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과 민족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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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상과 민족정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序 論

本 論
◆ 한국인의 정체성과 종교교육:동학과 문명동진론
◆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
◆ 동학의 통논리와 통일
◆ 동학의 무극대도와 통일
◆ 동학의 조화사상과 통일
◆ 평화통일학에 대해: 협상통일로
◆ 평화통일학에 대해: 민족공동체의 건설로
◆ 한국의 민족주의: 동학과 관련하여
◆ 동학과 단군: 진정한 보수주의란?
◆ 해원상생과 남북통일
◆ 홍익인간사상과 통일이념: 한국주의
◆ 동학사상과 통일이념: 중의제적 한국민주주의
◆ 효 사상을 중심으로
◆ 남북의 평화관

結 論

본문내용

배격하고, 의식과 무의식을 하나의 ‘사실존재’로 묶어서 생각한다. 캅은 기독교를 이러한 사실존재적인 성격으로 보아 원시적인, 그리고 차축시대의 通全者로 보았다. 이와 같은 캅의 과정철학적 방법론은 고운의 글을 이해하는데 아스퍼스의 이론에서 느끼는 거부감보다는 적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볼때 유, 불, 도 3교와 ‘원시적 존재구조’에 해당하는 巫와 ‘문명적 존재구조’에 해당하는 仙이 있어왔다. 한국문화의 특징은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동학의 존재구조는 차축시대의 여러 요소와 차축시대 이전의 여러 요소들을 모두 습합하고 기독교적 존재구조마저 수용하여 새 틀을 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의 등장을 단순히 조선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단말마적으로 일어난 하나의 현상으로만 이해한다면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의 ‘영적’이란 요소는 우대인들에게는 거리기는 것이요, 그기스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초대 기독교인들은 영적 경험 속에서 자신은 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과 신은 하늘에 초월해 있는 동시에 자기에게 성령으로 쏟아 부으시는 분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달되었을 때 다른 아시아문화권에서와 달리 급속하게 전달된 큰 이유도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영적인 요소와 무적인 요소가 만나는 데 있었다. 그리고 수운이 서학과 그 운이 같다고 할 때에도 결국 이러한 영지주의적 요소를 무시하고 생각할 수 없다. 매다와 대상의 되먹임은 바로 카오tm 현상이며, 이는 거울이 반사하고 반사되는 것과도 같다. 이제 1천년이 지나 고운의 27세손인 수운이 이렇게 심화. 발전된 유, 불,도에 새로 들어온 서학까지 수용하여 품격으로서의 충류도로 다시 되먹임시켰던 것이다. 수운에게는 풍류도라는 되먹임된 변수가 있었다. 이와 같이 한국사상은 3교가 개별화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묶여졌다.
기독교는 이웃에 대하여 책임적이다. 이를 ‘사랑’이라고 한다. 기독교의 궁극성은 사랑의 실천에 있다. 불교는 자아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본다. 소승불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사랑이 갖는 문제점은 사랑하는 주체와 사랑받는 객체를 엄격하게 나누려는 데 있다. 즉 사랑하는 주체인 자아 그 자체는 그대로 남게 된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이러한 구별자체도 없어야 한다고 한다. 족재의 자리를 떠나라 하는 것은 사상의 주체마저 버리라는 것이다. 서승불교는 깨달음을 통한 자기초월로 가능하며 대승불교는 기독교와 유사한 이웃사랑을 강조하는 보살사상이 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나 불교가 모두 겸하고 있는 큰 과오는 자아를 부인하라고 가르친 붓다나 예수 자신을 숭배나 예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이다. 몸으로서 붓다가 진리 자체로서의 붓다인 ‘法身’에 도달하기는 아직 인간의 근기가 모자라는 그 중간단계에 보신이 있다. 서학의 신관은 공격적인데 이는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A형 논리에 기인한다. 그리스의 합리적 자아, 그리고 히브리의 인격신관은 진취적인 역사의식을 고취시켜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여성과 자연을 무참하게 파괴시킨 것도 사실이다. 서교가 그리스사상과 결탁하여 서학이 됨으로써 수많은 이단자를 처형하고 여자를 마녀 사냥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 반면에 동양의 E형 논리에 의한 범아일체사상은 자연과의 조화에는 기여했으나 역사의 역동성에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구한말 실학자들 가운데서 천주교를 수용햇던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동양 역사에서 잃어버린 인격신을 발견하고, 그리고는 서교를 통해 역사의 역동성을 다시 회복시키려 했던 데 있었다. 수은은 자연을 파괴시킨 기독교와 유교, 그리고 역사를 상실한 도교와 불교에 대하여 희망을 걸지 않았다. 서학에 대하여 동학을 선언했던 것이다. 이것이 동학의 새로운 신관이 등장한 진정한 이유이다. 여기서 동양의 대안이 서양일 수 없고 서양의 대안이 동양일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서양 것이든 동양 것이든 그 운이 다 한데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양자를 종합하는 새로운 기틀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동학이다. 동학의 신관은 고운의 仙사상을 통해 고전적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선이 무적인 성격과 철학적인 성격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닐 수 있었던 까닭은 한국 선이 중국 선과는 달리 내단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국선의 내단적인 특징은 단군신화에서 곰이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으로만 100여 일을 견디어 마침내 인간이 되었다는 설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철학은 근본적으로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은 자기 언급적 반성의식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내단적 성격 없이는 의식이 전환될 수 없다. 무가 선으로 그리고 철학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자기 언급적 내단은 필요하다. 외관은 자칫 장생불사와 같은 마음이 아닌 몸의 보신과 장생으로 기울어져 쉽게 현대적 기복으로 빠지고 만다. 이 모두가 나르시스의 위험이다. 지금도 홍콩과 대만의 시내 중심가에서 버젓이 성립되고 있는 도교사원에서의 외단적 기복신앙은 중국적 선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망한 역사적 사실은 중국의 외단적 성격 때문이다. 중국을 잠자는 호랑이라고 할 때에 잠자는 것이 아니라 아편중독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미 고대로부터 고질화된 외단적 성격 때문이다.
풍류도의 내밀적 특징은 ‘신인합일’이며 이를 두고 ‘仙化’라 부른다. 신인합일이란 내밀적 종교의 특징으로 신이 인간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신이다. 이것이 곧 내밀적 종교의 특징이며 내단을 통하여 가능하게 된다.
내단은 주로 극기수련을 통한 자기 초월을 한다. 그래서 내단을 통해서 초원적 통일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초월적 통일은 메타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메타적 성격을 지닌 사상적 요소없이는 초월적 통일은 불가능하다. 고운에게서 이러한 무극대도의 메타적인 요소는 풍류도였다. 이러한 메타적 성격없이 ‘건너감’과 ‘돌아옴’이란 행위만으로는 결코 창조적 변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교토학파에서 이런 메타적인 성격이 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메타적 요소는 물과 구름같이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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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8.20
  • 저작시기2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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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2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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