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

본문내용

위에서 ‘두 눈이 짓무르도록’ 많은 것을 보고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만큼 많은 것을 들었을 우체국의 게으름을 화자가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게으름에 축적된 시간과 삶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뜻이 된다. 김수이, 위의 글. pp.288~289
그래서 화자는 자신의 세월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만 결코 큰 소리를 내며 탓하지 못하는 것이다.
(…)
이 세상 모든 길이/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바닷가 우체국 」,p12 )
이 세상 모든 길이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우체국은 그리움과 그리움, 기다림과 기다림이 교신하는 영원한 정거장이다. 홍용희, 『꽃과 어둠의 산조』, 문학과 지성사, 1999, p.255
화자는 무언가가 그리워 질 때면 우체국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무언가가 기다려질 때면 갈래갈래 흩어진 길들을 따라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삶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체국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애틋한 긴장이 지속적으로 살고 있는 집이다. 홍용의, 앞의 책, p.255
Ⅲ. 결론
21세기 자본주의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 때 80~9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민중시인 들의 시의 소재가 사라지고 있다. 원래 문학이란 그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고 성찰함으로써 우리에게 새롭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영향이 점점 커져감으로써 문학의 본질은 그 손상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민중시인들의 시의 소재가 사라짐은 물론이고 시가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단지 상품으로 전락해 버리는 일이 생겼다.
그 속에서 안도현은 시인은 끝내 자본주의 세상의 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에 얼쩡거리는 순간 모두가 망한다는 것을 이 시집이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고재중, 앞의 책, p.167
라는 평을 받았다. 또 이와는 달리 안도현의 시가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세기말의 전환기인 지금, 대부분이 시를 외면하거나 상품화하는 와중에서도 안도현은 '순진하게' 시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문흥술, 앞의 책, p.228
라는 평을 받고도 있다.
이런 대립적인 평가가 제시되는 안도현 시인에 대해 본고는 시인이 비인간화된 현실 속에서 사소한 것에서 본질적 가치를 찾아내려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인은 일상적이고 서민적인 소재에서부터 시작하여 본질적인 대상을 그리워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시들은 메말라가는 우리의 마음에 단비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그 때를 동경하며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만큼 우리에게 와 닿는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가 마음의 시라고 일컬어지는 것일 것이다.
앞으로도 안도현 시인과 같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줄 수 있는 마음의 시가 많이 발표되기를 바란다.
Ⅳ. 참고문헌
1) 기본자료
안도현, 『 바닷가 우체국 』, 문학동네, 2005
2) 국내논저
고재종, 『거미가 짓는 집』, 바다출판사, 2000년, 가을
김수이, 『환각의 칼날』, 청동거울, 2000
김정희, 「안도현 시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2005
문흥술, 『시원의 울림』, 청동거울, 1998
이문재,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문학동네, 2003
정효구, 『시 읽는 기쁨』, 작가정신, 2001
홍용희, 『꽃과 어둠의 산조』, 문학과 지성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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