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루시다를 읽고...
본 자료는 6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해당 자료는 6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6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카메라루시다를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존재했던 것을 말한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의식은 반드시 향수어린 추억의 길을 택하는 게 아니라(얼마나 많은 사진들이 개인적인 시간을 벗어나 있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진의 의식은 확신의 길을 택한다. 즉 사진의 본질은 사진이 재현한 것을 승인해 주는 데에 있다.
사진은 창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증작용(認證作用) 그 자체이다. 드물긴 하지만, 사진이 이따금씩 사용하는 술책은 무엇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추려는 속임수이다.
사진은 거꾸로 된, 과거를 향한 예언이다. 카산드라(Cassandra, 그리스 신화에서 프리아모스의 딸로서 아폴론에게서 예언의 능력을 부여받음)처럼, 과거를 응시하고 있지만,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사진은 본성적으로 저의를 지니고 있으므로, 사물의 의미에 관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으나, 그 사물 자체의 존재에 관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사진의 힘은 일반적인 개념에는 (허구적인 것에는) 무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정신이 현실성을 확신시키기 위해 생각해낼 수 있는,또는 생각해낸 모든 수단보다는 탁월하다.
사실주의자들은-어떤 기호들이 사진의 해독을 명백히 굴절시켜 버리게 됨에도 불구하고-사진을 현실의 \'모사\'로 간주하지 않고, 지나간 현실의 발산물, 즉 예술이 아니 마술로 간주한다. 사진이 상사적인가 기호적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좋은 분석 방법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진이 현존에 관한 증명서이며, 확인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진의 확인은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간에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상학적인 관점을 취한다면, 사진이 가진 인증의 힘은 표현의 힘을 능가한다.
37
정지
사진에는 미래가 없다.(사진의 비장함, 우울함은 거기에 있다) 영화가 미래 지향적이고 따라서 전혀 우울하지 않은 데 비해, 사진은 미래 지향성을 갖지 않는다. 사진은 부동성으로 말미암아 현전화(現前化)로부터 과거의 정체성을 향해 역류한다. 사진에서 \'시간\'의 부동화는 반드시 극단적이고 기괴한 양태로 나타난다. 즉 \'시간\'은 출궁벗이 꽉 막혀 있다. (바로 여기에서 활인화가 사진과 맺는 관계가 생겨나는데, 그 원형은<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꼼짝도 않고 잠에 빠진 공주이다.) 사진이 우리의 떠들썩한 일상과 얽힌 \'현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부에는 비현재(非現在)라고 하는 하나의 점, 하나의 이상한 정지, 멈춤의 본질 자체가 자리잡고 있다.
38
맥빠진 죽음
이세상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든 젊은 사진가들은 시사성 있는 문제를 포착하는 데 헌신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죽음\'의 대리인들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의 시대는 그러한 방법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고대사회는 삶의 대체물인 추억이 영원히 살아남도록, 그리고 적어도,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는 불멸의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배려를 했다. \'기념물\'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죽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사진을, \'존재했던 것\'의 일반적이고 자연적인 증인으로 만듦으로써, 기념물을 부인했다. 같은 세기가 \'역사\'와 \'사진\'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패러독스이다. 그러나 \'역시\'는 실증적인 처방에 따라 만들어진 하나의 기억, 신화적 \'시간\'을 무너뜨리는 순수하게 지적인 담론인데 반하여, 사진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덧없는 무력함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것은 오래지 않아, 감정적으로든지 혹은 상징적으로든지, 더 이상 지속의 개념을 품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사진의 시대는 혁명의 시대이며, 저항의, 테러의, 폭발의 시대, 간단히 말해서 초조함의 시대, 모든 성숙을 거부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이 이미 존재했다\'는 놀라움도 역시 사라질 것이다.
39
푼크툼으로서의 시간
푼크툼은 세부 다시 말하면 부분적인 대상이다. 또한 푼크툼의 실례를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방비 상태로 찔릴 때의 적나라함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1865년, 젊은이 패인은 미국의 국무장관 시워드의 암살을 기도했다. 알렉산더 가드너 (Alexander Gardner)가 독방 감옥에서 그이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아름답고, 청년도 역시 아름답다. 그것이 스투디움이다. 그러나 푼크툼은 그가 곧 죽으리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진에서 그의 죽음은 실현될 것이고, 또 실현되었다라는 사실을 동시에 읽는다. 사진은 나에게 그 포즈이 절대과거(부정과거)를 보여줌으로써 미래의 죽음을 말해준다. 나를 찌르는 것, 그것은 이 과거와 미래의 등가 관계의 발견이다. 보도 사진의 범람과 잡다함 때문에 다소간 희미하게 지워져 버린 이 푼크툼은 역사적인 사진에서는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거기에는 언제나 \'시간\'의 압착이 있다. 사진의 인물은 이미 죽었으며, 동시에 곧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이 하나로 압착되어 있는 것이다.
40
개인적/공적(公的)
각각의 사진이, 언뜻 보기에는 살아 있는 자들이 소란스런 세께에 아무리 밀착해 있다고 하여도, 모든 일반성을 벗어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은 언제나 사진 속에 내 미래의 죽음을 가리키는 절박한 기호가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진이라는 것은 지루한 파티에서 귀찮은 의식에 따라 보아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언제나 혼자서 보아야 한다.
공공적인 사진읽기에도 언제나, 결국은 개인적인 읽기이다. 모든 사진은 그 대상물의 사적인 외관으로 읽힌다. 사진의 시대는,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 침입해 들어온 것, 혹은 어떤 새로운 사회적 가치의 창조라고 할 수 있는 사적인 것의 공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적인 것이 이제는 바로 그렇게 공적으로 소비된다. (인기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신문,잡지의 끊임없는 공격, 그것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 조치의 난점 등이 이러한 동향을 증명한다) 그러나 사생활이란 재산만은 아니고, 나의 영상이 자유롭게 나타나는 절대적으로 귀중하고 양도 불가능한 장(場)이다. 즉 두 영역에 따라 사진이 구성하는 세계. 한편에는 \'일반적인 영상\'들이, 다른 한편에는 나만의 사진이 되는 것이다.
41
탐색
한 장의 사진이 마음에 들 때, 또는 그

키워드

  • 가격2,0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7.06.08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378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