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우키요에 (浮世) 란?
2.1 우키요에의 정의와 기원
2.2 우키요에의 종류
3. 우키요에의 대표화가들
3.1 히시카와 모로노부
3.2 가츠시카 호쿠사이
3.3 토오슈우사이 샤라쿠
4. 자포니즘(Japonism)의 열풍
4.1 유럽속의 자포니즘
4.2 고흐와 모네
5. 결론
6. 참고 문헌
2. 우키요에 (浮世) 란?
2.1 우키요에의 정의와 기원
2.2 우키요에의 종류
3. 우키요에의 대표화가들
3.1 히시카와 모로노부
3.2 가츠시카 호쿠사이
3.3 토오슈우사이 샤라쿠
4. 자포니즘(Japonism)의 열풍
4.1 유럽속의 자포니즘
4.2 고흐와 모네
5. 결론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발달했다. 1764년에 처음 등장한 이 다색 판화를 ‘니시키에(錦繪)’라고 한다. 이 니시키에는 이전과 비교해 가장 획기적이고 커다란 기법의 전환이었기 때문에, 니시키에 이전의 판화, 1764년 이전의 판화를 초기 판화로 보고 있다. 니시키에는 본래 베니즈리에 뛰어났던 화가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에 의해 발달되었다. 사람들의 선물용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달력을 사람들이 하루노부에게 주문하면서 니시키에가 탄생했다. 일곱, 여덟 개의 다른 판을 이용해서 복잡한 색감을 표현해낸 것이다. 그리고 오오쿠비에(大首繪)라는 양식은 1790년경부터 수립되었다. 이 오오쿠비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인물의 가슴부터 얼굴만을 확대해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양식으로 심리 묘사가 뛰어났다. 이 오오쿠비에 양식은 가부키 배우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양식에서 두각을 나타난 화가는 바로 ‘토오슈우사이 샤라쿠(東州齋寫樂)’이다. 그가 그린 판화들의 인물들은 얼굴의 표정, 눈의 각도와 형태, 그리고 입술 등을 뛰어나게 표현해 그들의 심리 상태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키요에는 특정한 주문에 의해서 그려졌다기 보다는 대중적이고 유행을 따르는 그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주문 상품이 아닌 기성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에도 시대의 성행했던 출판업과 더불어 등장했던 ‘한모토(板元)’는 서적 도매상으로 이런 우키요에의 제작 과정에 참여해 간섭을 했다. 우키요에는 이익을 위해 출판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한모토의 이런 간섭이 행해졌던 것이다. 베니에, 니시키에와 같은 우키요에는 전적으로 화가에 의한 그림이 아니라 한모토의 간섭을 받은, 조각과 인쇄의 기술에 영향을 받았던 상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3. 우키요에의 대표화가들
우키요에의 화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하나, 그 작품의 양이 워낙 방대하여 여기에는 우키요에의 12거장들 중에서 대표적인 몇몇 작가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3.1 우키요에의 시작 - 히시카와 모로노부 (菱川師宣)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는 에도 시대의 초기인 1624년에서 1644년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아와(安房) 지금의 치바(千葉)현.
지방에서 누이하쿠시 누이하쿠시(縫箔師)-의복에 자수를 넣거나 문양을 새기는 직종.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모로노부는 어릴 때부터 옷감에 문양등을 그리는 일을 도우면서 회화를 접할 수 있었다. 후에 모로노부는 에도로 진출하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에도 시대에는 출판업이 무척 성행했다. 만지(万治) 1658.7.23~1661.4.25
시대와 간분(寬文) 1661.4.25~1673.9.21
시대를 거치면서 호황을 맞이한 에도의 출판계에서는 여러 가지 삽화본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삽화들은 작자 미상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모로노부는 이러한 출판계를 통해 등장한다.삽화본에 그림을 그려넣은 화가들이 이름을 남기지 않는 당시의 상황을 바꿔놓은 히시카와 모로노부는 자신의 이름을 삽화에 새겨놓음으로써 삽화본의 발전을 가져온다. 이를 계기로 삽화는 질적으로도 더 발전한다. 그는 ‘에즈쿠시(くし)’ 같은 종류의 그림을 많이 늘어놓은 그림.
와 같은 종류를 많이 제작했는데, 이런 삽화들은 서민들의 생활 즉, 풍속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모로노부는 그 시대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모로노부의 풍속화들속의 인물들은 화면에 가득히 확대되어 있다. 유연한 선과 더불어 뛰어난 기술의 진보는 모로노부의 그림을 더욱 질적으로 상승시켜 주었고, 이는 에도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만년에 들어서모로노부의 작품들은 솜씨가 떨어지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모로노부의 제자들이 그의 양식대로 그림을 대량으로 생산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모로노부와 그의 자식, 제자들은 우키요에를 질적, 양적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삽화용 그림들은 감상용 그림으로 발전해갔으며, 모로노부 풍의 그림들도 확산되었다. 1694년 모로노부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이들의 세력은 우키요에의 세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3.2 후지산을 사랑한 화가 - 가츠시카 호쿠사이 (葛飾北齋)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는 1760년 9월에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자연히 우키요에에 대한 관심을 가진 호쿠사이는 1778년, 그가 19세 되던 해에는 가츠카와
이와 같은 우키요에는 특정한 주문에 의해서 그려졌다기 보다는 대중적이고 유행을 따르는 그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주문 상품이 아닌 기성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에도 시대의 성행했던 출판업과 더불어 등장했던 ‘한모토(板元)’는 서적 도매상으로 이런 우키요에의 제작 과정에 참여해 간섭을 했다. 우키요에는 이익을 위해 출판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한모토의 이런 간섭이 행해졌던 것이다. 베니에, 니시키에와 같은 우키요에는 전적으로 화가에 의한 그림이 아니라 한모토의 간섭을 받은, 조각과 인쇄의 기술에 영향을 받았던 상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3. 우키요에의 대표화가들
우키요에의 화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하나, 그 작품의 양이 워낙 방대하여 여기에는 우키요에의 12거장들 중에서 대표적인 몇몇 작가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3.1 우키요에의 시작 - 히시카와 모로노부 (菱川師宣)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는 에도 시대의 초기인 1624년에서 1644년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아와(安房) 지금의 치바(千葉)현.
지방에서 누이하쿠시 누이하쿠시(縫箔師)-의복에 자수를 넣거나 문양을 새기는 직종.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모로노부는 어릴 때부터 옷감에 문양등을 그리는 일을 도우면서 회화를 접할 수 있었다. 후에 모로노부는 에도로 진출하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에도 시대에는 출판업이 무척 성행했다. 만지(万治) 1658.7.23~1661.4.25
시대와 간분(寬文) 1661.4.25~1673.9.21
시대를 거치면서 호황을 맞이한 에도의 출판계에서는 여러 가지 삽화본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삽화들은 작자 미상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모로노부는 이러한 출판계를 통해 등장한다.삽화본에 그림을 그려넣은 화가들이 이름을 남기지 않는 당시의 상황을 바꿔놓은 히시카와 모로노부는 자신의 이름을 삽화에 새겨놓음으로써 삽화본의 발전을 가져온다. 이를 계기로 삽화는 질적으로도 더 발전한다. 그는 ‘에즈쿠시(くし)’ 같은 종류의 그림을 많이 늘어놓은 그림.
와 같은 종류를 많이 제작했는데, 이런 삽화들은 서민들의 생활 즉, 풍속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모로노부는 그 시대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모로노부의 풍속화들속의 인물들은 화면에 가득히 확대되어 있다. 유연한 선과 더불어 뛰어난 기술의 진보는 모로노부의 그림을 더욱 질적으로 상승시켜 주었고, 이는 에도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만년에 들어서모로노부의 작품들은 솜씨가 떨어지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모로노부의 제자들이 그의 양식대로 그림을 대량으로 생산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모로노부와 그의 자식, 제자들은 우키요에를 질적, 양적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삽화용 그림들은 감상용 그림으로 발전해갔으며, 모로노부 풍의 그림들도 확산되었다. 1694년 모로노부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이들의 세력은 우키요에의 세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3.2 후지산을 사랑한 화가 - 가츠시카 호쿠사이 (葛飾北齋)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는 1760년 9월에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자연히 우키요에에 대한 관심을 가진 호쿠사이는 1778년, 그가 19세 되던 해에는 가츠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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