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여우난골족
- 시 전문
1. 이해하기
2. 확장하기
3. 활동하기
Ⅲ.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시 전문
1. 이해하기
2. 확장하기
3. 활동하기
Ⅳ. 나오는 말
Ⅱ. 여우난골족
- 시 전문
1. 이해하기
2. 확장하기
3. 활동하기
Ⅲ.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시 전문
1. 이해하기
2. 확장하기
3. 활동하기
Ⅳ. 나오는 말
본문내용
백석의 「여우난골족」,「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차 례 -
Ⅰ. 들어가는 말
Ⅱ. 여우난골족
- 시 전문
1. 이해하기
2. 확장하기
3. 활동하기
Ⅲ.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시 전문
1. 이해하기
2. 확장하기
3. 활동하기
Ⅳ. 나오는 말
Ⅰ. 들어가는 말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뿐만 아니라 「여승」, 「흰 바람벽이 있어」와 같은 시로 우리에게 익숙한 백석白石(본명:백기행白夔行)은 1930년대 한국시단의 대표적인 신세대 시인일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문학 100년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오산고보五山高普를 졸업하였고, 1930년 1월 『조선일보』신춘문예에 「그 母와 아들」이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이를 계기로 장학생이 되어 일본으로 유학가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일하였다. 1935년 여름,「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한다. 이후 계속해서, 『조광朝光』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1936년 겨울, 시집『사슴』을 발표한다. 1939년 그는 일을 그만두고 만주로 떠나 유랑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광복과 더불어 신의주로 옮겼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분단 후에는 북한의 『조선문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62년 10월 무렵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하였다. 1995년 1월 84세의 나이로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제에서는 「여우난골족」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이해하기, 확장하기, 활동하기의 단계를 통해 알아보는 동시에 교실에서 학생들과 이 시들을 어떻게 수업할 것인지 고민해 보기로 한다.
Ⅱ. 여우난골족
여우난골족(族) 『백석전집』(실천문학사, 1997)의 표기와 시집『사슴』의 연 구분을 따름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모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 차 례 -
Ⅰ. 들어가는 말
Ⅱ. 여우난골족
- 시 전문
1. 이해하기
2. 확장하기
3. 활동하기
Ⅲ.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시 전문
1. 이해하기
2. 확장하기
3. 활동하기
Ⅳ. 나오는 말
Ⅰ. 들어가는 말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뿐만 아니라 「여승」, 「흰 바람벽이 있어」와 같은 시로 우리에게 익숙한 백석白石(본명:백기행白夔行)은 1930년대 한국시단의 대표적인 신세대 시인일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문학 100년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오산고보五山高普를 졸업하였고, 1930년 1월 『조선일보』신춘문예에 「그 母와 아들」이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이를 계기로 장학생이 되어 일본으로 유학가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일하였다. 1935년 여름,「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한다. 이후 계속해서, 『조광朝光』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1936년 겨울, 시집『사슴』을 발표한다. 1939년 그는 일을 그만두고 만주로 떠나 유랑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광복과 더불어 신의주로 옮겼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분단 후에는 북한의 『조선문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62년 10월 무렵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하였다. 1995년 1월 84세의 나이로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제에서는 「여우난골족」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이해하기, 확장하기, 활동하기의 단계를 통해 알아보는 동시에 교실에서 학생들과 이 시들을 어떻게 수업할 것인지 고민해 보기로 한다.
Ⅱ. 여우난골족
여우난골족(族) 『백석전집』(실천문학사, 1997)의 표기와 시집『사슴』의 연 구분을 따름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모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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