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의 일본관- 군왜와 기화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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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통신사의 일본관- 군왜와 기화요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릿말

2. 일본 여행기의 성격

3. 군왜

4. 의구와 갈등

5. 은성(殷盛)과 정제(整齊)

6. 서적의 보급

7. 천황의 위치

8. 맺음말

9. 나의 생각

본문내용

부분이 손승철 선생님의 논리와 맞지 않거나 조금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어 지적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한일관계사』에서는 조일 관계를 교린관계를 중심으로 시기별로 살펴보면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임란 이후 조일 관계는 양측의 상반된 입장과 그 사이에 위치한 대마도의 이해관계에 의해 국서 개작이라는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양국의 교류가 재개되었다고 읽었다. 따라서 ‘통신사행이 일본 측의 강한 요청에 의해서 조선 측이 오히려 마지못해 허락해 줌으로써 이루어진 사행’이라는 표현은 양국 사이에 있었던 대마도주의 위치과 그 역할을 간과하고 조선의 입장에서만 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우리 민족의 우월감을 나타내어 듣기 좋은 평가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 그 이면에 조선과 일본의 교류가 중앙의 막부 장군과 대마도주와의 이중구조로 되어있고 임란 이후 일본의 정세가 막부 장군과 대마도주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은 대마번이라는 중간 매개에서부터 시작해서 각 태수들을 거쳐 막부 관백에 이르는 복잡한 체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간략하게 서술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단순히 ‘복잡한 체제이기 때문에 적절한 의절의 설정이 극히 까다로운 일’로 치부하고 있다. 복잡한 체제이기 때문에 적절한 의절의 설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임란 이후 변화된 양국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살길을 찾기 위한 대마도주의 이해관계가 얽혀 양국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보낸 사신’의 의미와 역할을 다르게 파악했기 때문인 것이다. 즉, 조선에서는 일본의 부탁에 마지못해 통신사를 보낸 것으로 생각하였고 막부 장군은 일본에 조선이 복속해 보내온 사신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보낸 사신’을 두고 서로 동상이몽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대우하는 절차와 예의에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양국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쟁점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설명 없이 조선 측의 입장만을 서술함으로써 조일관계의 단편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물론 이 글은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러한 배경을 설명해줌으로써 “실제 상황은 이러이러 했는데, 조선 측은 일본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이었다면 좀더 풍부한 논의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키워드

조선,   통신사,   일본관,   군왜,   기화요초,   천황,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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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7.02.12
  • 저작시기2007.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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