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민족주의의 개념
(1) 일반적 개념
(2) 우리가 정의 하는 “민족주의”
3. 민족주의를 앞세운 인권 탄압의 사례
(1)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탄압
(2) 러시아의 스킨헤드
(3) 내전에서의 민족주의
4. 해결 방안
5. 결론
2. 민족주의의 개념
(1) 일반적 개념
(2) 우리가 정의 하는 “민족주의”
3. 민족주의를 앞세운 인권 탄압의 사례
(1)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탄압
(2) 러시아의 스킨헤드
(3) 내전에서의 민족주의
4. 해결 방안
5. 결론
본문내용
묶어주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밀로세비치가 세르비아의 대통령이 되면서 세르비아 중심의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켜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기 위한 내전을 시작함으로써 민족주의를 통한 내전의 발발과 함께 인권의 침해와 탄압이 시작되었다.
특히 세르비아계는 내전 도중 앞서 말했듯이 세르비아 중심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다른 인종을 무시하고 짖밟는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단순한 패권 중심의 내전이 아닌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내세우며 ‘같은 민족이 아니면 적이다.’ 라는 단순명제를 앞세워 인종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사실 세계 나라 대부분이 민족주의를 안 내세워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유태인과 비유태인, 백호주의, 흑인과 백인, 심지어는 우리와 일본인들도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란 이름으로 서로 싸워왔다. 하지만 유고 연방 내 무슬림과 세르비아인들은 특별한 다툼과 전투 없이 살아왔다. 그러한 평화를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움으로써 인간 내면의 잔학성을 저 깊은 곳에서 끄집어내어 엄청난 살육의 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 세르비아 인들은 인종청소를 자행하면서 무슬림에 대한 아무런 이유 없는 윤간, 화형, 총살 등의 비윤리적 인권 탄압적 행동을 자행했고 이 외에도 갖은 방법으로 죽은 무슬림이 27만명이라고 한다. 이는 인권의 자유권, 평등권뿐만 아니라 정말 기본적인권리인 생존권마저도 민족주의라는 명분하에 동의 없이 박탈한 것이다.
!! 이라크의 쿠르드족 탄압.
-400만여명의 이라크 쿠르드족은 대부분 이라크 북부 산악지역에 살고 있다. 이들도 터키, 이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의 혹독한 탄압과 박해를 받아왔다.
이라크 정부는 전부터 행해오던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쿠르드족의 민족 저항운동이 제압되지 않자 1975년부터 쿠르드족에 대한 강경 정책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7년부터 1989년 사이에 자행된 쿠르디스탄 초토화 작전과 안팔작전(Operations Anfal)이 가장 유명한데 이 작전을 통해 4,000개 이상의 쿠르드족 촌락이 초토화되었으며 수십만 명이 학살되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 안팔작전 기간에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할랍자 마을 전주민 5000명이 5분 안에 즉사한 사건은 세계에 잘 알려졌다. 이 사건은 전체 8회에 걸쳐 진행된 안팔작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1988년 1년간 진행된 안팔작전에서만 쿠르드족 민간인이 10만 명 이상 죽게 되었다. 즉, 단순히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 간의 대립으로 인해 몇십만명의 생존권이 박탈되었고 몇백만명의 거주권 및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된 것이다. 다른 예로 1974년 이라크 바트당 정권이 석유자원이 풍부한 키르쿠크 지역에서 쿠르드족들을 강제이주 시키려하자 이에 반발하여 무장봉기를 시도했으나 무자비하게 진압 당했다.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민족보다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거주권을 박탈하려, 인권은 탄압하려 하는 행동에 대한 정당한 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힘의 논리를 인권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을 전후해서 쿠르드 독립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자 후세인 정부는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을 재개했다. 결국 걸프전 직후에 발생한 쿠르드족 봉기에 대한 이라크군의 강경 진압으로 2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이들은 터키와 이란 국경지대 천막촌에서 국제 구호기구의 구호물자로 생명을 연명하는 등의 비자발적인 인권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이라크 북위 36도를 경계로 비행금지구역이 정해지고, 미군과 영국군의 공중감시 속에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치정부를 꾸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라크의 쿠르드 거주 지역에는 전 세계 매장량의 6%, 이라크 총 매장량의 40%에 달하는 방대한 석유자원이 있고 이곳에 최근 터키, 이란 등 인접국에서 쿠르드 난민들이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어 주변 아랍 국가들이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다. 또한 쿠르드족 분리 독립에 극력 반대하는 이라크 내 수니파, 시아파 등 아랍민족과의 민족주의적 갈등 양상도 점차 심화 되고 있다.
앞서 말한 내전과 같은 상황은 가장 규모가 큰 인권의 탄압을 넘어서는 ‘몰살’이라는 표현이 적절 할 것 같다. 이유도 모른 채 무고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 만명씩 죽어간다. 이러한 인종 청소라는 대 학살이나 내전의 상황은 위의 두 가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밖에도 많은 나라에서도 현재 진행 중이며 과거에도 일어났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국내 문제 뿐 아니라 국제적인 분쟁이나 민족주의를 앞세운 인권 탄압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4. 해결 방안
민족주의의 인권 탄압의 역사는 길다. 그러나 그에 대한 논의와 구체적인 대책이 논의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알다시피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협상과정에서 유태인과 집시들의 나치에 의한 집단 학살 및 고문, 인권 유린이 이슈화 되면서 인권이라는 개념이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발전하였지만 그 역사가 길지 않아 아직까지는 확실한 인권에 대한 개념 및 인권침해에 대한 처벌 등이 구체적으로 예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라는 개념 하에서 인권의 특수성, 즉 인권의 상대주의를 주장하며 전쟁, 혹은 내전으로 인한 인권탄압 및 차별을 무차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도 쿠르드 민족에 대한 차별과 인종적 문제로 인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내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한 이면에는 이라크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쿠르드 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한 흔적을 발견한 것이 근거가 되었다.
내전과 같은 상황뿐 아니라 앞서 말한 스킨헤드 같은 집단 이기주의적인 단체나 자국 내에서의 타국인에 대한 탄압등과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세계사회 속에서의 문제로 대두 된다.
이렇게 민족주의를 통한 국가적, 혹은 단체들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인권의 보편성을 무시한 채 탄압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의 방향성과 해결방안은 어떻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인가 ?
첫
특히 세르비아계는 내전 도중 앞서 말했듯이 세르비아 중심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다른 인종을 무시하고 짖밟는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단순한 패권 중심의 내전이 아닌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내세우며 ‘같은 민족이 아니면 적이다.’ 라는 단순명제를 앞세워 인종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사실 세계 나라 대부분이 민족주의를 안 내세워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유태인과 비유태인, 백호주의, 흑인과 백인, 심지어는 우리와 일본인들도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란 이름으로 서로 싸워왔다. 하지만 유고 연방 내 무슬림과 세르비아인들은 특별한 다툼과 전투 없이 살아왔다. 그러한 평화를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움으로써 인간 내면의 잔학성을 저 깊은 곳에서 끄집어내어 엄청난 살육의 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 세르비아 인들은 인종청소를 자행하면서 무슬림에 대한 아무런 이유 없는 윤간, 화형, 총살 등의 비윤리적 인권 탄압적 행동을 자행했고 이 외에도 갖은 방법으로 죽은 무슬림이 27만명이라고 한다. 이는 인권의 자유권, 평등권뿐만 아니라 정말 기본적인권리인 생존권마저도 민족주의라는 명분하에 동의 없이 박탈한 것이다.
!! 이라크의 쿠르드족 탄압.
-400만여명의 이라크 쿠르드족은 대부분 이라크 북부 산악지역에 살고 있다. 이들도 터키, 이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의 혹독한 탄압과 박해를 받아왔다.
이라크 정부는 전부터 행해오던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쿠르드족의 민족 저항운동이 제압되지 않자 1975년부터 쿠르드족에 대한 강경 정책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7년부터 1989년 사이에 자행된 쿠르디스탄 초토화 작전과 안팔작전(Operations Anfal)이 가장 유명한데 이 작전을 통해 4,000개 이상의 쿠르드족 촌락이 초토화되었으며 수십만 명이 학살되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 안팔작전 기간에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할랍자 마을 전주민 5000명이 5분 안에 즉사한 사건은 세계에 잘 알려졌다. 이 사건은 전체 8회에 걸쳐 진행된 안팔작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1988년 1년간 진행된 안팔작전에서만 쿠르드족 민간인이 10만 명 이상 죽게 되었다. 즉, 단순히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 간의 대립으로 인해 몇십만명의 생존권이 박탈되었고 몇백만명의 거주권 및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된 것이다. 다른 예로 1974년 이라크 바트당 정권이 석유자원이 풍부한 키르쿠크 지역에서 쿠르드족들을 강제이주 시키려하자 이에 반발하여 무장봉기를 시도했으나 무자비하게 진압 당했다.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민족보다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거주권을 박탈하려, 인권은 탄압하려 하는 행동에 대한 정당한 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힘의 논리를 인권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을 전후해서 쿠르드 독립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자 후세인 정부는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을 재개했다. 결국 걸프전 직후에 발생한 쿠르드족 봉기에 대한 이라크군의 강경 진압으로 2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이들은 터키와 이란 국경지대 천막촌에서 국제 구호기구의 구호물자로 생명을 연명하는 등의 비자발적인 인권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이라크 북위 36도를 경계로 비행금지구역이 정해지고, 미군과 영국군의 공중감시 속에서 쿠르드족은 이라크 중앙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치정부를 꾸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라크의 쿠르드 거주 지역에는 전 세계 매장량의 6%, 이라크 총 매장량의 40%에 달하는 방대한 석유자원이 있고 이곳에 최근 터키, 이란 등 인접국에서 쿠르드 난민들이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어 주변 아랍 국가들이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다. 또한 쿠르드족 분리 독립에 극력 반대하는 이라크 내 수니파, 시아파 등 아랍민족과의 민족주의적 갈등 양상도 점차 심화 되고 있다.
앞서 말한 내전과 같은 상황은 가장 규모가 큰 인권의 탄압을 넘어서는 ‘몰살’이라는 표현이 적절 할 것 같다. 이유도 모른 채 무고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 만명씩 죽어간다. 이러한 인종 청소라는 대 학살이나 내전의 상황은 위의 두 가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밖에도 많은 나라에서도 현재 진행 중이며 과거에도 일어났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국내 문제 뿐 아니라 국제적인 분쟁이나 민족주의를 앞세운 인권 탄압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4. 해결 방안
민족주의의 인권 탄압의 역사는 길다. 그러나 그에 대한 논의와 구체적인 대책이 논의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알다시피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협상과정에서 유태인과 집시들의 나치에 의한 집단 학살 및 고문, 인권 유린이 이슈화 되면서 인권이라는 개념이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발전하였지만 그 역사가 길지 않아 아직까지는 확실한 인권에 대한 개념 및 인권침해에 대한 처벌 등이 구체적으로 예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라는 개념 하에서 인권의 특수성, 즉 인권의 상대주의를 주장하며 전쟁, 혹은 내전으로 인한 인권탄압 및 차별을 무차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도 쿠르드 민족에 대한 차별과 인종적 문제로 인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내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한 이면에는 이라크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쿠르드 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한 흔적을 발견한 것이 근거가 되었다.
내전과 같은 상황뿐 아니라 앞서 말한 스킨헤드 같은 집단 이기주의적인 단체나 자국 내에서의 타국인에 대한 탄압등과 같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세계사회 속에서의 문제로 대두 된다.
이렇게 민족주의를 통한 국가적, 혹은 단체들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인권의 보편성을 무시한 채 탄압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의 방향성과 해결방안은 어떻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인가 ?
첫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