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기생과 자기서사
2. 「기생 명선 자술가」
2.1 ‘드러내기’로서의 자기서사
2.2 절개의 주체로서의 ‘나’
2.3 진실 혹은 허구
3. 내 사랑 백석
3.1 ‘기억하기’로서의 자기서사
3.2 낭만적 사랑의 주인공으로서의 ‘나’
3.3 기억과 침묵
4..절개, 낭만적 사랑, 그리고 여성 자신
2. 「기생 명선 자술가」
2.1 ‘드러내기’로서의 자기서사
2.2 절개의 주체로서의 ‘나’
2.3 진실 혹은 허구
3. 내 사랑 백석
3.1 ‘기억하기’로서의 자기서사
3.2 낭만적 사랑의 주인공으로서의 ‘나’
3.3 기억과 침묵
4..절개, 낭만적 사랑, 그리고 여성 자신
본문내용
었고, 15세부터 기생영업을 시작하였다. 16세 되던 해에 사또의 계씨(季氏) 김진사 정병설 교수가 밝힌 바에 의하면 김진사는 나중에 임실현감을 지낸 김중집(金中集)이다. 정병설, 앞의 글.
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잠시 후 김진사는 서울로 떠났다. 명선은 이별의 고통 때문에 죽고 싶었으나 임신한 까닭에 죽지 못했고, 기생영업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고 한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서울로 데려가겠다던 그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며 괴로운 세월을 보내다가 아들을 낳았다. 얼마 후 김진사로부터 기별이 왔고 명선은 아들과 함께 서울로 갔다. 자술가 이하 기생 명선 자술가를 자술가로 생략해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본문에서의 원문인용은 필자가 적절히 현대표기로 바꾸었다.
의 자기서사는 여기서 끝이 난다. 이후 명선의 삶을 알 수는 없지만, 김진사의 첩으로서 여생을 보냈으리라 짐작된다.
명선의 인생은 얼핏 보기에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듯 여겨진다. 조선후기 서사한시나 야담, 일화, 소설에는 양반남성과의 사랑에 빠진 기생의 이야기가 흔히 등장하며, 현실에서 기생이 양반의 첩이 되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명선은 왜 자기서사의 글을 썼을까? 왜 김진사의 첩이 된 18세 무렵까지의 일만을 썼을까? 누구를 향해 썼을까?
명선이 자기서사의 글을 쓴 것은 김진사의 첩이 된 이후였다. 바로 직후였는지 혹은 한참 뒤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자술가는 명선의 서울 도착에서 끝나고 있다. 자기서사를 하던 당시의 명선은 실제로는 더 이상 기생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時點)에서 명선은 자기의 인생을 회고하고 재구성하며 그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더이상은 ‘기생이 아닌 현재의 명선’이, ‘기생이었던 과거의 명선’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명선은 자신의 과거를 ‘기생임을 끊임없이 스스로 부정해온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명선의 현재는 기생임을 부정해온 과거의 노력의 결과였다. 명선은 현재의 자신이 무척이나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우며 그만큼 과거 자신의 노력을 대견하게 여긴다. 명선은 자신을 성공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현재의 성공과 그것을 이룬 자기자신에 상당히 도취되어 있다. 명선은 자신의 성공을 남에게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 부정적인 과거와 그 극복을 위한 자신의 노력을 드러내었다. 명선에게 있어 부정적인 과거는 기생으로서의 삶이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절개를 고수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명선의 자기서사는 ‘기생이었지만 절개로써 사랑을 굳게 지켰고 끝내 행복을 쟁취한 여성’으로 자신을 그리고 있다.
사실 명선이 드러내고 싶은 자신의 성공담은 동류 기생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미 서울 양반사회의 주변부에 편입된 후에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명선이 양반독자를 염두에 두고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한 게 아님은 분명하다. 명선은 과거 자기와 동류였으나 현재는 더 이상은 동류가 아닌 기생들을 향해 자기서사를 하였다.
조선의 기생 중에서 자신의 기생임을 당당하게 긍정한 예는 매우 드물었다고 생각한다. 황진이는 그런 점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존재였다. 대부분의 기생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기생이 되었고, 기생의 신분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기생신분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 남성이 자신을 사랑하여 속량시켜주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기생들은 종종 양반남성과 사랑에 빠졌으며 일부 운이 좋은 경우는 양반의 첩이 됨으로써 기생신세를 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굳은 맹세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한 번 떠난 뒤 종무소식인 경우가 많았고 떠난 남자가 다시 돌아올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생여성이 무작정 남자를 기다린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기생은 관비였고, 관비로 남아있는한 수청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관습법에 저항하면서까지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한 기생의 일화는 인구에 회자되어 문헌에 기록되거나 칭양되기도 했다. 그만큼 드물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김만중의 단천절부시, 성해응의 전불관행, 김려의 사유악부에 등장하는 영산옥 같은 경우가 그 예가 된다. 단천절부시와 전불관행에 대해서는 박혜숙, 남성의 시각과 여성의 현실(민족문학사연구 //) 참조.
이들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떠나간 남자로부터 다시 기별이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명선의 경우는 일년이 지나 남자로부터 기별이 왔다. 그래서 명선의 성취는 더욱 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명선은 모든 기생들이 바라마지 않는 일이 바로 자신에게 일어난 데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동류들에게 드러내어 알리고자 한다. 그래서 자기서사를 다 마친 후 동류기생들을 향해 자신을 교훈으로 삼아 잘 처신하기를 당부하고 있기도 하다. 명선의 자술가는 이같은 자기 드러내기, 자기현시의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2.2 절개의 주체로서의 ‘나’
명선이 나름의 성공을 이룬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행운도 뒤따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남자가 신의를 지키지 않았더라면, 너무 늦게 기별이 왔더라면, 때마침 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들을 낳지 못했더라면 사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선은 자신의 성공이 거의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연유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명선은 자신이 평소 한 남자를 택해 그에 대한 절개를 지키려는 뜻을 품었으며, 그 ‘한 남자’를 알아보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었고,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절개를 지켜냈다고 서술하였다. 명선은 ‘절개의 주체’로서 자신을 형상화하며 여타의 측면은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서사는 자신이 바라는 특정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이미지화하게 마련인바, 명선은 자신을 ‘절개있는 여성’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는 셈이다.
절개있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자술가의 처음에서부터 명선은 기생의 삶을 부정일변도로 서술하고 있다. 여자의 본분은 남편을 공경하며 살림하는 것이건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을 배우게 된 것을 한탄했다. “거안졔미(擧案齊眉)여 죵일이죵(終日而終)은 여에 (常事)여날 이 각니 호부호모(呼父呼母) 계우 여 황원 가치고 져
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잠시 후 김진사는 서울로 떠났다. 명선은 이별의 고통 때문에 죽고 싶었으나 임신한 까닭에 죽지 못했고, 기생영업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고 한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서울로 데려가겠다던 그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며 괴로운 세월을 보내다가 아들을 낳았다. 얼마 후 김진사로부터 기별이 왔고 명선은 아들과 함께 서울로 갔다. 자술가 이하 기생 명선 자술가를 자술가로 생략해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본문에서의 원문인용은 필자가 적절히 현대표기로 바꾸었다.
의 자기서사는 여기서 끝이 난다. 이후 명선의 삶을 알 수는 없지만, 김진사의 첩으로서 여생을 보냈으리라 짐작된다.
명선의 인생은 얼핏 보기에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듯 여겨진다. 조선후기 서사한시나 야담, 일화, 소설에는 양반남성과의 사랑에 빠진 기생의 이야기가 흔히 등장하며, 현실에서 기생이 양반의 첩이 되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명선은 왜 자기서사의 글을 썼을까? 왜 김진사의 첩이 된 18세 무렵까지의 일만을 썼을까? 누구를 향해 썼을까?
명선이 자기서사의 글을 쓴 것은 김진사의 첩이 된 이후였다. 바로 직후였는지 혹은 한참 뒤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자술가는 명선의 서울 도착에서 끝나고 있다. 자기서사를 하던 당시의 명선은 실제로는 더 이상 기생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時點)에서 명선은 자기의 인생을 회고하고 재구성하며 그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더이상은 ‘기생이 아닌 현재의 명선’이, ‘기생이었던 과거의 명선’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명선은 자신의 과거를 ‘기생임을 끊임없이 스스로 부정해온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명선의 현재는 기생임을 부정해온 과거의 노력의 결과였다. 명선은 현재의 자신이 무척이나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우며 그만큼 과거 자신의 노력을 대견하게 여긴다. 명선은 자신을 성공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현재의 성공과 그것을 이룬 자기자신에 상당히 도취되어 있다. 명선은 자신의 성공을 남에게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 부정적인 과거와 그 극복을 위한 자신의 노력을 드러내었다. 명선에게 있어 부정적인 과거는 기생으로서의 삶이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절개를 고수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명선의 자기서사는 ‘기생이었지만 절개로써 사랑을 굳게 지켰고 끝내 행복을 쟁취한 여성’으로 자신을 그리고 있다.
사실 명선이 드러내고 싶은 자신의 성공담은 동류 기생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미 서울 양반사회의 주변부에 편입된 후에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명선이 양반독자를 염두에 두고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한 게 아님은 분명하다. 명선은 과거 자기와 동류였으나 현재는 더 이상은 동류가 아닌 기생들을 향해 자기서사를 하였다.
조선의 기생 중에서 자신의 기생임을 당당하게 긍정한 예는 매우 드물었다고 생각한다. 황진이는 그런 점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존재였다. 대부분의 기생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기생이 되었고, 기생의 신분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기생신분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 남성이 자신을 사랑하여 속량시켜주는 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기생들은 종종 양반남성과 사랑에 빠졌으며 일부 운이 좋은 경우는 양반의 첩이 됨으로써 기생신세를 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굳은 맹세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한 번 떠난 뒤 종무소식인 경우가 많았고 떠난 남자가 다시 돌아올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생여성이 무작정 남자를 기다린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기생은 관비였고, 관비로 남아있는한 수청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관습법에 저항하면서까지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한 기생의 일화는 인구에 회자되어 문헌에 기록되거나 칭양되기도 했다. 그만큼 드물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김만중의 단천절부시, 성해응의 전불관행, 김려의 사유악부에 등장하는 영산옥 같은 경우가 그 예가 된다. 단천절부시와 전불관행에 대해서는 박혜숙, 남성의 시각과 여성의 현실(민족문학사연구 //) 참조.
이들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떠나간 남자로부터 다시 기별이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명선의 경우는 일년이 지나 남자로부터 기별이 왔다. 그래서 명선의 성취는 더욱 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명선은 모든 기생들이 바라마지 않는 일이 바로 자신에게 일어난 데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동류들에게 드러내어 알리고자 한다. 그래서 자기서사를 다 마친 후 동류기생들을 향해 자신을 교훈으로 삼아 잘 처신하기를 당부하고 있기도 하다. 명선의 자술가는 이같은 자기 드러내기, 자기현시의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2.2 절개의 주체로서의 ‘나’
명선이 나름의 성공을 이룬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행운도 뒤따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남자가 신의를 지키지 않았더라면, 너무 늦게 기별이 왔더라면, 때마침 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들을 낳지 못했더라면 사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선은 자신의 성공이 거의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연유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명선은 자신이 평소 한 남자를 택해 그에 대한 절개를 지키려는 뜻을 품었으며, 그 ‘한 남자’를 알아보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었고,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절개를 지켜냈다고 서술하였다. 명선은 ‘절개의 주체’로서 자신을 형상화하며 여타의 측면은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서사는 자신이 바라는 특정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이미지화하게 마련인바, 명선은 자신을 ‘절개있는 여성’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는 셈이다.
절개있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자술가의 처음에서부터 명선은 기생의 삶을 부정일변도로 서술하고 있다. 여자의 본분은 남편을 공경하며 살림하는 것이건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을 배우게 된 것을 한탄했다. “거안졔미(擧案齊眉)여 죵일이죵(終日而終)은 여에 (常事)여날 이 각니 호부호모(呼父呼母) 계우 여 황원 가치고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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