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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감행한다. 동진이 류를 죽일 때 “너 착한 놈 인거 안다”라고 말했을 때 이미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다. 절대 선과 악이 없는 상황에서의 복수는 무엇을 말하는가? 시멘트 건물과도 같았던 냉철한 복수는 주인공 모두가 죽는 비극을 맞이했다.
<올드보이>에서는 어떤가? 15년을 이유도 모른 채 갇혀있던 오대수는 일방적인 피해자로 보였다. 복수를 행하는 주체였던 그가 자신을 가둔 이우진을 대면하며 상황은 반전된다. 복수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할이 모호해지는 순간, 그렇게 뜨겁던 복수는 목적을 잃고 공중으로 분해 된다. 결과는 남지만 말이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다. 그렇기에 금자 혹은 유괴범의 부모들이 백 선생에게 하는 행동은 복수라기보다는 처벌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의 메시지는 지난 두 작품에서처럼 ‘복수는 누가 누구에게 왜 해야 하는 것인가’에서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이렇게 해도 되는가?’로 바뀌어 버린다.
인물들의 개연성을 비롯한 상황의 전개를 통해 ‘달콤하지 않은 복수’를 느끼게 했던 두 작품에 비해 금자씨는 스스로 ‘복수는 결코 달콤하지 않아’라고 말해준다. 금자씨가 더 하얗고 깨끗하게 살기위해 두부 케
<올드보이>에서는 어떤가? 15년을 이유도 모른 채 갇혀있던 오대수는 일방적인 피해자로 보였다. 복수를 행하는 주체였던 그가 자신을 가둔 이우진을 대면하며 상황은 반전된다. 복수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할이 모호해지는 순간, 그렇게 뜨겁던 복수는 목적을 잃고 공중으로 분해 된다. 결과는 남지만 말이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다. 그렇기에 금자 혹은 유괴범의 부모들이 백 선생에게 하는 행동은 복수라기보다는 처벌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의 메시지는 지난 두 작품에서처럼 ‘복수는 누가 누구에게 왜 해야 하는 것인가’에서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이렇게 해도 되는가?’로 바뀌어 버린다.
인물들의 개연성을 비롯한 상황의 전개를 통해 ‘달콤하지 않은 복수’를 느끼게 했던 두 작품에 비해 금자씨는 스스로 ‘복수는 결코 달콤하지 않아’라고 말해준다. 금자씨가 더 하얗고 깨끗하게 살기위해 두부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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