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운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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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파나마운하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Ⅰ.서론
1.연구목적
2.연구방법

Ⅱ.본론
1.파나마 개관
2.파나마 운하
3.파나마 운하 건설 역사
-①파나마 운하 건설배경
-②본격적인 파나마 운하 건설 시작
-③미국에 의한 파나마 운하의 건설
-④운하 완공 이후의 파나마 상황
-⑤운하 반환 이후 현재 파나마 상황
4.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 비교

Ⅲ.결론

본문내용

마가 콜롬비아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당시 미국과 파나마가 맺은 운하에 관한 협정은 일방적으로 미국에 유리하게 작성되었던 것이다. 단지 운하만이 아니라 운하를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이 미국인과 미국 군대가 주둔하는 미국 땅이 된 것이다. 파나마 국민들은 미국의 고압적인 태도에 서서히 불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1963년 파나마 대학생들은 파나마운하의 국유화를 위하여 데모를 하며 파나마 운하 지역에 자국의 국기를 게양하려다 미군에 의해 23명의 학생이 죽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난 뒤 1968년 군사 쿠데타로 자국 내 정권을 잡은 토리호스 장군은 1977년 9월 7일 미국과 담판을 벌여 “신 파나마 운하 조약(Carter-Torrijos조약)”을 체결하였고 결국 1999년 12월31일에 파나마 운하를 돌려받기로 약속을 받았다. 20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반환 날짜가 코앞에 닥치자 미국은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파나마 운하 관할권과 운하 지역 내에서 미군 주둔을 연장하려 했지만 파나마는 “노(No)”로 일관하였고 결국 미국은 세계의 여론에 밀려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에게 돌려주었다. 파나마 국민에게 새 밀레니엄은 너무나 감격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새 천년의 장엄한 문이 열리면서 파나마 운하는 드디어 파나마 국민에게 돌아왔고, 파나마 운하 반환식에 중남미 6개국 정상이 참석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⑤ 운하 반환 이후 현재 파나마 상황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관리하면서 운하 인근 밀림 지역 4천500여 만 평에 사격장 등 많은 군사시설을 운영해 왔는데 파나마 운하 관리권을 넘겨주고 철수하면서 군사 시설을 대부분 폐쇄했지만 수많은 폭탄을 폐기하지 않은 채 밀림에 쓰레기처럼 내버려두고 떠났다. 미군은 3천670만평에 흩어져있던 각종 무기와 폭발물은 제거했지만 나머지 979만평에서는 제거 작업이 힘들다는 이유로 방치했으며 이에 따라 이 지역에는 각종 박격포탄, 수류탄, 로켓포탄 등 각종 미폭발 폭탄이나 화약은 물론 “에이전트 오렌지”라고 불리는 고엽제 찌꺼기가 흩어져 있다. 미군 철수 뒤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밀림을 출입했던 파나마 국민들이 폭발 사고로 숨지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고, 지난 6년 동안 5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파괴를 주장하며 이라크를 침공해 놓고 실제 파나마에 자신들이 뿌려놓은 대량살상무기는 외면하는 무책임성과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미국의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에 비하면 파나마의 폭탄 쓰레기 해결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찾아와 마음대로 잇속을 차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미국의 혐오스러운 태도는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파나마는 자신들의 비용으로 폭탄을 제거해나가고 있으며 더욱더 발전된 파나마 운하를 세계에 선보이기 위해 보수, 확장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4.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 비교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는 현대적인 토목공사의 관점에서 볼 때도 매우 경이로운 역사적 유물이다. 또한 해운 교통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획기적인 건축물, 제국주의 시대였던 당 시대에 여러 국가들의 전략적인 관점에서 건설되어진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인 두 운하를 비교함으로써 서로의 특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져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표로 만들어 보았다.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운하 길이 및 운하 폭
길이 82km, 폭 150m
길이 162.5km, 폭 200m
운하의 이권을
장악하고 있던 국가
미국
영국, 프랑스
연결 지역
태평양과 대서양
지중해와 수에즈만 홍해 인도양
일일 평균 교통량
40척
100척
건설기간
1차(프랑스):1881~1889
2차(미국):1904~1914
1859~1869
운하건설이전 통행항로
드레이크 해협항로, 마젤란해협항로
희망봉 항로
건설시기
제국주의 시대
제국주의 시대
반환시점
2000년 1월 1일
1956년 7월 26일
운하 반환의 결정적인 인물
토리호스(Torrijos) 장군
나세르(Nasser) 대통령
운하 보유국가
파나마
이집트
운하 건설양식
갑문식 운하
수평식 운하
Ⅲ. 결론
국가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크게 달라진다. 지정학적 위치라고 한다. 한국사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파나마는 지형적으로 북아메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이고, 지정학적 가치가 높으므로 강대국들이 탐을 냈던 곳이다. 한반도 또한 주변의 여러 강대국들에 의하여 내륙으로의 진출통로, 혹은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위한 최고의 전진기지로 인식됨으로써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겪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지정학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은 국가와 국민 스스로가 지리적인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스스로 개발해 나간다면, 미래의 국가 발전 방향에 있어 하나의 큰 틀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의 사례를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와 미군과의 관계로서,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미군은 파나마에서 철수하며 아무런 보상도 사후처리도 하지 않았다. 결국 대책 없이 미군 주둔을 반대했던 파나마 사람들은 군대를 철수 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환경적 문제라는 더 심각한 짐을 떠안게 된 것이다. 그럼 과연 미군 기지의 환경정화를 원하는 한국 국민에게 주는 파나마의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더 많은 미군기지의 반환이 이루어지기 전에 환경정화에 대한 공평한 기준에 합의하는 일일 것이다. 이 기준은 미국법이 적용되는 미국 내 군기지 정화에 적용되는 기준 정도가 되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어떤 오염이 어디에, 어느 정도까지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를 철저하게 한국에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미군기지 정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함께 토론하고 노력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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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17
  • 저작시기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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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8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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