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지역 개관
1) 연혁
2) 지역 특성
3)지정문화재 현황
2. 사적별 정리
1) 중흥산성-중흥사(중흥산성3층석탑, 중흥사석조지장보살반가상, 쌍사자석등)
2) 옥룡사지
3) 유당공원(이팝나무, 비석거리)
4)광양 장도장 ․ 패도(粧刀匠 ․ 佩刀)
5)광양향교
3. 특집
주제: 도선의 유골은 왜 화장하지 않고 세골장을 했나?
1) 연혁
2) 지역 특성
3)지정문화재 현황
2. 사적별 정리
1) 중흥산성-중흥사(중흥산성3층석탑, 중흥사석조지장보살반가상, 쌍사자석등)
2) 옥룡사지
3) 유당공원(이팝나무, 비석거리)
4)광양 장도장 ․ 패도(粧刀匠 ․ 佩刀)
5)광양향교
3. 특집
주제: 도선의 유골은 왜 화장하지 않고 세골장을 했나?
본문내용
쿨 등 잡목과 혼재되어 있다. 1974년 9월 24일“광양백계산동백림”을 전라남도기념물 제 12호, 1997년 7월“옥룡사지”를 전라남도기념물 제 166호로 지정하였다가 두 구역을 포함하여 사적지로 승격하였다.
옥룡사는 도선국사가 35년이나 주석하였고 후백제와 고려전기에 활동하였던 통진대사가 주석하였던 고찰이다. 20세기 초반까지 도선과 통진의 쌍비와 쌍탑(부도)이 유존해 있었으며 쌍비의 탁본과 내용이 전해지고 있어 당시 불교계와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발굴조사를 통해 절터의 퇴적층이 170cm정도 되어 최소한 6개 층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도선과 통진의 부도전도 확인되었다. 또한 도선국사 부도전 중앙에는 석관이 안치되어 있고 그 안에 도선국사 유골로 추정되는 인골이 안치되어 있어 당시 선사들의 장법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자료를 획득하였다. 또한 동백림이 울타리처럼 절터 전체를 감싸고 있어 경관도 뛰어나다.
② 관련 인물 소개
-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 827~898)
신라 말의 유명한 선승(禪僧)이다. 827년(신라 흥덕왕 2년)에 전남 영암 구림에서 태어났고 15살 때 화엄사에 들어가‘중’이 되었다. 20살 때 곡성 태안사의‘혜철대사’의 제자가 되어 선종(禪宗)으로 개종하였고 37살 때 광양 옥룡사에 들어와 35년 동안 머무르면서 동백림 조성, 운암사 건립, 왕건의 고려왕국건설 예언, 풍수지리설, 선불교의 옥룡학파를 창설하여 많은 제자를 길렀으며 898년(신라 효공왕 2년)에 72살로 입적하였다. 고려 현종 때 대선사(大禪師), 숙종 때 왕사(王師)에 봉해지고 인종 때 선각국사(先覺國師)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리고 도선은 고려 태조 왕건의 출생 시부터 교육을 맡은 스승이었고 고려 창업에도 도움을 주었다.
③ 관련 전설
-옥룡사 창건 전설
도선국사가 지리산에 가서 조그만 돌무더기 밑에 토굴처럼 움막을 짓고 수도하다가 광양의 백계산으로 왔다. 그곳에서 절터로서 좋은 자리를 발견하였으나, 큰 연못이 있어 연못을 메우기가 어려웠다. 이에 도선국사는 방편을 써서 주위의 마을 사람들에게 눈병을 주고 나서 소금과 숯을 한 짐 지고 와서 연못에 부으면 눈병이 낫는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시험 삼아 그대로 했더니 눈병이 나아 그 소문이 퍼지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소금과 숯을 한 짐씩 지고 와 연못을 메우니 눈병이 나았다. 이렇게 하여 몇 천 명이 숯과 소금으로 연못을 메우게 되었다.
도선국사는 연못을 메운 곳에 옥룡사를 지었다. 그런데 그 연못에는 원래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못이 메워지자 여덟 마리 용은 다른 곳으로 갔으나, 백룡 한 마리가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도선국사는 제자 스님들에게 절대로 이 절에는 백씨 성을 가진 사람은 들이지 말라고 유언한 후에 입적하셨다. 도선국사는 입적 후에 자신의 시신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방안에 두라고 하였다. 몇 백 년이 지나서 옥룡사의 스님들은 도선국사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절의 부목쟁이로 백씨 성을 가진 사람을 들였다. 이 부목쟁이가 스님들에게 도선국사의 시신을 없애버리라고 부추기자 스님들이 그 시신을 태워버렸다. 그리하여 도선국사의 혼백이 돌아왔으나 자신의 시체가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부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옥룡사는 폐사가 되고 말았다.
3) 유당공원(이팝나무, 비석거리)
①사적개관
1547년 당시 광양현감 박세후에 의해 만들어진 유당공원은 광양읍 목성리에 있으며 팽나무, 이팝나무와 함께 수양버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 \'유당공원\'(버들못)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10년경 나무가 많이 베어져서 울창하던 고목나무 숲이 많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수백 년 묵은 고목나무 수십 그루가 남아 있어 연못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뛰어난 고전적 조경미를 보여주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광양읍은 광양읍성을 중심으로 북방과 남방이 허하다하여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국인 북방(칠성리)에는 일곱 개의 동산을 만들어 나무를 심는 한편 학이 나르는 형국인 남방에는 늪지대를 파서 연못을 만들고 주위에 나무를 심어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당공원을 비롯하여 광양읍성 남방에 조성된 숲은 광양만에 자주 나타나는 노략질을 하던 왜구들로부터 읍성을 숨겨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봄·여름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실은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되 쏘이는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는 기능도 하였다. 대개는 공원이 높은 지대에 만들어진데 비하여 유당공원은 늪지대를 중심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낮은 곳에 자리해 왔다. 그런데 이처럼 연못과 고목나무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고풍스런 멋을 지닌 경우는 전국 어디에서고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유당공원은 한마디로 연못과 고목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한국식 전통공원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주변 8,842평을 조성하여 광양읍성 전통고전미를 살린 시민휴식공간으로 제공되면 광양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②문화재
㉠이팝나무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 235호
소유자: 국유와 사유
소재지: 광양시 광양읍 목성리 673-1
면적: 4,930평
지정연월일: 1971년 9월 13일
유래
유당공원은 조선시대에 광양읍성을 쌓고 멀리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었던 곳이다. 성은 없어졌으나 나무만은 남아있다.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가 남아있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태풍의 상륙지이므로 때로는 풍수 피해가 심하였다. 1925년, 1933년, 특히 1936년에는 초속 32m의 기록이 있어 바람의 비해가 컸었다. 따라서 군사목적으로 심은 나무가 방풍림의 역할을 하였으므로 잘 보호되어 왔으나 지금은 몇 그루만 남아있을 뿐이며, 수령은 광양읍성 이후에 심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광양읍의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유당공원은 조선 중종 23년(1528년)에 당시 박세후 현감이 만든 숲으로 많은 노거수가 생육하고 있으나 수목의 생육한계 수령에 도달해 고사 직전의 수목도 있고, 고유의 수형을 잃어가고 있는 수종도 있다. 물푸레나무과의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 235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는데 수형관리 상태 등이 양호한 편이여서 이팝나무의 수형을 대표랑 정도로 보존이
옥룡사는 도선국사가 35년이나 주석하였고 후백제와 고려전기에 활동하였던 통진대사가 주석하였던 고찰이다. 20세기 초반까지 도선과 통진의 쌍비와 쌍탑(부도)이 유존해 있었으며 쌍비의 탁본과 내용이 전해지고 있어 당시 불교계와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발굴조사를 통해 절터의 퇴적층이 170cm정도 되어 최소한 6개 층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도선과 통진의 부도전도 확인되었다. 또한 도선국사 부도전 중앙에는 석관이 안치되어 있고 그 안에 도선국사 유골로 추정되는 인골이 안치되어 있어 당시 선사들의 장법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자료를 획득하였다. 또한 동백림이 울타리처럼 절터 전체를 감싸고 있어 경관도 뛰어나다.
② 관련 인물 소개
-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 827~898)
신라 말의 유명한 선승(禪僧)이다. 827년(신라 흥덕왕 2년)에 전남 영암 구림에서 태어났고 15살 때 화엄사에 들어가‘중’이 되었다. 20살 때 곡성 태안사의‘혜철대사’의 제자가 되어 선종(禪宗)으로 개종하였고 37살 때 광양 옥룡사에 들어와 35년 동안 머무르면서 동백림 조성, 운암사 건립, 왕건의 고려왕국건설 예언, 풍수지리설, 선불교의 옥룡학파를 창설하여 많은 제자를 길렀으며 898년(신라 효공왕 2년)에 72살로 입적하였다. 고려 현종 때 대선사(大禪師), 숙종 때 왕사(王師)에 봉해지고 인종 때 선각국사(先覺國師)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리고 도선은 고려 태조 왕건의 출생 시부터 교육을 맡은 스승이었고 고려 창업에도 도움을 주었다.
③ 관련 전설
-옥룡사 창건 전설
도선국사가 지리산에 가서 조그만 돌무더기 밑에 토굴처럼 움막을 짓고 수도하다가 광양의 백계산으로 왔다. 그곳에서 절터로서 좋은 자리를 발견하였으나, 큰 연못이 있어 연못을 메우기가 어려웠다. 이에 도선국사는 방편을 써서 주위의 마을 사람들에게 눈병을 주고 나서 소금과 숯을 한 짐 지고 와서 연못에 부으면 눈병이 낫는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시험 삼아 그대로 했더니 눈병이 나아 그 소문이 퍼지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소금과 숯을 한 짐씩 지고 와 연못을 메우니 눈병이 나았다. 이렇게 하여 몇 천 명이 숯과 소금으로 연못을 메우게 되었다.
도선국사는 연못을 메운 곳에 옥룡사를 지었다. 그런데 그 연못에는 원래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못이 메워지자 여덟 마리 용은 다른 곳으로 갔으나, 백룡 한 마리가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도선국사는 제자 스님들에게 절대로 이 절에는 백씨 성을 가진 사람은 들이지 말라고 유언한 후에 입적하셨다. 도선국사는 입적 후에 자신의 시신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방안에 두라고 하였다. 몇 백 년이 지나서 옥룡사의 스님들은 도선국사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절의 부목쟁이로 백씨 성을 가진 사람을 들였다. 이 부목쟁이가 스님들에게 도선국사의 시신을 없애버리라고 부추기자 스님들이 그 시신을 태워버렸다. 그리하여 도선국사의 혼백이 돌아왔으나 자신의 시체가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부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옥룡사는 폐사가 되고 말았다.
3) 유당공원(이팝나무, 비석거리)
①사적개관
1547년 당시 광양현감 박세후에 의해 만들어진 유당공원은 광양읍 목성리에 있으며 팽나무, 이팝나무와 함께 수양버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 \'유당공원\'(버들못)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10년경 나무가 많이 베어져서 울창하던 고목나무 숲이 많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수백 년 묵은 고목나무 수십 그루가 남아 있어 연못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뛰어난 고전적 조경미를 보여주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광양읍은 광양읍성을 중심으로 북방과 남방이 허하다하여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국인 북방(칠성리)에는 일곱 개의 동산을 만들어 나무를 심는 한편 학이 나르는 형국인 남방에는 늪지대를 파서 연못을 만들고 주위에 나무를 심어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당공원을 비롯하여 광양읍성 남방에 조성된 숲은 광양만에 자주 나타나는 노략질을 하던 왜구들로부터 읍성을 숨겨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봄·여름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실은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되 쏘이는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는 기능도 하였다. 대개는 공원이 높은 지대에 만들어진데 비하여 유당공원은 늪지대를 중심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낮은 곳에 자리해 왔다. 그런데 이처럼 연못과 고목나무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고풍스런 멋을 지닌 경우는 전국 어디에서고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유당공원은 한마디로 연못과 고목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한국식 전통공원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주변 8,842평을 조성하여 광양읍성 전통고전미를 살린 시민휴식공간으로 제공되면 광양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②문화재
㉠이팝나무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 235호
소유자: 국유와 사유
소재지: 광양시 광양읍 목성리 673-1
면적: 4,930평
지정연월일: 1971년 9월 13일
유래
유당공원은 조선시대에 광양읍성을 쌓고 멀리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었던 곳이다. 성은 없어졌으나 나무만은 남아있다.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가 남아있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태풍의 상륙지이므로 때로는 풍수 피해가 심하였다. 1925년, 1933년, 특히 1936년에는 초속 32m의 기록이 있어 바람의 비해가 컸었다. 따라서 군사목적으로 심은 나무가 방풍림의 역할을 하였으므로 잘 보호되어 왔으나 지금은 몇 그루만 남아있을 뿐이며, 수령은 광양읍성 이후에 심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광양읍의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유당공원은 조선 중종 23년(1528년)에 당시 박세후 현감이 만든 숲으로 많은 노거수가 생육하고 있으나 수목의 생육한계 수령에 도달해 고사 직전의 수목도 있고, 고유의 수형을 잃어가고 있는 수종도 있다. 물푸레나무과의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 235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는데 수형관리 상태 등이 양호한 편이여서 이팝나무의 수형을 대표랑 정도로 보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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