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머리말
Ⅱ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 -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Ⅲ 빗살무늬 토기 - 바닥이 뾰족한 그릇
Ⅳ 움집 - 최초의 집
Ⅵ 불 피우는 방법
Ⅶ 맺음말 - 암사동 선사유적지 관람기
Ⅱ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 -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Ⅲ 빗살무늬 토기 - 바닥이 뾰족한 그릇
Ⅳ 움집 - 최초의 집
Ⅵ 불 피우는 방법
Ⅶ 맺음말 - 암사동 선사유적지 관람기
본문내용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정문과 움집, 그리고 선사유적지의 대표 출토유물인 빗살무늬토기 쓰레기통은 여전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전시실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는 마음에 전시실부터 가보기로 했다. 전시실 내부는 벽화로 장식되었고,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상세하게 그려놓았다. 또 움집의 내부에는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고, 움집의 중앙 화덕자리에는 불을 피워 아버지가 강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굽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는 뼈바늘로 가죽 옷을 꿰매고 있어 풍요롭고 평화로운 가족의 한 때를 볼 수 있었다.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빗살무늬 토기는 조각난 조각을 복원작업을 통해 복원해 두었는데 예전, 기원전 3~4천년 전의 것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잘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는 것이지만 어떻게 그 옛날 흙으로 토기를 만들 생각을 했으며 불로 구워 단단하게 사용 할 생각을 했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오랜만에 찾아가 본 선사유적지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매장풍습에 대해서도 재연해 놓았고 마네킹을 사용하여 이해를 돕고 있어서 예전의 삭막함은 찾을 수 없었다. 또 빗살무늬 토기 외에는 접하지 못했던 가지무늬 토기와 덧무늬 토기도 접할 수 있었다. 빗살무늬 토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사진으로만 보던 것이라 매우 흥미로웠고 지금까지 전시관 아래 움집터가 실제 움집터에 경화처리를 한 것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여태 플라스틱 모형인줄로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제 이 쪽 분야를 내가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전에는 갈판이나, 갈돌도 ‘어디서 주워와 도토리 갈 때 썼겠지’ 하고 건성으로 넘겼었는데, 이제는 그 당시엔 너무나도 획기적인 도구였으리라 생각이 되고, 이걸 ‘이용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이걸 사용하기 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전시 되어있는 토기와 화살촉, 벽화도 쉽사리 지나치지 못했다. 갑자기 돌덩이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것이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선사시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었는데 그들이 생활상이 상상이 된다. 예전 같았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나왔을 텐데 말이다. 이번처럼 전시관을 열심히 본 건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이 갔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관심이 없었고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맞지 싶다. 그렇기에 수도 없이 본 것이지만 지금까지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새로운 느낌이다.
흔히 원시인들의 무식함만을 조롱하고 현재의 우리가 그들에 비해 겉모습이 그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하시키고 현재의 우리의 모습에 우월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는데 우리의 근본을 찾지 못하고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생각한다. 신석기인들은 처음으로 우리가 정착생활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나는 이런 존경스러운 우리의 조상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빗살무늬 토기는 조각난 조각을 복원작업을 통해 복원해 두었는데 예전, 기원전 3~4천년 전의 것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잘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는 것이지만 어떻게 그 옛날 흙으로 토기를 만들 생각을 했으며 불로 구워 단단하게 사용 할 생각을 했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오랜만에 찾아가 본 선사유적지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매장풍습에 대해서도 재연해 놓았고 마네킹을 사용하여 이해를 돕고 있어서 예전의 삭막함은 찾을 수 없었다. 또 빗살무늬 토기 외에는 접하지 못했던 가지무늬 토기와 덧무늬 토기도 접할 수 있었다. 빗살무늬 토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사진으로만 보던 것이라 매우 흥미로웠고 지금까지 전시관 아래 움집터가 실제 움집터에 경화처리를 한 것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여태 플라스틱 모형인줄로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제 이 쪽 분야를 내가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전에는 갈판이나, 갈돌도 ‘어디서 주워와 도토리 갈 때 썼겠지’ 하고 건성으로 넘겼었는데, 이제는 그 당시엔 너무나도 획기적인 도구였으리라 생각이 되고, 이걸 ‘이용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이걸 사용하기 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전시 되어있는 토기와 화살촉, 벽화도 쉽사리 지나치지 못했다. 갑자기 돌덩이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것이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선사시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었는데 그들이 생활상이 상상이 된다. 예전 같았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나왔을 텐데 말이다. 이번처럼 전시관을 열심히 본 건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이 갔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관심이 없었고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맞지 싶다. 그렇기에 수도 없이 본 것이지만 지금까지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새로운 느낌이다.
흔히 원시인들의 무식함만을 조롱하고 현재의 우리가 그들에 비해 겉모습이 그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하시키고 현재의 우리의 모습에 우월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는데 우리의 근본을 찾지 못하고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생각한다. 신석기인들은 처음으로 우리가 정착생활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나는 이런 존경스러운 우리의 조상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