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이종격투기의 세계
2. 이종격투기의 종류
3. K-1의 역사
4. K-1의 탄생
5. 종합격투기의 역사
6. 종합격투기에 대한 우리나라의 과제
2. 이종격투기의 종류
3. K-1의 역사
4. K-1의 탄생
5. 종합격투기의 역사
6. 종합격투기에 대한 우리나라의 과제
본문내용
또 한번 관객들에게 어필했다.
- UWF VS 그레이시
판크라스와 Rings, 그리고 UWF International &Kingdom.
이 세 단체는 신생 UWF의 뒤를 이어 만들어진 진화된 격투기 단체이다. 시합이 거듭될수록 관객들의 수준은 높아져갔고, 그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들 단체는 실전에 가까운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외국 선수들의 수입도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격투기의 전체적인 레벨이 올라가는 좋은 현상이 일어났다.
- UWF International &Kingdom의 등장
격투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타카다 노부히코라는 이름이 그다지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타카다 도장의 관장이며 프라이드의 본부장인 타카다는, 사쿠라바 카즈시의 스승이기도 한다.
타카다는 1980년 안토니오 이노키를 동경하여 신일본 프로레스에 입단한다. 그 후 UWF의 중심인물로서 활약 후 프라이드의 링에서도 활동했으니, 어떻게 보면 격투계의 살아있는 신화이기도 하다. 프라이드의 링에서 인상에 남는 시합이 없었던 탓에 그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일본 격투계에서의 그의 파워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타카다는 UWF가 창시될때부터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신생 UWF가 해산된 후, 후나키 마사카츠가 판크라스, 마에다 아키라가 Rings를 만들어 독립하게 되고 타카다도 UWF의 정신을 이어받은 UWF International을 만들게 된다. 후에 UWF International는 UWF Kingdom으로 개명하게 되는데 보통 이 단체를 UWF International &Kingdom으로 부른다.
UWF International &Kingdom이 추구하던 격투 스타일은 지금 같은 결과주의만은 아니었다. 즉 시합의 승패를 떠나서 얼마나 내용이 충실한가를 추구했는데, 관객이 원하는 시합은 화려한 기술의 [프라이드 본부장 타카다 노부히코] 공방, 즉 프로레슬링의 묘미를 살린 실전성 시합이었다. UWF International &Kingdom은 이런 관객의 요구에 부응해, 실전을 표방하되 프로레슬링의 기술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 화려한 킥과 서브미션 등으로 인기를 모았던 UWF International &Kingdom은 사쿠라바 카즈시, 타무라 키요시 등의 명선수들을 배출한다.
- 타카다 노부히코 VS 타무라 키요시
UWF International &Kingdom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가 바로 타무라 키요시입니다. 96년 이미 사쿠라바에게 승리를 거두었던 타무라는 고독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진 선수이다. 그런 타무라는 오브라이트와의 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타카다에게 진검승부를 하자고 제안해서 파문을 일으킨다. 이 둘의 관계는 선후배를 떠난 라이벌 관계였고, 1993년 한번의 시합을 가지게된다. 당시 결과는 타카다의 하이킥 케이오 승. 타무라는 UWF의 룰이 아닌 진검승부를 하면 자신이 이길거라[타무라의 라이트 훅에 실신 KO 당하는 다카다] 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당시 터부시 되었던 발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타카다는 타무라가 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진검 승부를 외치는 모습을 보지만 그냥 무시하고 뒤돌아간다.
결국 그 때는 시합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두 선수는 세월이 흘러 2002년 11월 프라이드 23의 링에서 만나게 됩니다. 타카다는 자신의 은퇴시합이었던 이 시합의 상대로 타무라를 선택했고 둘은 UWF가 아닌 프라이드의 링에서 진검승부를 하게 된다. 결과는 타무라가 라이트 훅으로 KO승을 거두게 된다. 타카다는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 타무라를 격려하고, 둘은 화해로써 과거를 매듭짓게 된다. [타무라를 격려하는 다카다 노부히코]
- UFC의 등장과 도전
1993년 11월,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UFC가 시작되었다. 발리 투도(뭐든지 된다는 포르투갈어)라는 이름대로 룰이 거의 없는 시합을 표방한 UFC는 기존 격투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건이 되었다. 특히 그레이시 일족이라는 브라질의 유술 패밀리의 등장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994년 이후부터 미국의 UFC가 일본의 종합격투계에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 UFC에서 활약한 그레이시 일족이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었던 UWF의 후예들은, 잔인하기만 하며 미적인 면은 전혀 없다고 치부되었던 발리 투도와의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발리 투도야말로 시대적인 흐름이었고, 높아져만 가는 관객의 레벨에 맞추기 위해 발리 투도를 택하는 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
- 안죠 요지 VS 힉슨 그레이시
그레이시 일족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한 선수는 호이스 그레이시이다. 격투기 선수로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체형으로 거한들을 쓰러트린 호이스의 활약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호이스가 인정한 선수가 바로 자신의 형인 힉슨 그레이시이다.
힉슨 그레이시는 400전 무패라는 기록으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선수이다. 그런 힉슨에게 도전장을 낸 선수가 바로 안죠 요지라는 선수다.
안죠 요지는 UWF International &Kingdom의 소속 선수였다. 당시 타카다를 능가하는 재목으로 평가받았던 안죠 요지는 힉슨을 꺾기 위해 미국 LA에 있는 힉슨 그레이시 유술 아카데미에 직접 찾아가게 된다. 이 사실을 보며 무술 영화를 보면 가끔 등장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상대의 도장에 직접 [UFC에서 활약하는 호이스 그레이시] 찾아가 도장의 간판을 걸고 대결을 하는 일명 도장 깨기가 안죠의 목표였던 것이다.
1994년 12월 7일 아침 10시 경, 안죠는 힉슨의 도장에 직접 찾아가 교섭을 시작한다. 그 시간 집에 있었던 힉슨은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도장에 오게 되고 대결을 승낙하게 된다. 도장문을 걸어 잠근 채 대전을 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당시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진술되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6분 45초, 쵸크 슬리퍼에 의한 안죠의 실신 케이오 패. 룰은 발리 투도 룰이었고 시간은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라고 정해졌었는데, 시합 시작 후 안죠가 로우킥을 날렸지만 힉슨은 바로 태클에 이은 테
- UWF VS 그레이시
판크라스와 Rings, 그리고 UWF International &Kingdom.
이 세 단체는 신생 UWF의 뒤를 이어 만들어진 진화된 격투기 단체이다. 시합이 거듭될수록 관객들의 수준은 높아져갔고, 그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들 단체는 실전에 가까운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외국 선수들의 수입도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격투기의 전체적인 레벨이 올라가는 좋은 현상이 일어났다.
- UWF International &Kingdom의 등장
격투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타카다 노부히코라는 이름이 그다지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타카다 도장의 관장이며 프라이드의 본부장인 타카다는, 사쿠라바 카즈시의 스승이기도 한다.
타카다는 1980년 안토니오 이노키를 동경하여 신일본 프로레스에 입단한다. 그 후 UWF의 중심인물로서 활약 후 프라이드의 링에서도 활동했으니, 어떻게 보면 격투계의 살아있는 신화이기도 하다. 프라이드의 링에서 인상에 남는 시합이 없었던 탓에 그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일본 격투계에서의 그의 파워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타카다는 UWF가 창시될때부터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신생 UWF가 해산된 후, 후나키 마사카츠가 판크라스, 마에다 아키라가 Rings를 만들어 독립하게 되고 타카다도 UWF의 정신을 이어받은 UWF International을 만들게 된다. 후에 UWF International는 UWF Kingdom으로 개명하게 되는데 보통 이 단체를 UWF International &Kingdom으로 부른다.
UWF International &Kingdom이 추구하던 격투 스타일은 지금 같은 결과주의만은 아니었다. 즉 시합의 승패를 떠나서 얼마나 내용이 충실한가를 추구했는데, 관객이 원하는 시합은 화려한 기술의 [프라이드 본부장 타카다 노부히코] 공방, 즉 프로레슬링의 묘미를 살린 실전성 시합이었다. UWF International &Kingdom은 이런 관객의 요구에 부응해, 실전을 표방하되 프로레슬링의 기술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다. 화려한 킥과 서브미션 등으로 인기를 모았던 UWF International &Kingdom은 사쿠라바 카즈시, 타무라 키요시 등의 명선수들을 배출한다.
- 타카다 노부히코 VS 타무라 키요시
UWF International &Kingdom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가 바로 타무라 키요시입니다. 96년 이미 사쿠라바에게 승리를 거두었던 타무라는 고독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진 선수이다. 그런 타무라는 오브라이트와의 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타카다에게 진검승부를 하자고 제안해서 파문을 일으킨다. 이 둘의 관계는 선후배를 떠난 라이벌 관계였고, 1993년 한번의 시합을 가지게된다. 당시 결과는 타카다의 하이킥 케이오 승. 타무라는 UWF의 룰이 아닌 진검승부를 하면 자신이 이길거라[타무라의 라이트 훅에 실신 KO 당하는 다카다] 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당시 터부시 되었던 발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타카다는 타무라가 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진검 승부를 외치는 모습을 보지만 그냥 무시하고 뒤돌아간다.
결국 그 때는 시합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두 선수는 세월이 흘러 2002년 11월 프라이드 23의 링에서 만나게 됩니다. 타카다는 자신의 은퇴시합이었던 이 시합의 상대로 타무라를 선택했고 둘은 UWF가 아닌 프라이드의 링에서 진검승부를 하게 된다. 결과는 타무라가 라이트 훅으로 KO승을 거두게 된다. 타카다는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 타무라를 격려하고, 둘은 화해로써 과거를 매듭짓게 된다. [타무라를 격려하는 다카다 노부히코]
- UFC의 등장과 도전
1993년 11월,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UFC가 시작되었다. 발리 투도(뭐든지 된다는 포르투갈어)라는 이름대로 룰이 거의 없는 시합을 표방한 UFC는 기존 격투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건이 되었다. 특히 그레이시 일족이라는 브라질의 유술 패밀리의 등장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994년 이후부터 미국의 UFC가 일본의 종합격투계에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 UFC에서 활약한 그레이시 일족이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었던 UWF의 후예들은, 잔인하기만 하며 미적인 면은 전혀 없다고 치부되었던 발리 투도와의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발리 투도야말로 시대적인 흐름이었고, 높아져만 가는 관객의 레벨에 맞추기 위해 발리 투도를 택하는 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
- 안죠 요지 VS 힉슨 그레이시
그레이시 일족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한 선수는 호이스 그레이시이다. 격투기 선수로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체형으로 거한들을 쓰러트린 호이스의 활약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호이스가 인정한 선수가 바로 자신의 형인 힉슨 그레이시이다.
힉슨 그레이시는 400전 무패라는 기록으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선수이다. 그런 힉슨에게 도전장을 낸 선수가 바로 안죠 요지라는 선수다.
안죠 요지는 UWF International &Kingdom의 소속 선수였다. 당시 타카다를 능가하는 재목으로 평가받았던 안죠 요지는 힉슨을 꺾기 위해 미국 LA에 있는 힉슨 그레이시 유술 아카데미에 직접 찾아가게 된다. 이 사실을 보며 무술 영화를 보면 가끔 등장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상대의 도장에 직접 [UFC에서 활약하는 호이스 그레이시] 찾아가 도장의 간판을 걸고 대결을 하는 일명 도장 깨기가 안죠의 목표였던 것이다.
1994년 12월 7일 아침 10시 경, 안죠는 힉슨의 도장에 직접 찾아가 교섭을 시작한다. 그 시간 집에 있었던 힉슨은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도장에 오게 되고 대결을 승낙하게 된다. 도장문을 걸어 잠근 채 대전을 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당시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진술되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6분 45초, 쵸크 슬리퍼에 의한 안죠의 실신 케이오 패. 룰은 발리 투도 룰이었고 시간은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라고 정해졌었는데, 시합 시작 후 안죠가 로우킥을 날렸지만 힉슨은 바로 태클에 이은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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