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들의 행위를 강하게 비난했다. 서포터즈문화는 이렇듯 경기장 밖에서 축구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위한 운동과 자연스럽게 연계되기도 하며, 경기장 안에서 정치적 지역적 갈등의 연장되는 사태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서포터즈 문화의 출현은 새로운 형태의 응원문화의 출현만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축구를 통해 일상의 문화를 형성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문화를 스스로 조직하는 주체들의 변화를 지시한다.
4. 스포츠와 의미화과정(signification)
의미화과정은 기호학에서 나온 개념이고 특히 ‘의미화과정’은 바르트의 기호학에서 중요한 토픽이다. 그는 『신화론』에서 명시적이고 외연적인 의미 속에 숨겨진 함축적이고 내표적인 의미가 어떻게 문화 텍스트에 허구효과를 생산해서 신화적인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바르트의 작업은 텍스트가 표면적으로 전하는 전언(message)을 탈코드화하는 것과 그 전언들이 대중문화와 맺는 관계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신화에는 두 가지 전언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차적 전언’(primary message)으로서 텍스트 생산자가 자명하게 그 의미를 전달하려는 전언이다(가령 “레스링은 스포츠다”. “스트립쇼는 섹시하다”). 기호학에서는 이를 외연(dennotation)관계로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이차적 전언’(secondary message)으로서 일차적 전언 속에 숨겨져 있는 자명하지 않은 전언이다. 이것을 함축(connotation)의 관계로 볼 수 있다. 텍스트의 의미화과정은 바로 일차적 전언과정에서 2차적 전언과정으로 이행할 때 생겨난다. 가령 “프랑스 포도주는 맛있다”는 진술에는 실제 프랑스 포도주의 고품질 맛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다움’과 ‘사내다움’을 기호로 나타내려는 상징적인 지위가 숨어있다. 신화, 혹은 전언의 매개물인 포도주는 “좋고 훌륭한 재료”로 가치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언에는 어떤 신화를 숨기고 있다. 즉 그것은 포도주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생산된 상품이라는 사실, 다른 음식을 생산할 수도 있었던 북아프리카 지역을 포도생산 지역으로 전환시켜서 원주민 이슬람인들(그들의 종교는 포도주를 혐오한다)을 그곳에서 일하게 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텍스트의 의미는 그것을 자명하게 만드는 기호의 의미화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 그래서 텍스트의 의미를 독해한다는 것은 의미화과정의 메커니즘을 독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텍스트는 완결된 의미체계의 산물이 아니라 항상 불완전한 의미의 그물망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텍스트는 단일한 ‘신학적’ 의미(저자-신의 메세지)를 풀어놓는 말들의 계열이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들이 한 데 섞이고 부딪치는 다차원적 공간”이라는 바르트의 지적처럼 텍스트는 전지전능한 작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독자들의 참여와 의미 연쇄의 공백에서 오는 의미의 재구성을 허용하는 공간이다.
텍스트 의미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은 언어적 기호뿐아니라 비언어적 기호의 분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언어의 반영과정이나 의미화과정을 넘어서 이미지의 영역이 의미화과정의 대상이 되면서 텍스트의 인식론은 시각적인 요소의 배치관계로까지 확대된다. 바르트가 지적하듯이 언어로서의 텍스트는 기호의 지위를 아날로그적 형태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즉 언어는 명백히 의미를 지시하는 티지탈적인 코드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언어적 기호이든 비언어적 기호이든 기호를 하나의 이미지로 간주할 때 의미화과정은 단순히 지시관계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미지의 의미화과정은 기표-기의의 지시관계만이 아닌 이미지들간의 배치관계, 그것의 도상적 층위와 상징적 층위의 계열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스포츠의 의미화과정은 하나의 스포츠경기나, 사건들이 자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이 자명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브라질 축구에 대한 제3세계 국가들의 축구팬들의 신화는 브라질 축구에 대한 판타지를 생산한다. 방글라데시나 네팔과 같은 피파랭킹이 최하위권에 속한 나라들의 경우 호나우드, 카를로스, 오나우딩요, 카푸 같은 선수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선수를 넘어서 절대적인 신뢰를 얻는 신화 속의 선수들로 등장한다. “브라질은 축구를 잘한다”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것이 신화를 생산하는 메시지가 될 경우에는 이는 자명한 진리이자 절재적인 신념체계가 된다.
가령 현재 미국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미프로레슬링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는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매니아들에게 그것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사실인것처럼 믿게만드는 신화체계를 가지고 있다. ”WWE\"의 전신이었던 \'WWF\' 시절 1999년에 ‘오버 엣지’(over edge)라는 제목의 순회 경기에서 연맹소속 선수인 오웬 하트가 경기도중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경기장 천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첫 장면에서 오웬 하트는 안전장치가 풀리는 바람에 링아래로 곤두발질해 버린 것이다. 사고난 직후 경기 파트너였던 선수들과 경기 안전요원들이 병원으로 급송했지만 그는 결국 뇌진탕으로 죽고 말았다. 나는 처음에 그 장면을 보면서 한동안 이것이 정말 실제로 벌어진 사고사인지 몰랐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WWF는 아주 정교하고 센세이셔널한 시나리오로 관중들과 시청자들을 수차례 속이는 연출을 경기 중에 보여왔고, 특히 하트코어 챔피언쉽 타이틀 매치의 경우는 거의 실전에서 생겨날 수 있는 부상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소위 ‘필름느와르’를 연상케 하는 잔인하고 생생한 폭력과정이 사전에 약속된 네러티브로 플롯화되곤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웬 하트는 변신의 귀재였다. 그는 ‘블루 블레이저’(blue blazer)라는 닉네임으로, 그 단어가 지시하듯 가면을 쓴 일종의 가운과 같은 푸른색 코드를 입고 경기장에서 게임을 펼쳤다. 요는 그가 가면을 쓰고 나타나면 상대방 선수는 항상 그의 가면을 벗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는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막으려고 발버둥친다. 이 컨
4. 스포츠와 의미화과정(signification)
의미화과정은 기호학에서 나온 개념이고 특히 ‘의미화과정’은 바르트의 기호학에서 중요한 토픽이다. 그는 『신화론』에서 명시적이고 외연적인 의미 속에 숨겨진 함축적이고 내표적인 의미가 어떻게 문화 텍스트에 허구효과를 생산해서 신화적인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바르트의 작업은 텍스트가 표면적으로 전하는 전언(message)을 탈코드화하는 것과 그 전언들이 대중문화와 맺는 관계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신화에는 두 가지 전언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차적 전언’(primary message)으로서 텍스트 생산자가 자명하게 그 의미를 전달하려는 전언이다(가령 “레스링은 스포츠다”. “스트립쇼는 섹시하다”). 기호학에서는 이를 외연(dennotation)관계로 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이차적 전언’(secondary message)으로서 일차적 전언 속에 숨겨져 있는 자명하지 않은 전언이다. 이것을 함축(connotation)의 관계로 볼 수 있다. 텍스트의 의미화과정은 바로 일차적 전언과정에서 2차적 전언과정으로 이행할 때 생겨난다. 가령 “프랑스 포도주는 맛있다”는 진술에는 실제 프랑스 포도주의 고품질 맛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다움’과 ‘사내다움’을 기호로 나타내려는 상징적인 지위가 숨어있다. 신화, 혹은 전언의 매개물인 포도주는 “좋고 훌륭한 재료”로 가치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언에는 어떤 신화를 숨기고 있다. 즉 그것은 포도주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생산된 상품이라는 사실, 다른 음식을 생산할 수도 있었던 북아프리카 지역을 포도생산 지역으로 전환시켜서 원주민 이슬람인들(그들의 종교는 포도주를 혐오한다)을 그곳에서 일하게 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텍스트의 의미는 그것을 자명하게 만드는 기호의 의미화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 그래서 텍스트의 의미를 독해한다는 것은 의미화과정의 메커니즘을 독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텍스트는 완결된 의미체계의 산물이 아니라 항상 불완전한 의미의 그물망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텍스트는 단일한 ‘신학적’ 의미(저자-신의 메세지)를 풀어놓는 말들의 계열이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들이 한 데 섞이고 부딪치는 다차원적 공간”이라는 바르트의 지적처럼 텍스트는 전지전능한 작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독자들의 참여와 의미 연쇄의 공백에서 오는 의미의 재구성을 허용하는 공간이다.
텍스트 의미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은 언어적 기호뿐아니라 비언어적 기호의 분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언어의 반영과정이나 의미화과정을 넘어서 이미지의 영역이 의미화과정의 대상이 되면서 텍스트의 인식론은 시각적인 요소의 배치관계로까지 확대된다. 바르트가 지적하듯이 언어로서의 텍스트는 기호의 지위를 아날로그적 형태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즉 언어는 명백히 의미를 지시하는 티지탈적인 코드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언어적 기호이든 비언어적 기호이든 기호를 하나의 이미지로 간주할 때 의미화과정은 단순히 지시관계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미지의 의미화과정은 기표-기의의 지시관계만이 아닌 이미지들간의 배치관계, 그것의 도상적 층위와 상징적 층위의 계열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스포츠의 의미화과정은 하나의 스포츠경기나, 사건들이 자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이 자명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브라질 축구에 대한 제3세계 국가들의 축구팬들의 신화는 브라질 축구에 대한 판타지를 생산한다. 방글라데시나 네팔과 같은 피파랭킹이 최하위권에 속한 나라들의 경우 호나우드, 카를로스, 오나우딩요, 카푸 같은 선수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선수를 넘어서 절대적인 신뢰를 얻는 신화 속의 선수들로 등장한다. “브라질은 축구를 잘한다”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것이 신화를 생산하는 메시지가 될 경우에는 이는 자명한 진리이자 절재적인 신념체계가 된다.
가령 현재 미국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미프로레슬링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는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매니아들에게 그것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사실인것처럼 믿게만드는 신화체계를 가지고 있다. ”WWE\"의 전신이었던 \'WWF\' 시절 1999년에 ‘오버 엣지’(over edge)라는 제목의 순회 경기에서 연맹소속 선수인 오웬 하트가 경기도중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경기장 천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첫 장면에서 오웬 하트는 안전장치가 풀리는 바람에 링아래로 곤두발질해 버린 것이다. 사고난 직후 경기 파트너였던 선수들과 경기 안전요원들이 병원으로 급송했지만 그는 결국 뇌진탕으로 죽고 말았다. 나는 처음에 그 장면을 보면서 한동안 이것이 정말 실제로 벌어진 사고사인지 몰랐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WWF는 아주 정교하고 센세이셔널한 시나리오로 관중들과 시청자들을 수차례 속이는 연출을 경기 중에 보여왔고, 특히 하트코어 챔피언쉽 타이틀 매치의 경우는 거의 실전에서 생겨날 수 있는 부상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소위 ‘필름느와르’를 연상케 하는 잔인하고 생생한 폭력과정이 사전에 약속된 네러티브로 플롯화되곤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웬 하트는 변신의 귀재였다. 그는 ‘블루 블레이저’(blue blazer)라는 닉네임으로, 그 단어가 지시하듯 가면을 쓴 일종의 가운과 같은 푸른색 코드를 입고 경기장에서 게임을 펼쳤다. 요는 그가 가면을 쓰고 나타나면 상대방 선수는 항상 그의 가면을 벗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는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막으려고 발버둥친다. 이 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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