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한국의 천주교의 수용과 발전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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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학] 한국의 천주교의 수용과 발전에 관한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 리 말

Ⅱ. 1976년 이후의 연구 동향

Ⅲ. 시대별 연구 주제와 문제점

Ⅳ. 맺 음 말

본문내용

후원함으로써 교회의 모습을 변질시키고 교세를 침체시킨 것으로 이해하였다(14).
다음으로 통일 운동기에 대한 천주교회사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19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분야는 첫째로 해방 공간의 역사나 북한 천주교회사, 둘째 광복 이후 한국의 현실과 천주교회의 참여 문제, 셋째 교회 안의 각종 활동사 연구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중에서 첫 번째 분야는 북한의 종교 탄압과 말살 정책 과정, 625 한국전쟁 전후의 순교사 등에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먼저 최석우는 광복 이후 북한 천주교회의 수난사를 설명하면서 1950년대 중반까지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한 종교 말살 정책이 끝나면서 천주교회는 침묵의 교회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고 설명하였다(25). 또 卞鎭興은 북한 공산 정권의 종교 정책과 종교 탄압 과정을 625 이전의 소비에트화 시기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이에 대한 교회의 저항과 순교사를 규명하고자 하였다(102103). 이 밖에도 북한의 지역 교회사 연구에서도 교회 탄압과 순교사에 대한 증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아직은 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로, 광복 이후의 한국 현실과 천주교회와의 관계는 통일 운동기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에 대해 崔鍾庫는 京鄕新聞의 정치성을 지적하면서 이를 제10대 서울교구장 盧基南과 張勉의 정치적 가톨릭시즘의 출발로 설명하였으며, 교회 운영의 자율성을 배경으로 교회미군정이승만 정권이 정교 유착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교회의 위상을 확보해 나갔다고 설명하였다(224). 그리고 趙珖은 민주당 정권의 성격을 밝히면서 당시의 교회 입장을 자유당 정권과의 갈등 내지는 민주당 정권과의 유착으로 설명하고, 교회의 정치 참여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으며(167), 오경환은 광복 이후의 교회사를 반성의 입장에서 정리한 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나타난 성직자와 신자들의 현실 참여를 긍정적으로 파악하면서도 교회 당국의 현실 관념과 과거 반성 태도, 교회의 토착화 운동은 보완의 입장에서 이해하였다(114). 아울러 최근에는 1970년대에 이루어진 천주교회의 정치적 개입과 민주화 운동에의 참여, 1980년대의 사회운동과 교회의 민족민주운동,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미래 지향적인 선교정책 등을 연구한 논저들도 있지만, 대부분 자료 정리와 문제제기 수준에 그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의 단체사나 평신도 활동사, 노동복지빈민의료교육신용협동조합 운동 등 교회 안의 사회 참여 운동사, 교세의 발전이나 내적 성장을 위한 제반 활동사 등에 관한 여러 논고들도 아직은 보고서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 이유는 역사가 일천하다는 점에도 있지만, 어느 일면에서는 실제 참여자와 연구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도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연구도 아직 한국 교회나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일부분만을 강조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최근에 들어와 실시되는 신자들의 의식 조사와 신앙 실태, 교회활동 조사보고서 등을 적절히 이용하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Ⅳ. 맺 음 말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광복 이후 50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는 한국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고, 그 연구 인력의 증가나 연구결과의 질적양적인 측면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교회 창설기와 박해기에 치우쳤던 경향에서 벗어나 개화기의 교회사나 광복통일운동기의 교회사 연구가 많은 진전을 보게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문제, 일제치하의 민족운동과 천주교, 프랑스 선교사들의 對韓 인식, 교회와 민족사와의 관계 등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발전적인 논쟁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의 서학 사상사, 교회 창설기에 있어서의 내적인 변모, 박해사와 순교사, 교안 및 한불 관계, 프랑스 선교사들의 선교정책, 교회와 국가와의 문제 등은 상당한 연구 성과를 낳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사의 특성상 福音史와 한국 천주교회사와의 접목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호교론이냐 민족사의 관점이냐 하는 논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원칙론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편협된 시각을 버리고 실증적인 연구의 입장을 취할 때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으로써 천주교회가 조선 후기 이래 현재까지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떠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각 시대의 위상도 정립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세부적으로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천주교 수용 문제, 순교자와 같은 교회 인물사 연구, 박해기에 있어서의 민중의 동요와 천주교 신자 집단의 성격, 본고의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 衛正斥邪 운동과 교회 내지는 한불 관계의 문제, 그리고 광복 운동기에서의 교회 역할이나 내적인 변모 등에 대하여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 통일운동기의 연구가 아직 자료 정리나 개설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며, 단절되어 있다시피한 북한 교회사의 연구도 미래 지향적인 측면에서 연구되어야 하리라 본다.
한편 최근에 자주 제기되어 온 土着化 문제는 지금까지 발표된 대부분의 연구가 그 필요성과 당위성만을 논하는 데 치우침으로써 구체적인 문제 제기가 결여되어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전통 神觀과의 문제나 전례선교신학의 토착화와 같은 이론적인 측면에만 매달림으로써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은 한국사목연구소에서 그 동안 사목지를 통해 발표된 토착화 관계 연구들을 모은 전례영성의 토착화(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2), 신관의 토착화(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아울러 지방 교회사 연구에서는 전문성의 결여,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보존, 향토사와의 관계 등이 특히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일부에만 알려져 있는 해외 소장 자료들도 시급히 보완 정리되어야 할 것이고, 앞으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키워드

천주교,   교회,   기독교,   선교사,   수용,   김대건,   신부,   순교
  • 가격2,000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7.03.28
  • 저작시기2007.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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