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좌·우익 논쟁
1. 좌익 문단 - 김기림을 중심으로
2. 우익 문단 - 서정주를 중심으로
3. 중간파 - 김광균을 중심으로
4. 우익 문단의 평정
Ⅲ. 순수시론과 모더니즘시론
1. 조지훈
1) 순수문학론과 민족문학론
2) 고전주의적문학론
2. 박인환
3. 조향
Ⅳ. 결론
§ 참고문헌 §
Ⅱ. 좌·우익 논쟁
1. 좌익 문단 - 김기림을 중심으로
2. 우익 문단 - 서정주를 중심으로
3. 중간파 - 김광균을 중심으로
4. 우익 문단의 평정
Ⅲ. 순수시론과 모더니즘시론
1. 조지훈
1) 순수문학론과 민족문학론
2) 고전주의적문학론
2. 박인환
3. 조향
Ⅳ. 결론
§ 참고문헌 §
본문내용
수시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전통의 파악이란 물론 지난날의 모방, 재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구의 자식을 낳는 것을 창조라 부르고 조상과 같은 완전한 자식을 낳는 것을 모방이라 한다면 우리는 단연ㅎ고 후자를 취함으로써 참된 창조의 자랑을 가질 것입니다. 위의 글.
마지막으로 순수시의 개념은 민족시로 발전한다. 민족시는 세계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내용에 있어서나 형식에 있어서 완전한 민족시로서의 전통을 이룬 다음에 세계시의 일원이 될 수 있은 것이라고 말한다. 단, 전통이란 과거의 모방재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조상과 같은 완전한 자식을 낳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민족시의 방향은 「순수시의 지향」에서 더 자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시론에서는 민족시를 말하기 전에 먼저 시 자체를 알아야 하며 민족시로서 세계시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순수시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인은 민족시를 말하기 전에 그냥 시 자체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시가 된 다음 그것이 민족시도 되고 세계시도 도리 수 있는 것이므로 시의 전통이 확립되지 못한 이 땅의 시가 민족시로서 세계시에 가담하기 위하여서 먼저 일어날 것은 순수시 운동이 아닐 수 없다. 순수시의 운동은 곧 시의 본질적 계몽운동인 동시에 그의 발전이 그대로 민족시의 수립이기 때문이다. 조지훈, 「순수시의 지향 - 민족시를 위하여」, 『한국현대대표시론』, 태학사, 2000.
「해방시단의 과제」에서도 말했듯이 그가 말하는 순수시는 공리성을 부정하는 시, 시가 시로서 가진 바 그 본질의 가치와 사명을 자각하는 시, 자율성을 강조하는 시이다. 이승훈, 앞의 책, p.151.
그는 정치나 사상적이 주가 되지 않고, ‘시에서 출발할 때’만 시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 고전주의적문학론
조지훈이 지니고 있던 시의 예술성에 대한 신념은 ‘시정신의 옹호’라는 관념적인 주장으로 귀결되는 것이었으나, 이데올로기의 지향이 비슷했던 상황 속에서 거기에 대응하고자 했던 문학인의 자세를 생각할 경우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시 이외의 다른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성만으로는 시로서의 본질을 살려낼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결국 당시 문단의 당파적 논쟁에 자연스럽게 휩쓸리게 되었고, 조지훈 자신은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민족진영의 앞자리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최승호 편, 『조지훈』, 새미, 2003, p.85 참고.
「현대시의 문제」에서 조지훈은 현대와 현대시, 현대주의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론에 의하면 “현대는 아직 정립된 내용이 없는 혼돈한 1950년대의 단순한 현대일 따름이며 시대정신이 없고 커다란 사조가 없는 것은 현대의 성격은 될지언정 현대의 정신은 아닌 것”이라고 했다. 또 “현대시는 고대시를 계승하여 고대시를 부정하는 ‘현대의 시’이며 고전시에 항거하면서 새로운 고전을 형성하려는 ‘현대적 시’여야 하며 현대성의 일면을 고집하는 모더니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주의에 대해서’라는 소제를 통해 50년대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있다.
구미(歐美)의 50년전 모더니즘을 우리 나라에 없는 것이라 해서 새롭다고 자처한다면 차라리 모더니즘을 스스로 포기하여 마땅할 것이다. (중략) … 오늘 이 땅의 모더니즘은 기성권위에 반항하는 문학적 정열이 약하고 그 공동전선이 너무 전조하다. 의욕이 강렬하기는커녕 너무 안이해서 소위 전통파에 주는 자극과 기여가 전연 없다. 부질없는 변명과 비루한 공격 이전에 자가반성이 먼저 있어 마땅하다. 조지훈, 「현대시의 문제」, 『조지훈 전집 3권』, 일지사, 1973.
그의 견해에 의하면 18세기 고전문학 정통파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낭만주의가 ‘근대파’란 이름의 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파의 시대파와 길항(拮抗)에서 시대파를 지칭하는 말’로 규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더니즘의 생명은 새롭다는 점에 있다. 이승훈, 앞의 책, p.160.
최남선이나 이상의 예를 들면서 당시 현대시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모더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의 시가 단지 문학사의 자료로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과, 전통의 수립이나 전통의 환원에 대한 노력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순수한 시정신민족성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으며, 민족문학의 과제로서 고전주의적 문학의 확립을 주장하였다.
2. 박인환
박인환은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으로 등단해 1947년에 김경린을 찾아가 모더니즘 운동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때 다음과 같은 구체적 운동 지침을 제안하는데 그 내용은 첫째, 이데올로기는 비판 할 수 있어도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예속되는 문학을 하지 않는다. 둘째, 과학 문명에 의한 인간의 불안의식을 도시사회 속에서 지적인 현대 정신으로 관찰하며 거기에서 시적인 이미지를 도출한다. 셋째, 표현 방법으로는 이미지즘에 역동을 가미한 보티시즘(vorticism)을 더욱 발전시키되 시적 언어의 참신성은 물론 언어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외래어도 적절히 활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박혜숙, 『한국 현대시 흐름의 양면탐구』, 국학자료원, 2001, p.315.
그리하여 1948년 『신시론 1집』을 내고, 49년에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게 되었다. 박인환이 남긴 시에 대한 견해는 앞서 말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과 『선시집』, 또는 그의 몇 편 산문에서 나타나는 단편적인 내용이 전부이다. 유재천, 『박인환론』, 1989, p.218.
그러나 이 두 편의 글이 그나마 32살이라는 나이에 요절해버린 박인환의 현실에 대한 생각이나 시를 쓰려는 목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박인환이 후반기 동인으로써 본격적인 시론을 전개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1949년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실린 글이다.
나는 불모의 문명 자본과 사상의 불균정한 싸움속에서 시민정신에 이반된 언어작용만이 어리석음을 깨달았었다. 자본의 군대가 진주한 시가지는 지금은 증오와 안개낀 현실이 있을 뿐......(중략)
...그러나 영원의 일요일이 내 가슴속에 찾어든다. 그럴때에는 사랑하든 사람과 시의 산책의 발을
전통의 파악이란 물론 지난날의 모방, 재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구의 자식을 낳는 것을 창조라 부르고 조상과 같은 완전한 자식을 낳는 것을 모방이라 한다면 우리는 단연ㅎ고 후자를 취함으로써 참된 창조의 자랑을 가질 것입니다. 위의 글.
마지막으로 순수시의 개념은 민족시로 발전한다. 민족시는 세계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내용에 있어서나 형식에 있어서 완전한 민족시로서의 전통을 이룬 다음에 세계시의 일원이 될 수 있은 것이라고 말한다. 단, 전통이란 과거의 모방재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조상과 같은 완전한 자식을 낳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민족시의 방향은 「순수시의 지향」에서 더 자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시론에서는 민족시를 말하기 전에 먼저 시 자체를 알아야 하며 민족시로서 세계시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순수시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인은 민족시를 말하기 전에 그냥 시 자체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시가 된 다음 그것이 민족시도 되고 세계시도 도리 수 있는 것이므로 시의 전통이 확립되지 못한 이 땅의 시가 민족시로서 세계시에 가담하기 위하여서 먼저 일어날 것은 순수시 운동이 아닐 수 없다. 순수시의 운동은 곧 시의 본질적 계몽운동인 동시에 그의 발전이 그대로 민족시의 수립이기 때문이다. 조지훈, 「순수시의 지향 - 민족시를 위하여」, 『한국현대대표시론』, 태학사, 2000.
「해방시단의 과제」에서도 말했듯이 그가 말하는 순수시는 공리성을 부정하는 시, 시가 시로서 가진 바 그 본질의 가치와 사명을 자각하는 시, 자율성을 강조하는 시이다. 이승훈, 앞의 책, p.151.
그는 정치나 사상적이 주가 되지 않고, ‘시에서 출발할 때’만 시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 고전주의적문학론
조지훈이 지니고 있던 시의 예술성에 대한 신념은 ‘시정신의 옹호’라는 관념적인 주장으로 귀결되는 것이었으나, 이데올로기의 지향이 비슷했던 상황 속에서 거기에 대응하고자 했던 문학인의 자세를 생각할 경우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시 이외의 다른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성만으로는 시로서의 본질을 살려낼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결국 당시 문단의 당파적 논쟁에 자연스럽게 휩쓸리게 되었고, 조지훈 자신은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민족진영의 앞자리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최승호 편, 『조지훈』, 새미, 2003, p.85 참고.
「현대시의 문제」에서 조지훈은 현대와 현대시, 현대주의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론에 의하면 “현대는 아직 정립된 내용이 없는 혼돈한 1950년대의 단순한 현대일 따름이며 시대정신이 없고 커다란 사조가 없는 것은 현대의 성격은 될지언정 현대의 정신은 아닌 것”이라고 했다. 또 “현대시는 고대시를 계승하여 고대시를 부정하는 ‘현대의 시’이며 고전시에 항거하면서 새로운 고전을 형성하려는 ‘현대적 시’여야 하며 현대성의 일면을 고집하는 모더니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주의에 대해서’라는 소제를 통해 50년대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있다.
구미(歐美)의 50년전 모더니즘을 우리 나라에 없는 것이라 해서 새롭다고 자처한다면 차라리 모더니즘을 스스로 포기하여 마땅할 것이다. (중략) … 오늘 이 땅의 모더니즘은 기성권위에 반항하는 문학적 정열이 약하고 그 공동전선이 너무 전조하다. 의욕이 강렬하기는커녕 너무 안이해서 소위 전통파에 주는 자극과 기여가 전연 없다. 부질없는 변명과 비루한 공격 이전에 자가반성이 먼저 있어 마땅하다. 조지훈, 「현대시의 문제」, 『조지훈 전집 3권』, 일지사, 1973.
그의 견해에 의하면 18세기 고전문학 정통파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낭만주의가 ‘근대파’란 이름의 모더니즘이었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전통파의 시대파와 길항(拮抗)에서 시대파를 지칭하는 말’로 규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더니즘의 생명은 새롭다는 점에 있다. 이승훈, 앞의 책, p.160.
최남선이나 이상의 예를 들면서 당시 현대시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모더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의 시가 단지 문학사의 자료로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과, 전통의 수립이나 전통의 환원에 대한 노력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순수한 시정신민족성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으며, 민족문학의 과제로서 고전주의적 문학의 확립을 주장하였다.
2. 박인환
박인환은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으로 등단해 1947년에 김경린을 찾아가 모더니즘 운동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때 다음과 같은 구체적 운동 지침을 제안하는데 그 내용은 첫째, 이데올로기는 비판 할 수 있어도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예속되는 문학을 하지 않는다. 둘째, 과학 문명에 의한 인간의 불안의식을 도시사회 속에서 지적인 현대 정신으로 관찰하며 거기에서 시적인 이미지를 도출한다. 셋째, 표현 방법으로는 이미지즘에 역동을 가미한 보티시즘(vorticism)을 더욱 발전시키되 시적 언어의 참신성은 물론 언어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외래어도 적절히 활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박혜숙, 『한국 현대시 흐름의 양면탐구』, 국학자료원, 2001, p.315.
그리하여 1948년 『신시론 1집』을 내고, 49년에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게 되었다. 박인환이 남긴 시에 대한 견해는 앞서 말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과 『선시집』, 또는 그의 몇 편 산문에서 나타나는 단편적인 내용이 전부이다. 유재천, 『박인환론』, 1989, p.218.
그러나 이 두 편의 글이 그나마 32살이라는 나이에 요절해버린 박인환의 현실에 대한 생각이나 시를 쓰려는 목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박인환이 후반기 동인으로써 본격적인 시론을 전개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1949년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실린 글이다.
나는 불모의 문명 자본과 사상의 불균정한 싸움속에서 시민정신에 이반된 언어작용만이 어리석음을 깨달았었다. 자본의 군대가 진주한 시가지는 지금은 증오와 안개낀 현실이 있을 뿐......(중략)
...그러나 영원의 일요일이 내 가슴속에 찾어든다. 그럴때에는 사랑하든 사람과 시의 산책의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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