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병자호란이 판소리(적벽가)에 미친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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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판소리(적벽가)에 미친영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전쟁에 대한 묘사
2. 고향, 부모, 처자식에 대한 그리움
3. 조조에 대한 원망

Ⅲ. 결론

본문내용

편으로, 간접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적벽가>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조조에 대한 골계적 묘사가 그것이다. 조조에 대한 골계적 묘사는 <삼국지연의>에는 없는 대목으로, <적벽가>에서는 조조의 패주 이후 매우 빈번하게 등장한다.
조조가 황겁(惶怯)하야 진 수염을 걷어 잡아 와드득 와드득 쥐어 뜯고 꾀탈장탕 도망헐 제 장요 활을 급히 쏘아 황개 맞아 물에 가 풍 꺼꾸러져 낙수(落水)허니,
“공의(公義)야, 날 살려라.”
한당이 급히 건져 살을 빼어 본진(本陣)으로 보내? 제, 좌우편호통 소리 조조 정욱 기겁하야 말을 거꾸러 잡어타고,
“가자 가자 어서 가자 까닥하면 나 죽겄다. 여봐라 정욱아, 주유 노숙이 축전 축지법(縮地法)을 못하는 줄 알았더니마는 오늘 보니 축지법을 허나부다. 이 말이 왜 퇴불여전(退不如前)이 되야 앞으로는 아니 가고 적벽강으로만 그저 뿌드득 뿌드득 들어가니 이것이 웬 일이냐.”
“어따 승상이 말을 거꾸로 탔소.”
조조 듣고,
“‘급한대로 언제 옳게 타겄느냐. 말 모가지만 쑥 빼다가 얼른 돌여다 뒤에 다 꽂아라. 나 죽겄다. 어서 가자. 아이고 아이고.’”
이 대목 외에도 조조는 조그만한 맷초리를 보고 놀라 목이 떨어진 것이 아니냐고 정욱에게 묻는 장면, 도망의 와중에도 맷초리를 술안주하면 맛있겠다고 하는 장면, 심각한 장면의 끝에서 히히히 해해해 대소하여 하는 장면 등에서 계속해서 희화화 된다. 조선의 평민들은 그를 희화화 함으로써, 전쟁을 일으킨 주체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Ⅲ. 결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조선의 평민들에게 있어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피해를 안겨 준 사건인 한편으로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은 그것을 경험한 주체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게 하는 동인이 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으며, 그로 인해 쌓인 감정들을 풀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적벽가>가 널리 불리워진 이면에는 그러한 정신적인 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조선의 평민들은 양란의 경험을 적벽대전에 참여한 조조의 평민군사에 이입시켜 이야기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즉, 이를 통해 전쟁 중에 겪었던 고생과, 그로 인한 희생,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주체에 대한 분노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가 조선의 평민들에 의해 <적벽가>로 재창조되는 과정에 [있어 이에 선행한 양란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그 구체적인 양상을 고찰해 보았다. 그것은 전쟁이 전반적으로 ‘평민군사’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것으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재창조에 작용한 힘은 양란의 경험 하나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저변에는 양란 이후 성장한 서민의식이 자리잡고 있어, 이를 재창조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서적>
월트 J.옹, 이기우·임명직 역,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1995.
김현주·김기형 공저, <적벽가>, 박이정, 1998.
  • 가격1,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6.11.16
  • 저작시기2006.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7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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