후에나 신라 땅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신라사회의 가야금 수용과는 대조적으로 거문고는 오랜 시간을 거쳐서 신라땅에 수용되었지만 그 현악기가 결국 가야금 및 향비파와 함께 삼현의 하나로 신라사회에 정립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향악의 전통은 굳건히 자리잡고 후대에 전승될 수 있었다. 신라 삼죽의 악조 중에서 일부는 향악에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중국 당속악28조와 역사적으로 관련된다. 대금중금소금의 향악기에 당속악28조의 일부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통일신라의 귀족사회에 당악의 영향이 크게 미쳤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것은 음성서의 악공들이 일방적으로 당악에 압도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악을 자주적으로 삼죽에 수용한 증거이다. 통일신라의 악공들이 그 당시 막강했던 당악의 영향 아래서 삼죽과 삼현을 통해서 향악의 전통을 후대에 굳건히 물려줄 수 있는 자주적 문화수용역량을 가졌다는 사실이 음악사적 의미를 지닌다. 요컨대, 삼현과 삼현과 삼죽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의 향악은 신라 중대(654-779)와 하대(780-935)로 발전과정을 거쳤다. 삼국통일 전부터 혜공왕(765-779)까지 의 신라 중대에는 가야금이 신라 향악의 기둥이었고, 삼현과 삼죽은 서서히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다가 신라 하대에 이르면서 삼현과 삼죽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따라서 신라 중대에 의해서 연주되었던 악가무는 하대에 이르러 거문고와 향비파에 의해서 크게 확장되었다.
고려 전기의 향악은 향악기 및 사뇌삼국악양부악의 전통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거의 통일신라의 향악을 계승하였다. 고려 향악에 사용된 악기를 보면 신라의 향악과 같이 거문고가야금향비파대금중금소금대고박의 편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 밖에 당악연주에 사용된 장고가 새로이 곁들여졌다. 장고를 제외한 고려 전기의 향악은 신라의 향악과 같았는데, 장고가 고려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문종 때부터이면 이후 조선시대까지 당악과 향악 연주에 다같이 사용되었다.
고려의 향악은 조선시대까지 전하게 된다. 태종 2년(1402년) 6월에 예조와 의례상정소에서 제정한 용악 절차는 중종 5년(1501년)가지 계속된 듯한데, 고려 이전의 향악으로서 채택된 곡은 풍입송자하동금강성오관산방등산정읍동동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방등산은 백제 음악으로 전하고, 풍입송의 악보는 그 가사와 함께 ‘시용향악보’에 전한다. 세종대왕이 지은 보태평 중 여섯 번째 곡인 융화와 문소전연은전소경전 등 제향의 아헌악으로 쓰던 유황곡은 모두 풍입송에서 발췌한 곡이다. 이 유황곡과 융화는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비록 변질되었다 할지라도 고려시대 풍입송의 유음을 들을 수 있는 점에서 소중하다. 효자 문충이 그 노모의 늙어감을 탄식하며 지은 노래인 오관산은 중종 13년(1518년) 4월 기사조에 따르면 무고 정재의 창사인 정읍사로 바꾸어 쓴 바 있으며, 오관산은 이재현의 시가 ‘고려사’ 악지에 전한다. ‘경국대전’ 향악공 취재조에 의하면 한립별곡은 진작이상곡오관산자하동북전만전춘정읍 등의 곡과 함께 시험 과제곡으로 채택되었다.
2. 향악 계통의 연례악
(1) 수제천
정읍이라고도 불리는 이 곡은 원래 정읍사를 노래하던 음악으로 그 기원을 백제시대로 두는 사람도 있으나 불명하고 남려 계면조인 관계로 빗가락 정음(일명 횡지정읍)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 음악은 궁중의 각종 행사와 왕이나 왕세자의 거동 때도 사용되었으며, 정재의 처용무나 아박무의 반주 음악에도 쓰인다. 장단은 매우 불규칙하며 피리가 주선률을 연주하면 소금, 대금, 해금, 아쟁 등은 이를 받아 연주하는 연음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향피리2, 대금1, 해금1, 장고, 북1로 편성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은 넓은 무대에서 연주되는 관계로 아쟁과 당적 등의 악기가 추가되었으며 악기편성도 경우에 따라 가감된다.
음계는 남려가 주음이 되는 계면조로 배남려, 황, 태, 고, 임으로 구성되었다. 형식에 있어서는 초장은 2장에서 그대로 반복되며 2장은 3장에서 4도 위로 이조가 되었으며, 4장은 다시 원래의 조로 끝맺는다. 특히 이 곡은 1970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유네스코 아시아 음악제’ 전통 음악 분야에서 최우수곡으로 선정되어 세계적인 곡으로 인정된 바 있으며, 특히 피리의 요성에 이어서 불규칙적으로 굵게 떠는 주법은 여타의 다른 정악곡과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이며 장엄하고 화려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곡상이 마치 은근과 끈기를 지닌 우리 민족의 역사와 그 민족성을 대변해주는 듯한 불후의 명곡이다.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아마도 이 곡을 ‘아악곡의 백미’라고 일컫는 것이 아닌가한다.
(2) 동동
수제천을 빗가락 정읍이라 불렀듯이 세가락 정읍이라 불렀던 동동은 임종계면조이다. 현재 연주되는 동동은 뒤끝이 정읍과 같다. 빗가락, 세가락하는 것은 궁의 높고 낮음을 그렇게 부른 것이고, 정읍이라 한 것은 두 곡이 서로 변주관계이면서 동일 계통의 곡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동은 고려때부터 아박춤에 쓰였던 음악이고, 음악적인 면에서 만기, 중기로 구분된다. 중종 13년에 동동사가 정도전이 쓴 신도가로 바뀌었단 ‘고려사’악지, ‘악학궤범’, ‘대악후보’ 등에 악보가 전한다.
이 음악은 아박무의 반주음악으로도 쓰이었다. 아박을 들고 우두머리 2사람 외에 4사람에서 20사람까지 같이 추기도 한다. ‘고려사’악지는 이 춤의 이름이 동동으로 씌어져 있다.
(3) 영산회상
영산회상에는 세 가지 곡이 있는데 첫째는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영산회상, 둘째는 향피리 중심의 평조회상, 그리고 셋째는 관악기 중심의 삼현영산회상이다.
현재의 영산회상 곡들은 모두 기악곡으로 전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성악곡이었다. 세조 때 편찬된 ‘대악후보’에는 영산회상불보살이란 가사를 노래하던 단조로운 성악곡으로 원래는 상령산만 있었으나 후에 노래는 없어지고 기악곡화되면서 여러 가지의 파생곡이 생기게 되고, 도드리, 염불, 타령, 군악 등이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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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7.30
  • 저작시기2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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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60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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