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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다빈치는 현대인의 사고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보편자는 기독교적 하나님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따라서 다빈치의 보편자는 ‘자연’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림에 나타난 이러한 이성의 자율적 파괴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연(이성)과 은총의 통일성을 추구했던 다빈치의 말로를 통하여 인간의 이성으로는 두 영역의 통일성에 대한 길을 얻을 수 없다라고 쉐퍼는 결론 맺는다.
사실 아퀴나스 자신은 이성에 자율적인 면을 인정하고도 신앙적으로 무리 없는 사고를 가졌을 것이다. 마치 야구 선수들 중 어떤 투수가 완벽한 자기만의 피칭을 가지고 있다면 약간의 변형적 투구를 감행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이 아퀴나스 자신은 이미 영적, 지적 상태가 남달랐기 때문에 자신이 주장한 이 논리에 전혀 나쁜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그 사상을 받아들인 거듭나지 못한 이성을 소유한 계승자들에 의하여 오늘날 현대인들의 사고가 정립됐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퀴나스의 변형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려는 생각은 더욱 없다. 이 변형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자녀를 기다리지 못하여 육의 자녀를 만든 것의 충격만큼이나 그 과정과 결과가 너무도 충격적이기
사실 아퀴나스 자신은 이성에 자율적인 면을 인정하고도 신앙적으로 무리 없는 사고를 가졌을 것이다. 마치 야구 선수들 중 어떤 투수가 완벽한 자기만의 피칭을 가지고 있다면 약간의 변형적 투구를 감행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이 아퀴나스 자신은 이미 영적, 지적 상태가 남달랐기 때문에 자신이 주장한 이 논리에 전혀 나쁜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그 사상을 받아들인 거듭나지 못한 이성을 소유한 계승자들에 의하여 오늘날 현대인들의 사고가 정립됐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퀴나스의 변형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려는 생각은 더욱 없다. 이 변형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자녀를 기다리지 못하여 육의 자녀를 만든 것의 충격만큼이나 그 과정과 결과가 너무도 충격적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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