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윤동주의 생애
3. 윤동주 초기 시의 세계와 작품
4. 윤동주 중기 시의 세계와 작품
5. 윤동주 후기 시의 세계와 작품
6. 맺음말
2. 윤동주의 생애
3. 윤동주 초기 시의 세계와 작품
4. 윤동주 중기 시의 세계와 작품
5. 윤동주 후기 시의 세계와 작품
6. 맺음말
본문내용
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2) 습작기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서 초기시중 <남쪽하늘>과 같은 시의 직접적인 발상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것은 동시의 세계로 이어지면서 실물의 단계를 넘어서서 정신적인, 혹은 초공간적인 이샹향으로의 고향으로 환치되고 있다.
남쪽 하늘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
스산한 가을날-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
서리 나리는 저녁-
어린 영(靈)은 쪽나래의 향수를 타고
남쪽 하늘에 떠돌 뿐-
♣ 윤동주의 중기 시의 세계와 작품
윤동주의 중기 시(1938~1941)
1.시대 상황
윤동주는 시 속에서 식민지의 암담한한 상황에서 그의 민족 정신을 반영하고 그것을 민족의 슬픔으로 확대하였다.1940년대 시대 상황은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을 실시한 시대로 이와 함께 민족을 말살하는 대신 \'한국인을 충성스럽고 선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들려는 황국 신민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였다. 일제는 1937년 10월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辭)]라는 것을 아동용과 성인용을 따로 만들어 일본어로 일상 생활 중에 외우도록 강요했다. 또한 학교와 관공서에서 한국어의 사용을 일체 금지하고 일본어를 국어라 하며 이것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하였다. 일제는 한국인의 문자인 한글을 없애기 위해 1937년 8월 30일 총독부령 131호로 공사립 고등보통학교의 조선어 및 한문독본 중 순 한문과정을 9월 1일부터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1939년부터는 우리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는 이른바 \'창씨개명\'을 단행하였다. 만일 이를 어기면 학교 입학이나 공문서 발급을 금지하였고, 식량과 물자의 배급에서 제외하였으며 우편물도 전달하지 않았다.
민족 신문에 대한 탄압도 강화하여 1939년 12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자진 폐간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용지(用紙) 통제권을 발동, 양사에 대한 신문용지의 배급량을 줄이는 등 갖은 압력을 가했다. 결국 1940년 8월 10일 폐간계를 내도록 강요하여 양 신문을 폐간시켰다.
이와 같은 현실은 지식인이었던 윤동주에게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그는 이러한 현실 상황을 ‘역설’과 ‘풍자’라는 새로운 기법을 통해서 중기시를 쓰게 되었으며 시대적 아픔을 시속에 절실히 그려내었다.
2. 윤동주 중기시의 특징
그 전까지의 윤동주 초기 시 세계는 순수한 인간 내면을 담은 “유년적 평화의 모티프”의 시들이었다. 그가 그러한 시작 태도를 가진 것은, 현실의 불안을 시적 평화로움으로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는 평화로운 유년세계와 호흡하면서 충동적이고 직선적인 감상에 머무른 시 정신을 복합적이고 형상화된 정서로 끌어올렸다.
그의 중기시의 세계는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어려운 시들에서 벗어나 쉬운 말로 한층 더 진솔한 감정을 엮어가는 시로 변모해간다. 중기시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있는 시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 시로는 자화상,십자가,서시,간 등을 찾을 수 있다. 이는 그의 시 세계가 초기 시보다는 저항의지와 참자아의 추구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3.윤동주 시의 흐름
생에 대한 자각(how to live)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변증법적 자기 인식
민족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성찰
종교적 상상력
현실에 대해 미약한 자신의 모습을 시 속에서 풍자적 기법으로 나
타내기도 하였으며,시대적 아픔과 종교적 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
자기 희생(속죄양의식)
부끄러움의 의식이 시적자아를 비판적,인격적 자아로 지향케함
부끄러움(반성하는 자의식)
부끄러움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완성하고자 하는 의지로 전환
저항의식
일체의 타협을 거부, 나약하면서도 강한 자신의 자세를 대변하
게 하여 저항의 목소리를 높임
참된 자아의 추구
현실적 고난과 내면적 의식을 자기 성숙의 길로 향하게 함
윤동주의 중기 시의 대표 시 2
<자화상>
<자화상>은 자아에 대한 애증과 내적 갈등을 표현. 일제에 대한 저항과 자학. 강박관념. 순교정신이 시의 바탕. 주제는 자화상의 관조, 자아의 내적 갈등.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십자가>
<십자가>는 시인이 역사와 조국 앞에 생명을 걸고 필요하다면 언제나 목숨을 바치겠다는 순절정신이 나타나 있음. 사실 그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예수처럼 죽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마지막 연은 그의 희생 정신의 각오.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
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푸로메테우스
♣ 윤동주의 후기 시의 세계와 작품
윤동주에게 있어서 후기는 그의 시적 성과에 비추어 볼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희전문 졸업반 1년과 동경유학 1년 도합 2년의 짧은 시간에 그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쓰여졌다. 그 중 대부분의 시가 연전 졸업반 시절에 쓰여졌지만 동경유학시절의 작품도 질적 수준에 있어서 이에 못지 않음을 볼 때 그 밖의 많은 유고가 사장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라 하겠다.
후기의 시는 몇 가지의 복합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그 첫째는 내적 갈등의 해소와 자아 성숙의 실현이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자리마다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2) 습작기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서 초기시중 <남쪽하늘>과 같은 시의 직접적인 발상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것은 동시의 세계로 이어지면서 실물의 단계를 넘어서서 정신적인, 혹은 초공간적인 이샹향으로의 고향으로 환치되고 있다.
남쪽 하늘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
스산한 가을날-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
서리 나리는 저녁-
어린 영(靈)은 쪽나래의 향수를 타고
남쪽 하늘에 떠돌 뿐-
♣ 윤동주의 중기 시의 세계와 작품
윤동주의 중기 시(1938~1941)
1.시대 상황
윤동주는 시 속에서 식민지의 암담한한 상황에서 그의 민족 정신을 반영하고 그것을 민족의 슬픔으로 확대하였다.1940년대 시대 상황은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을 실시한 시대로 이와 함께 민족을 말살하는 대신 \'한국인을 충성스럽고 선량한 황국신민\'으로 만들려는 황국 신민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였다. 일제는 1937년 10월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辭)]라는 것을 아동용과 성인용을 따로 만들어 일본어로 일상 생활 중에 외우도록 강요했다. 또한 학교와 관공서에서 한국어의 사용을 일체 금지하고 일본어를 국어라 하며 이것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하였다. 일제는 한국인의 문자인 한글을 없애기 위해 1937년 8월 30일 총독부령 131호로 공사립 고등보통학교의 조선어 및 한문독본 중 순 한문과정을 9월 1일부터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1939년부터는 우리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는 이른바 \'창씨개명\'을 단행하였다. 만일 이를 어기면 학교 입학이나 공문서 발급을 금지하였고, 식량과 물자의 배급에서 제외하였으며 우편물도 전달하지 않았다.
민족 신문에 대한 탄압도 강화하여 1939년 12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자진 폐간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용지(用紙) 통제권을 발동, 양사에 대한 신문용지의 배급량을 줄이는 등 갖은 압력을 가했다. 결국 1940년 8월 10일 폐간계를 내도록 강요하여 양 신문을 폐간시켰다.
이와 같은 현실은 지식인이었던 윤동주에게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그는 이러한 현실 상황을 ‘역설’과 ‘풍자’라는 새로운 기법을 통해서 중기시를 쓰게 되었으며 시대적 아픔을 시속에 절실히 그려내었다.
2. 윤동주 중기시의 특징
그 전까지의 윤동주 초기 시 세계는 순수한 인간 내면을 담은 “유년적 평화의 모티프”의 시들이었다. 그가 그러한 시작 태도를 가진 것은, 현실의 불안을 시적 평화로움으로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는 평화로운 유년세계와 호흡하면서 충동적이고 직선적인 감상에 머무른 시 정신을 복합적이고 형상화된 정서로 끌어올렸다.
그의 중기시의 세계는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어려운 시들에서 벗어나 쉬운 말로 한층 더 진솔한 감정을 엮어가는 시로 변모해간다. 중기시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있는 시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 시로는 자화상,십자가,서시,간 등을 찾을 수 있다. 이는 그의 시 세계가 초기 시보다는 저항의지와 참자아의 추구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3.윤동주 시의 흐름
생에 대한 자각(how to live)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변증법적 자기 인식
민족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성찰
종교적 상상력
현실에 대해 미약한 자신의 모습을 시 속에서 풍자적 기법으로 나
타내기도 하였으며,시대적 아픔과 종교적 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
자기 희생(속죄양의식)
부끄러움의 의식이 시적자아를 비판적,인격적 자아로 지향케함
부끄러움(반성하는 자의식)
부끄러움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완성하고자 하는 의지로 전환
저항의식
일체의 타협을 거부, 나약하면서도 강한 자신의 자세를 대변하
게 하여 저항의 목소리를 높임
참된 자아의 추구
현실적 고난과 내면적 의식을 자기 성숙의 길로 향하게 함
윤동주의 중기 시의 대표 시 2
<자화상>
<자화상>은 자아에 대한 애증과 내적 갈등을 표현. 일제에 대한 저항과 자학. 강박관념. 순교정신이 시의 바탕. 주제는 자화상의 관조, 자아의 내적 갈등.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십자가>
<십자가>는 시인이 역사와 조국 앞에 생명을 걸고 필요하다면 언제나 목숨을 바치겠다는 순절정신이 나타나 있음. 사실 그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예수처럼 죽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마지막 연은 그의 희생 정신의 각오.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
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푸로메테우스
♣ 윤동주의 후기 시의 세계와 작품
윤동주에게 있어서 후기는 그의 시적 성과에 비추어 볼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희전문 졸업반 1년과 동경유학 1년 도합 2년의 짧은 시간에 그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쓰여졌다. 그 중 대부분의 시가 연전 졸업반 시절에 쓰여졌지만 동경유학시절의 작품도 질적 수준에 있어서 이에 못지 않음을 볼 때 그 밖의 많은 유고가 사장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라 하겠다.
후기의 시는 몇 가지의 복합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그 첫째는 내적 갈등의 해소와 자아 성숙의 실현이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자리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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