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요약] 위대한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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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책요약] 위대한 패배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으로 막대한 혼란을 부채질하고, 어이없는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장이 직접 밧줄을 푼 두 번째 구명정에도 65명 정원에 37명밖에 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남성들은 타고 싶어도 애초에 탈 수가 없었고, 여성들은 섬뜩해 보이는 어두운 바다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타이타닉호의 참사에서 마지막까지 목숨을 구한 사람은 구명정의 정원인 1,178명에 훨씬 못 미치는 711명에 불과했다.
4.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황제 - 황제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변변찮은 사람
- 1273년 독일 선제후들이 함스부르크가의 루돌프 백작을 왕으로 선출한 이후 이 가문에서는 독일 왕 5명, 독일 황제 17명, 스페인 왕 3명, 보헤미아 왕 2명, 헝가리 왕과 카스티야 왕이 각각 1명씩 배출되었다. 그 중에는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의 카를 5세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광스러운 패배자들
5. 롬멜 - 경탄과 환호, 그러나 결국엔 죽음
- 롬멜은 “우리 부대원들은 이 전투를 통해 단지 고향의 안전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기갑군단의 전통을 수호해야 한다.”
6. 체 게바라 - 열대우림의 피투성이 구세주
- 장 폴사르트르는 그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 불렀다. 지금껏 지구상에서 그렇게 철저히 강탈당한 것에 그렇게 엄청난 열정과 의지력을 쏟아부은 사람은 없었고, 그렇게 잔인했음에도 그렇게 많은 동정을 받은 인물도 없었다.
- 게바라는 양친에게 편지를 썼다. ‘말라비틀어진 늙은 말의 등에 몸을 싣고’ 다시 떠나야 한다고.
- 그는 두려움을 즐겼고, 두려움과 맞서 싸우는 것을 사랑했다. 또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력도 사랑했다. 그 밖에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가지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지구상 어디라도 불의로 인해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로 직접가서 함게 고통을 나누어야 하고, 그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 군대의 전체 지휘권만큼은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자, 볼리비아군의 지도자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캠프를 떠나 버렸다.
-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나는 삶을 떨쳐버릴 수 없는 습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게바라의 게릴라대원들은 11개월 동안 밀림 속에 머물며 정처 없이 이리저리 쫓겨 다녔다.
- 밀림에서 전 세계 인민들을 향해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미국을 향해 전면전을 펼쳐라. 제2, 제3, 아니, 더 많은 베트남이 나올 때까지 적의 심장부에 증오와 피와 죽음의 화살을 꽂아라!” 그 사이 네 명의 대원들이 도망을 쳤고, 46명이 매복한 적의 총탄에 맞아 차례로 쓰러졌다. 이윽고 사령관에게 최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는 단 여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 “쏘지 마라! 나는 체 게바라다.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게바라가 목숨을 구걸한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전 세계 인민들이 지켜보는 재판정에서 미제국주의와 쿠바의 ‘새로운 인간’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자 했다.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의 정치고문단과 미국중앙정보국(CIA)과 긴밀히 협의한 끝에 게바라의 마지막 의도를 눈치채고 기겁을 한다. 공연히 재판을 진행했다가 문제가 꼬이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볼리비아에는 사형 제도가 없었다. 결국 볼리비아 정보는 게바라를 비밀리에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 체 게바라의 죽음과 함께 제3세계의 독재자들과 서구의 수많은 정부들이 가졌던 희망, 즉 세계의 골칫거리가 이제야 사라졌다는 안도감은 급속히 실망으로 바뀌어갔다. 게바라는 살았을 때보다 오히려 죽어서 더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그를 경탄하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이 휘황찬란한 영웅조차도 끝내 패배에 이르자 그들은 그를 숭배함으로써 자신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했다. 게바라는 이 세계에 비해 너무나 선한 모든 사람이 결국 악한 세상 때문에 맞아 죽고 마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주었다.
- 게바라 붐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인간 세상에서는 예부터 영웅이되려면 ‘실패와 요절’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했는데, 게바라 역시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7. 고르바초프 - 다른 민족은 해방시켰지만 정작 자신의 제국은 잃어버린 남자
- 소비에트 정치국원이 공식석상에서 미소를 짓고, 한 번에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라가는 모습은 당시 런던과 전 서구 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 그는 마거릿 대처 수상의 관저는 찾아갔으면서도 정작 런던에 있는 마르크스의 묘소는 방문하지 않았다.
- 레닌,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주네프, 그리고 건강이 허약한 안드로포프, 체르넨코의 후임자가 되었다.
-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 있었다. 다섯 명의 서기장 밑에서 28년 동안 외무장관을 지낸 안드레이 그로미코였다. 흐루시초프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그로미코 그 친구는 뭔가 명령을 내리면 몇 달 동안 꿈쩍도 않고 얼음덩어리 위에 앉아 있을 사람이야. 바지도 내린 채 말이야.” 결국 고르바초프는 그로미코를 외무장관에서 밀어낸 뒤 허울만 좋고 실권은 없는 소비에트최고회의 간부회 의장에 임명하였다.
- ‘알코올 중독 퇴치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쳐 나갔다. 이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서민들의 따뜻한 벗이라 할 수 있는 보드카의 가격을 급격히 올려 버렸다. 서민들은 격분했고, 밀주가 성행했으며, 가짜 알코올을 먹고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서구에서 그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높아갔지만 동구에서는 점점 시들해져 갔다.
- 헬무트 콜 독일 수상은 크렘린의 새 지도자가 서구 사회를 향해 던진 미소와 긴장완화의 메시지에 불신을 품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홍보가 뭔지 아는 사람입니다. 나치의 괴벨스도 그랬지요.” 레이건 대통령 역시 고르바초프에 대한 의구심을떨치지 못했다. 그래서 레이캬비크에서 고르바초프와 만났을 때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군축 협상안을 단호하게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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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20
  • 저작시기2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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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1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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