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목 : 한니발을 왜 위대한 장수라 말하는가?
제목 : 나폴레옹, 영웅의 뒷모습
제목 : 붉은 독재자 스탈린
제목 : 나치의 선전술
제목 : 나폴레옹, 영웅의 뒷모습
제목 : 붉은 독재자 스탈린
제목 : 나치의 선전술
본문내용
이런 뛰어난 정치선전술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마 누구보다 더 뛰어난 선전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국민을 현혹시켰으며 무시무시한 세계대전을 또다시 일으키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나치의 반민주적인 선전술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치의 선전술로는 어떤 것이 있으며 왜 오늘날 비판적인이 알아보도록 하자.
2. 본 론
1918년의 1차 세계대전의 패전은 사회주의자와 유태인들의 배반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되었고, 패전과 이로 인한 영토의 상실로 독일 국민은 굴욜감을 되씹어야 했고, 그것은 국민의 대부분이 민족주의의 풍조와 국내의 배반자나 전승국에 대한 복수심을 갖게 된 원인이 되었다. 또한 패전에 따른 경제위기는 주체할 수 없이 치솟아 오르는 인플레이션을 가져 왔고, 거기에다 30년대 세계공황의 여파가 가세함으로써 당시의 독일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1929년에 150만을 헤아렸던 실업자는 1932년에는 6백만에 이르렀다. 국내의 중산계급은 몰락하였고 무산계급의 궁핍은 극도로 비참한 상태에 빠짐으로써 독일의 사회전체가 이때 파국적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나서서 이 혼란스런 사회를 바로 잡아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때 마침 히틀러가 등장하게 되었다.
1917년 7월 히틀러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이에른의 한 정당의 당원이었다. 이 당이 바로 나치인데 이것은 몇 년 후에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이 되었고 19세기 말엽 유럽에 일반적으로 공동되어 있던 반유태주의 백색인종 지상주의와 반 민족주의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발생하였다. 나치의 지지자로서는 항상 몰락의 위협을 받고 있던 중산계급이었다.
나치의 정치적 교조는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등장하는 나치즘의 민족이라고 하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가치나 신앙으로 소개되는 신화적, 주술적 요소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나치가 강조했던 민족의 신화나 지도자원리의 신화 등이 모두 초경험적, 초현실적, 비합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단순한 이론보다는 힘이 되었으며,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행동 원천이 되었다.
따라서 나치 체제의 지도자 히틀러는 당의 수령으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통합된 지위를 차지함으로써 조국이 신이 되고 민족주의가 종교가 되는 것처럼 지도자상이 신격화되었던 것이다.
또한 나치는 대중집회를 열었는데 대중집회는 시위운동과 더불어 정서적 동일화와 귀속감, 연대감을 높이기 위해 오늘날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정치 기술이다. 히틀러는 대중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했다. 그는 대중집회가 대중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과 미암시성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여 분위기, 시작, 무대장치, 조명, 음악 등에 무서울 정도로 철저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Mein Kampt'에서의 공식을 따랐으니 즉 진실성과 관계없이 의식전달은 간결하고 되풀이해서 하며 상징 훈장 등 보상을 주고 색깔을 이용한 감정적 격정과 애국적인 열정을 부추기어 그의 국민들을 현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인 광인의 수준에까지 몰아 세웠던 것이다. 전체주의체제의 등장과 특징에 관한 연구, 독일 NAZI체제를 중심으로 : 주형식, 석사학위논문, 1988
선전이라고 하면 상대방의 태도나 행동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변용시키려는 목적에서 상징 기타의 수단을 통해, 진실과는 관계없는 일방적이고 조작적인 정보나 메시지를 불특정 다수에게,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일단의 커뮤니케이션행위 또는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선동은 특정 사상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를 유도할 목적으로 대중을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적 측면에서 조직화하는 행위인바 이것은 즉 합리적인 설득에 의해서 라기 보다 대중의 비합리적인 정서와 감정에 주력함으로써 대중운동을 유발, 선동자의 목적에 부합시키려는 의도로 쓰여지는 방법이다. 대중선전 선동에 관한 연구 : 소련공산체제와 나치체제 비교 - 조승섭, 연세대 행정대학원, 2004, P. 36~38
하겐크로이츠
- Haken은 Hooks (갈고리), kreuz는 cross (십자가)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바꾸면 "갈고리 십자가"이다
독일 나치체제는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으로 상징을 매우 중요시 하여 사용하였다. 대중의 관념이란 단순한 것이 조금만 있으면 된다는 파악에서 각종의 상징조작과 심리조적을 통하여 대중의 비합리적인 에너지를 정치 과정에 흡수하였다. 그런데 나치즘은 허위의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냉정한 이성에 의한 토론이 될 수 없었다. 고로 나치는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억제하여 가능한 한 개의의 고립화와 원자화를 기획했으며, 항상 대중 집회의 열광적인 분위기속에서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나치즘의 교화를 수행하였고 특히 라디오를 비롯한 모든 메스미디어는 완전히 독점하여 대중조작에 크게 이용했다.
3. 결 론
나치즘의 대중선전 선동은 상술한 방법들을 종합적으로 동원, 구사한 점에 있어서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의 보다 원시적인 수법들이 히틀러 이전에 간헐적으로 행하여지기는 했으나 히틀러는 그러한 방법들 보다 고차원적으로 체제, 종합화하였다.
그러나 나치는 심리전에는 능했지만 특히 정치선전의 대부분이 경제적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모호했던 바 그 중에서도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생산적이며 적극적인 대안을 갖지 못했다.
어떤 사회에 있어서도 지배하는 소수계급과 지배받는 다수계급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선전, 선동은 이와 같은 지배엘리트와 조작계층인 대중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발생될 소지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원래 인간은 권력의 맛에 도취적이기 쉬우며 한번 장악한 권력은 영원히 놓지 않으려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역사상 수많은 지배자들이 대중을 동원하고 조작하여 자기 권력의 오랫동안 유지할려고 했었던 것 같다.
1. 전체주의체제의 등장과 특징에 관한 연구, 독일 NAZI체제를 중심으로 - 주형식, 석사학위논문, 1988, P. 51~52
2. 대중선전 선동에 관한 연구 : 소련공산체제와 나치체제 비교 - 조승섭 연세대 행정대학원, 2004, P. 36~38
2. 본 론
1918년의 1차 세계대전의 패전은 사회주의자와 유태인들의 배반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되었고, 패전과 이로 인한 영토의 상실로 독일 국민은 굴욜감을 되씹어야 했고, 그것은 국민의 대부분이 민족주의의 풍조와 국내의 배반자나 전승국에 대한 복수심을 갖게 된 원인이 되었다. 또한 패전에 따른 경제위기는 주체할 수 없이 치솟아 오르는 인플레이션을 가져 왔고, 거기에다 30년대 세계공황의 여파가 가세함으로써 당시의 독일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1929년에 150만을 헤아렸던 실업자는 1932년에는 6백만에 이르렀다. 국내의 중산계급은 몰락하였고 무산계급의 궁핍은 극도로 비참한 상태에 빠짐으로써 독일의 사회전체가 이때 파국적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나서서 이 혼란스런 사회를 바로 잡아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때 마침 히틀러가 등장하게 되었다.
1917년 7월 히틀러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이에른의 한 정당의 당원이었다. 이 당이 바로 나치인데 이것은 몇 년 후에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이 되었고 19세기 말엽 유럽에 일반적으로 공동되어 있던 반유태주의 백색인종 지상주의와 반 민족주의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발생하였다. 나치의 지지자로서는 항상 몰락의 위협을 받고 있던 중산계급이었다.
나치의 정치적 교조는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등장하는 나치즘의 민족이라고 하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가치나 신앙으로 소개되는 신화적, 주술적 요소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나치가 강조했던 민족의 신화나 지도자원리의 신화 등이 모두 초경험적, 초현실적, 비합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단순한 이론보다는 힘이 되었으며,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행동 원천이 되었다.
따라서 나치 체제의 지도자 히틀러는 당의 수령으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통합된 지위를 차지함으로써 조국이 신이 되고 민족주의가 종교가 되는 것처럼 지도자상이 신격화되었던 것이다.
또한 나치는 대중집회를 열었는데 대중집회는 시위운동과 더불어 정서적 동일화와 귀속감, 연대감을 높이기 위해 오늘날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정치 기술이다. 히틀러는 대중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했다. 그는 대중집회가 대중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과 미암시성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여 분위기, 시작, 무대장치, 조명, 음악 등에 무서울 정도로 철저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Mein Kampt'에서의 공식을 따랐으니 즉 진실성과 관계없이 의식전달은 간결하고 되풀이해서 하며 상징 훈장 등 보상을 주고 색깔을 이용한 감정적 격정과 애국적인 열정을 부추기어 그의 국민들을 현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인 광인의 수준에까지 몰아 세웠던 것이다. 전체주의체제의 등장과 특징에 관한 연구, 독일 NAZI체제를 중심으로 : 주형식, 석사학위논문, 1988
선전이라고 하면 상대방의 태도나 행동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변용시키려는 목적에서 상징 기타의 수단을 통해, 진실과는 관계없는 일방적이고 조작적인 정보나 메시지를 불특정 다수에게,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의도적이며 계획적인 일단의 커뮤니케이션행위 또는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선동은 특정 사상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를 유도할 목적으로 대중을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적 측면에서 조직화하는 행위인바 이것은 즉 합리적인 설득에 의해서 라기 보다 대중의 비합리적인 정서와 감정에 주력함으로써 대중운동을 유발, 선동자의 목적에 부합시키려는 의도로 쓰여지는 방법이다. 대중선전 선동에 관한 연구 : 소련공산체제와 나치체제 비교 - 조승섭, 연세대 행정대학원, 2004, P. 36~38
하겐크로이츠
- Haken은 Hooks (갈고리), kreuz는 cross (십자가)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바꾸면 "갈고리 십자가"이다
독일 나치체제는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으로 상징을 매우 중요시 하여 사용하였다. 대중의 관념이란 단순한 것이 조금만 있으면 된다는 파악에서 각종의 상징조작과 심리조적을 통하여 대중의 비합리적인 에너지를 정치 과정에 흡수하였다. 그런데 나치즘은 허위의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냉정한 이성에 의한 토론이 될 수 없었다. 고로 나치는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억제하여 가능한 한 개의의 고립화와 원자화를 기획했으며, 항상 대중 집회의 열광적인 분위기속에서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나치즘의 교화를 수행하였고 특히 라디오를 비롯한 모든 메스미디어는 완전히 독점하여 대중조작에 크게 이용했다.
3. 결 론
나치즘의 대중선전 선동은 상술한 방법들을 종합적으로 동원, 구사한 점에 있어서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의 보다 원시적인 수법들이 히틀러 이전에 간헐적으로 행하여지기는 했으나 히틀러는 그러한 방법들 보다 고차원적으로 체제, 종합화하였다.
그러나 나치는 심리전에는 능했지만 특히 정치선전의 대부분이 경제적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모호했던 바 그 중에서도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생산적이며 적극적인 대안을 갖지 못했다.
어떤 사회에 있어서도 지배하는 소수계급과 지배받는 다수계급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선전, 선동은 이와 같은 지배엘리트와 조작계층인 대중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발생될 소지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원래 인간은 권력의 맛에 도취적이기 쉬우며 한번 장악한 권력은 영원히 놓지 않으려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역사상 수많은 지배자들이 대중을 동원하고 조작하여 자기 권력의 오랫동안 유지할려고 했었던 것 같다.
1. 전체주의체제의 등장과 특징에 관한 연구, 독일 NAZI체제를 중심으로 - 주형식, 석사학위논문, 1988, P. 51~52
2. 대중선전 선동에 관한 연구 : 소련공산체제와 나치체제 비교 - 조승섭 연세대 행정대학원, 2004, P. 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