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 1 장
재설정된 경계선, 재정의된 문제, 세속화된 종교
제 2 장
실베스트르 드 사시와 에르네스트 르낭
-합리주의적 인류학과 문헌학의 실험실
제 3 장
동양체제와 동양에 관한 학문
- 어휘서술과 상상력이 필요로 하는 것
제 4 장 순례자와 순례, 영국인과 프랑스인
재설정된 경계선, 재정의된 문제, 세속화된 종교
제 2 장
실베스트르 드 사시와 에르네스트 르낭
-합리주의적 인류학과 문헌학의 실험실
제 3 장
동양체제와 동양에 관한 학문
- 어휘서술과 상상력이 필요로 하는 것
제 4 장 순례자와 순례, 영국인과 프랑스인
본문내용
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것에도 실패했다.
네르발이 실체가 없는 동양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비전을 가졌던 것에 비하면, 플로벨의 그것은 지극히 실질적인 것이었다. 플로벨의 작품은 매우 복잡하고 또한 매우 광범한 것이기 때문에 동양의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하면 너무나도 피상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프로벨의 작품이 특징을 갖는 것은 동방과 남방에서 탐구하려는 시도에서 뿌리내린 것이라고 할수 있다.
플로벨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가 동양에서 체험한 것은 모두 동양과 섹스사이의 연상으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과장된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 속에 들어가 일부가 되어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소설 전부를 통하여 동양을 성적인 환상에 의한 현실도피와 결부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동양의 방종한 성적 자유와 연상이 나타나 있고, 유럽의 성의 제도화가 상당히 이루어져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의 여러나라가 동양의 소수민족에 대해 계획을 짜며, 음모를 수립했다. 이것은 영토로서 동양을 뒤덮은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 공적인 학문, 제도적인 압박의 엄청난 중압에 관한 감각을 생생하게 보존하여온 방법으로 설명한다. 여행자가 쓴 견문담과 전문적인 권위작가 쓴 보고서와는 분명히 구별되었다. 이것은 플로벨의 마음속에 확실히 존재했다.
저자들은 모험을 이야기한다고 하기보다도, 동양의 시장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여행한 것을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버튼은 동양에 살고, 실제로 동양을 보고, 그곳에 젖은 인간의 시각에서 동양의 생활을 이해하고자 진지한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동양의 관한 지식을 확보했다. 버튼이 동양에 관한 개인적이고 진정한 지식, 공감에 가득찬 인간미가 풍부한 지식을 강조한 것도 동양을 둘러싼 공식의 유럽적 지식의 문서관과 대결하는 가운데였다.
동양은 하나의 장소라는 것으로부터 현실의 학술적 지배의 영역, 잠재적인 제국지배의 영역으로 변화했다. 그란과 사시 그리고 레인과 같은 초기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역할은 자신들의 작업과 동양의 쌍방에 대하여 ‘무대장치’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뒤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학술적인 사람이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든 간에 이 무대를 분명히 지켰다. 나아가 그 뒤에 와서는 무대가 경영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것은 경영이라고 하는 일을 위하여 개인보다도 제도를 설정하고 정부를 개입시키는 쪽이 낫다고 하는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19세기 오리엔탈리즘이 남긴 유산이고 20세기는 그것을 받은 상속인이 되었다. 20세기의 오리엔탈리즘- 그것은 1880년이후 서양에 의한 동양점령의 긴 과정을 전제로 하여 시작되었다.
먼저 생각보다 내용이 상당히 어려웠다. 오리엔탈리즘이란 것에 대해 막연한 생각도 없었던 난 어떤이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 내용이 뭔지, 사람이름 조차도 쉽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충 한번 읽어보고 그담에 읽으면서 요약을 하는 것으로 했는데 한번 읽고 나서도 내용을 쉽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것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첫째로, 승리한 자의 역사만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이 먼저 여행이나 상인들이 왔겠지만 침입을 해와서 남의 땅에 와서는 자기들과 다르다고 야만적이다, 저속하다고 보는 것은 보기 안 좋았다. 아마도 지금도 그렇게 남아 있는 것은 유럽인들이 쓴 것은 남아있겠지만, 동양인의 책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두번째로는 모든 세계관이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다. 동양을 보는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전부를 읽은 게 아니라 일부분을 읽은거라 전반적인 모든 부분의 내용을 이해해 나가기는 힘이 들었다.
네르발이 실체가 없는 동양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비전을 가졌던 것에 비하면, 플로벨의 그것은 지극히 실질적인 것이었다. 플로벨의 작품은 매우 복잡하고 또한 매우 광범한 것이기 때문에 동양의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하면 너무나도 피상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프로벨의 작품이 특징을 갖는 것은 동방과 남방에서 탐구하려는 시도에서 뿌리내린 것이라고 할수 있다.
플로벨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가 동양에서 체험한 것은 모두 동양과 섹스사이의 연상으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과장된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 속에 들어가 일부가 되어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소설 전부를 통하여 동양을 성적인 환상에 의한 현실도피와 결부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동양의 방종한 성적 자유와 연상이 나타나 있고, 유럽의 성의 제도화가 상당히 이루어져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의 여러나라가 동양의 소수민족에 대해 계획을 짜며, 음모를 수립했다. 이것은 영토로서 동양을 뒤덮은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 공적인 학문, 제도적인 압박의 엄청난 중압에 관한 감각을 생생하게 보존하여온 방법으로 설명한다. 여행자가 쓴 견문담과 전문적인 권위작가 쓴 보고서와는 분명히 구별되었다. 이것은 플로벨의 마음속에 확실히 존재했다.
저자들은 모험을 이야기한다고 하기보다도, 동양의 시장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여행한 것을 서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버튼은 동양에 살고, 실제로 동양을 보고, 그곳에 젖은 인간의 시각에서 동양의 생활을 이해하고자 진지한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동양의 관한 지식을 확보했다. 버튼이 동양에 관한 개인적이고 진정한 지식, 공감에 가득찬 인간미가 풍부한 지식을 강조한 것도 동양을 둘러싼 공식의 유럽적 지식의 문서관과 대결하는 가운데였다.
동양은 하나의 장소라는 것으로부터 현실의 학술적 지배의 영역, 잠재적인 제국지배의 영역으로 변화했다. 그란과 사시 그리고 레인과 같은 초기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역할은 자신들의 작업과 동양의 쌍방에 대하여 ‘무대장치’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뒤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학술적인 사람이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든 간에 이 무대를 분명히 지켰다. 나아가 그 뒤에 와서는 무대가 경영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것은 경영이라고 하는 일을 위하여 개인보다도 제도를 설정하고 정부를 개입시키는 쪽이 낫다고 하는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19세기 오리엔탈리즘이 남긴 유산이고 20세기는 그것을 받은 상속인이 되었다. 20세기의 오리엔탈리즘- 그것은 1880년이후 서양에 의한 동양점령의 긴 과정을 전제로 하여 시작되었다.
먼저 생각보다 내용이 상당히 어려웠다. 오리엔탈리즘이란 것에 대해 막연한 생각도 없었던 난 어떤이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 내용이 뭔지, 사람이름 조차도 쉽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충 한번 읽어보고 그담에 읽으면서 요약을 하는 것으로 했는데 한번 읽고 나서도 내용을 쉽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것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첫째로, 승리한 자의 역사만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이 먼저 여행이나 상인들이 왔겠지만 침입을 해와서 남의 땅에 와서는 자기들과 다르다고 야만적이다, 저속하다고 보는 것은 보기 안 좋았다. 아마도 지금도 그렇게 남아 있는 것은 유럽인들이 쓴 것은 남아있겠지만, 동양인의 책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두번째로는 모든 세계관이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다. 동양을 보는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전부를 읽은 게 아니라 일부분을 읽은거라 전반적인 모든 부분의 내용을 이해해 나가기는 힘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