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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었다.
좋은 조건이나 상황이 내뜻대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처한 상황에서의 불평이나 불만을 거두고 무엇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내 삶을 품위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보았다.
6.본 영화에 관한 전반적인 소감은?
처음에 K2라는 영화는 오래된 영화라 재미없고 지루할 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관심없이 보기 시작했다. 영화중반까지도 별 흥미없이 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들의 우정과 여러 고난과정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게 등반이란 큰 의미가 없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이 등반을 단순한 등반이 아닌 자신들의 삶의 목표로 보듯이 나에게도 아무런 목적없이 사는 삶보다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풀어내고 헤쳐갈 어떠한 목표를 정해보고싶은 생각이 들게 했고 주인공들의 우정 또한 내가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한 영화였다.
<탐구 사항>
1.에베레스트와 산악인 (국내 및 국외)
에베레스트산
■ 에베레스트(8.848m 북위 27도 59분 동경 86도 55분)
영국은 1849년부터 식민지였던 인도 북부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히말라야산맥에 대한 광범위한 측량사업을 벌이면서 P15란 기호로 표시되어 있던 유난히 높은 봉우리에 관심을 갖고서 측량을 하게되었다.
P15봉우리가 정확하게 측량이 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1852년에 정확한 높이가 8.848m로 측량이 되었지만 그 후로도 계속 P15봉우리로 불리다가 1865년에 가서야 당시의 측량국 장관이었던 조지 에베레스트경의 이름을 따서 에베레스트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티베트 말로는 초모롱마(Chomoungma), 사가르마타 불린다.
에베레스트는 영국의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은 1919년 에베레스트위원회를 조직하여 원정을 주관하였다. 에베레스트에 대한 최초의 도전은 1921년 하워드 버리가 이끈 4명의 대원과 3명의 과학자가 참가한 정찰 원정이었다.
최초의 원정대는 1922년 인도 고르카 연대의 준장이었던 부르스대장을 포함한 12명의 대원이 7.600m에 제 5캠프를 설치하면서 세 차례의 정상공격을 감행하여 북동릉 8.326m까지 전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에도 일곱 번의 원정이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1953년 영국은 존 헌트를 대장으로 제 9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파견하여 5월29일 오전 11시 30분 드디어 에드먼드 힐라리와 셀파인 텐징 노르게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섰다.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으로 밝혀진 지 100년만의 일이다.
1999년 9월에 발견된 조지 말로리의 시신은 세상을 다시 한번 긴장하게 만들었다.
1924년 3차 원정대원으로 참가하여 6월 27일 마지막 일기를 써놓고 조지 말로리와 앤드류 어빈은 정상을 향했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924년 그들은 정상에 섰는가? 75년 만에 발견이 된 유품 중에서 그들이 갖고 있던 코닥카메라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사진 현상에는 실패하여 결국 의문만을 남기고 말았다. 조지 말로리는 살아서는 그 유명한 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 라는 말을 남겨서 유명했고 죽어서는 그는 과연 `올랐는가` 아니면 `오르지 못하였는가?`
끊임없는 궁금증만을 남겨 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에베레스트 동계 초등정은 1980년 폴란드 크리스토프 비엘리키(8.000m 5번째 완등자)와 안드레이 자바다가 세웠다.
최초의 여자 등정자는 1975년 5월16일 일본의 다베이준코가 정상에 등정했다.
최초의 부자등정은 1953년 초등자인 에드먼드 힐라리의 아들 피터 힐라리가 아버지가 37년전 올랐던 남동릉으로 1990년 5월 10일 등정해 첫 부자등정의 영예를 갖게
좋은 조건이나 상황이 내뜻대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처한 상황에서의 불평이나 불만을 거두고 무엇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내 삶을 품위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보았다.
6.본 영화에 관한 전반적인 소감은?
처음에 K2라는 영화는 오래된 영화라 재미없고 지루할 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관심없이 보기 시작했다. 영화중반까지도 별 흥미없이 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들의 우정과 여러 고난과정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게 등반이란 큰 의미가 없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이 등반을 단순한 등반이 아닌 자신들의 삶의 목표로 보듯이 나에게도 아무런 목적없이 사는 삶보다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풀어내고 헤쳐갈 어떠한 목표를 정해보고싶은 생각이 들게 했고 주인공들의 우정 또한 내가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한 영화였다.
<탐구 사항>
1.에베레스트와 산악인 (국내 및 국외)
에베레스트산
■ 에베레스트(8.848m 북위 27도 59분 동경 86도 55분)
영국은 1849년부터 식민지였던 인도 북부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히말라야산맥에 대한 광범위한 측량사업을 벌이면서 P15란 기호로 표시되어 있던 유난히 높은 봉우리에 관심을 갖고서 측량을 하게되었다.
P15봉우리가 정확하게 측량이 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1852년에 정확한 높이가 8.848m로 측량이 되었지만 그 후로도 계속 P15봉우리로 불리다가 1865년에 가서야 당시의 측량국 장관이었던 조지 에베레스트경의 이름을 따서 에베레스트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티베트 말로는 초모롱마(Chomoungma), 사가르마타 불린다.
에베레스트는 영국의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은 1919년 에베레스트위원회를 조직하여 원정을 주관하였다. 에베레스트에 대한 최초의 도전은 1921년 하워드 버리가 이끈 4명의 대원과 3명의 과학자가 참가한 정찰 원정이었다.
최초의 원정대는 1922년 인도 고르카 연대의 준장이었던 부르스대장을 포함한 12명의 대원이 7.600m에 제 5캠프를 설치하면서 세 차례의 정상공격을 감행하여 북동릉 8.326m까지 전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에도 일곱 번의 원정이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1953년 영국은 존 헌트를 대장으로 제 9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파견하여 5월29일 오전 11시 30분 드디어 에드먼드 힐라리와 셀파인 텐징 노르게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섰다.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으로 밝혀진 지 100년만의 일이다.
1999년 9월에 발견된 조지 말로리의 시신은 세상을 다시 한번 긴장하게 만들었다.
1924년 3차 원정대원으로 참가하여 6월 27일 마지막 일기를 써놓고 조지 말로리와 앤드류 어빈은 정상을 향했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924년 그들은 정상에 섰는가? 75년 만에 발견이 된 유품 중에서 그들이 갖고 있던 코닥카메라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사진 현상에는 실패하여 결국 의문만을 남기고 말았다. 조지 말로리는 살아서는 그 유명한 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 라는 말을 남겨서 유명했고 죽어서는 그는 과연 `올랐는가` 아니면 `오르지 못하였는가?`
끊임없는 궁금증만을 남겨 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에베레스트 동계 초등정은 1980년 폴란드 크리스토프 비엘리키(8.000m 5번째 완등자)와 안드레이 자바다가 세웠다.
최초의 여자 등정자는 1975년 5월16일 일본의 다베이준코가 정상에 등정했다.
최초의 부자등정은 1953년 초등자인 에드먼드 힐라리의 아들 피터 힐라리가 아버지가 37년전 올랐던 남동릉으로 1990년 5월 10일 등정해 첫 부자등정의 영예를 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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