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역 문화제 소개 (감산사,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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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주지역 문화제 소개 (감산사,괘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감산사♣
1.소개
2.김지성
3.감산사의 유물
♣괘릉♣
1.소개
2.원성왕
3.원성왕릉의 제문제
4.괘릉의 유물

Ⅲ.결론

본문내용

4m나 되는 이 거대한 석인은 深目高鼻한 서역인으로서 무사의 복장인 갑옷을 입
지 않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부드러운 느낌의 옷을 입고 있다. 이 주인공에 대해서는 페르시아인.아라비아인.이란인.오만인 등 추측이 난무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서도 무인상, 객사상, 병사상 등 각기 다른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서역인상의 뒷모습 가운데는 직경 10cm정도의 복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이 획인되고 있다. 즉 이것은 신라 땅에서 서역인이 복주머니를 차고 있다는 사실은 조각상의 예술성 부여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서역인의 신라 내왕이나 정착에 바탕을 둔 두 문화가 융합된 결과라 하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서 있는 석인상은 지금까지 문인석 또는 신라인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의 견해는 기존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문인석은 관검 석인으로 신라인은 위구르인으로 대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석인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전면은 문복을 착용하고 있는데 옷 속에 칼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옷자락 끝에는 칼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문복이 아닌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것이 앞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울러 제도상의 문무을 살펴보면 중국에서는 북송부터 우리 나라는 고려 때부터 문무관이 구별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신라 시대는 문무의 구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신라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종래의 생각을 뒤바꾼 것은 고려대 권영필 교수이다. 그는 1992년에 발표한 논고에서 이 석인상을 일러 전체 윤곽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짙은 눈썹을 강조한 나머지 조각적으로 표현하여 이마와 눈자위를 턱이지게 하였으며 오뚝한 코와 꽉다문 입 사이에 팔자형의 수염을 얹고 있다.
또 양 귀밑에서부터 턱 전체를 가지런히 빗겨진 턱수염이 상당한 볼륨으로 덮고있다. 가늘고 긴 눈은 한국적이라 다소 친근감을 주고 있지만 악센트를 주고 있는 터럭들은 이례적이라 하겠다. 터럭들이 이란계와 같은 곱슬곱슬한 것이 아니라 직선형이다. 이러한 면들은 위구르인들의 인상과 직결되는 요소들이다. 용강동 석실 고분 출토의 문관상이 이에 해당된다 하겠다.
그러면 왜 신라왕의 능묘에 신라인 신하들을 조각하지 않고 외국인의 모습을 조각하여 배치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신라는 당의 능묘 제도를 숙지하고 있어서 능묘 앞에 문무인석과 객사를 도열시킬 제도적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신라와 당과의 관계가 대등관계에 처해 있지 못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와 같은 제도에 대한 욕구는 당연히 唐制의 縮小 또는 自肅의 形態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라고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왕릉의 완비된 모습은 왕의 계승 관계가 부자 상속 또는 형제 상속 등 가장 안정적인 정치 상황일 경우에 한하여 많이 나타나고 있다. 또 한가지 부언하여 둘 것도 1926년에 일본사람들이 백주에 공공연하게 도굴하는 것을 당시 경주군청 주사 김한이 보고 제지하였다고 하며 유물의 도굴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이곳의 난간 석주 1개가 괘릉 뒷마을에 있는 수봉정 정원에 놓여 있으며 3개 부분으로 파손되어 있다.
4.괘릉의 유물
좌상(左上) : 괘릉의 전경 우상(右上) : 괘릉의 석인상1
좌하(左下) : 괘릉의 석인상2 우하(右下) : 괘릉의 사자상
Ⅲ.결론
화려한 유물들과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잊혀져 있던 감산사와 괘릉.
우리는 괘릉과 감산사의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금 알고 찬란했던 신라의 역사를 감산사와 괘릉으로 하여금 재조명 해보는 기회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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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8.02
  • 저작시기201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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