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것이므로 백성의 경제적인 생활안정이 국가의 급선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더욱이 물질적 조건이 충족되지 못할 때는 도덕적 인격의 이상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에 국가는 모름지기 충분한 생활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맹자는 말한다. 왕도정치의 목적이 국민을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교육하여 자율적 도덕사회를 실현하는데 있으므로 먼저 인격을 구상할 수 있는 경제적 요건의 충족이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국가는 주인활동과 가정생활에 있어서 정책적으로 일정한 생계대책을 확실히 보장한 다음에야 도덕을 교육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또한 왕도정치는 경제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도덕지상주의라고 할 것이다.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물신주의, 황금만능주의는 분명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기본적 생계보장을 요구하는 빈민자들에게 교육과 도덕의 강조는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사회를 보면 도덕적 수양을 위한 조건은 너무도 충족하고 있는 사회지도자층들을 보면 오히려 부패와 비리등을 빈번히 행하는 것을 보면 경제적 생활안정이 지나치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본다. 물론 도덕적 교육과 왕도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가 형성되며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말이다.
지금 백성들의 일정한 생업을 재정하는데 위로는 부모 모시기에도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돌보기에도 부족하며 풍년에는 팽생토록 고생만 하고 흉년에는 죽음이나 도망가는 것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오직 죽음만이라도 벗어나는데 부족할까 두려운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차릴 수 있겠습니까?왕께서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다섯 묘의 집안에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을 넘긴 노인네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 산돼지를 기르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으면 칠십을 넘긴 노인네들도 고기를 먹을 수 잇습니다. 백묘의 논밭을 경작하는데 농사의 시기를 빼앗지 않으면 몇 식구의 입을 가진 가족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학교의 가르침을 신중히 하여 효제의 의미로써 거듭한다면 머리가 반백인 노인들이 길에 짐을 지거나 이고 다니는 일들이 없을 것입니다. 칠십넘은 노인네 들이 비단 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들이 굶주리지도 추위에 떨지도 않게 하면서도 그런데도 천하에 왕도정치를 행하지 못한 자가 아직 있지 않습니다.
위의 말을 참고로 하면 맹자가 말한 왕도정치는 백성을 배불리 먹여주고 난 뒤 교육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유럽의 사회복지 국가들은 어느 정도 왕도정치를 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이 버는 자들에게서 좀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적게 버는 자들과 나누는 정치를 하는 나라엔 큰 부자도 크게 가난한 이도 없다고 한다. 백성을 굶주리게 하는 왕은 왕이 아니라 공동체의 덕망 仁을 헤치는 사람일뿐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본적인 경제적 충족은 仁을 행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맹자는 말하고 있다.
2)梁惠王下
지금 왕께서 여기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이 왕의 종과 북소리, 피리 소리를 듣고서 모두 기쁜 모습으로 즐거운 얼굴빛을 가지고서 서로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아마 질병이 없으시구나! 어떻게 음악을 연주하실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왕께서 여기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이 왕이 수레와 말의 소리를 듣고, 사냥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모두 기쁜 모습으로 즐거운 얼굴빛을 띠고 서로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우리 왕이 아마 질병이 없으시구나! 어떻게 사냥을 할 수 있으신가?라고 한다면 이는 다름아니라 즐거움을 백성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더불와 함께 즐거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행하 실수 있습니다.
혼란한 시기나 궁핍한 시기에, 정치인이나 윗사람이 자기 것을 가지고 즐거워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내 것을 나누는 삶은 정치인이나 윗사람에게는 존경을 불러들이고 보통 사람에게는 보람과 좋은친구를 만들어준다. 나누는 삶을 위해서 먼저 자신을 비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듯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맹자는 與民同樂을 말했을 것이다.
왕이 말하였다. 왕도정치를 들어 볼 수 잇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에 문왕이 기 땅을 다스릴 때 농민들에게 구분의 일을, 벼슬하는 자에게는 대대로 록을 주었으며 관문과 시장은 검색만 하고 세금을 거두지는 않았습니다. 저수지나 못에 어량을 금지하지 않았으며 죄인은 처자에게는 마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사람을 홀아비라고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사람을 과부라고 하였으며,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을 무의탁자라고 하며,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고아라고 하는데 이 네 경우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왕께서 정사를 펴고 인정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경우의 사람들을 먼저 돌보셨습니다. <시경>에서도 ‘부자들은 괜찮지만 외롭고 곤궁한 이들이 가엽다’라고 하였습니다.
窮民에 있어서 경제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窮民들을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위의 사궁민들을 위한 경제정책은 그들이 삶을 사는데 불안하지 않도록 강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왕도 정치의 仁政은 비단 궁핍한 사람들을 구제함에 의존 할 데가 없는 사궁민뿐만아니라 또한 정상적인 가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학문, 기술등에 종사하여 생업에만 전념하지 못함으로써 그 활동이 부족한 사람과 외국에서 이주하여 온 어려운 사람까지도 모두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위의 말한 사궁민으로 한정한 빈민들은 현대에서는 그 범위가 광범위해졌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불법 체류자, 부를 창출하지 못하여 도태 되어가는 인문학등은 21세기의 窮民이 아닐까? 이 땅의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내가 풍요롭게 먹을 때 다른 사람은 그 만큼 굶주려야 된다는 제로섬사회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눔의 문화를 실현하고 均의 의미를 실현해 갈 때 제로섬이 아닌 대동사회가 만들어 지고, 우리가 마음 편히 우리의 학문의 진리를 탐구 할 수 있을 것이다.
흉년이 들어 굶주린 해에 임금의 백성이 노약자는 개천과 구렁창에서 굴러 다니고 ,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물신주의, 황금만능주의는 분명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기본적 생계보장을 요구하는 빈민자들에게 교육과 도덕의 강조는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사회를 보면 도덕적 수양을 위한 조건은 너무도 충족하고 있는 사회지도자층들을 보면 오히려 부패와 비리등을 빈번히 행하는 것을 보면 경제적 생활안정이 지나치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본다. 물론 도덕적 교육과 왕도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가 형성되며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말이다.
지금 백성들의 일정한 생업을 재정하는데 위로는 부모 모시기에도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돌보기에도 부족하며 풍년에는 팽생토록 고생만 하고 흉년에는 죽음이나 도망가는 것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오직 죽음만이라도 벗어나는데 부족할까 두려운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차릴 수 있겠습니까?왕께서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다섯 묘의 집안에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을 넘긴 노인네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 산돼지를 기르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으면 칠십을 넘긴 노인네들도 고기를 먹을 수 잇습니다. 백묘의 논밭을 경작하는데 농사의 시기를 빼앗지 않으면 몇 식구의 입을 가진 가족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학교의 가르침을 신중히 하여 효제의 의미로써 거듭한다면 머리가 반백인 노인들이 길에 짐을 지거나 이고 다니는 일들이 없을 것입니다. 칠십넘은 노인네 들이 비단 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들이 굶주리지도 추위에 떨지도 않게 하면서도 그런데도 천하에 왕도정치를 행하지 못한 자가 아직 있지 않습니다.
위의 말을 참고로 하면 맹자가 말한 왕도정치는 백성을 배불리 먹여주고 난 뒤 교육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유럽의 사회복지 국가들은 어느 정도 왕도정치를 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이 버는 자들에게서 좀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적게 버는 자들과 나누는 정치를 하는 나라엔 큰 부자도 크게 가난한 이도 없다고 한다. 백성을 굶주리게 하는 왕은 왕이 아니라 공동체의 덕망 仁을 헤치는 사람일뿐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본적인 경제적 충족은 仁을 행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맹자는 말하고 있다.
2)梁惠王下
지금 왕께서 여기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이 왕의 종과 북소리, 피리 소리를 듣고서 모두 기쁜 모습으로 즐거운 얼굴빛을 가지고서 서로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아마 질병이 없으시구나! 어떻게 음악을 연주하실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왕께서 여기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이 왕이 수레와 말의 소리를 듣고, 사냥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모두 기쁜 모습으로 즐거운 얼굴빛을 띠고 서로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우리 왕이 아마 질병이 없으시구나! 어떻게 사냥을 할 수 있으신가?라고 한다면 이는 다름아니라 즐거움을 백성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더불와 함께 즐거워 하신다면 왕도정치를 행하 실수 있습니다.
혼란한 시기나 궁핍한 시기에, 정치인이나 윗사람이 자기 것을 가지고 즐거워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되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내 것을 나누는 삶은 정치인이나 윗사람에게는 존경을 불러들이고 보통 사람에게는 보람과 좋은친구를 만들어준다. 나누는 삶을 위해서 먼저 자신을 비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듯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맹자는 與民同樂을 말했을 것이다.
왕이 말하였다. 왕도정치를 들어 볼 수 잇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에 문왕이 기 땅을 다스릴 때 농민들에게 구분의 일을, 벼슬하는 자에게는 대대로 록을 주었으며 관문과 시장은 검색만 하고 세금을 거두지는 않았습니다. 저수지나 못에 어량을 금지하지 않았으며 죄인은 처자에게는 마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사람을 홀아비라고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사람을 과부라고 하였으며,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을 무의탁자라고 하며,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고아라고 하는데 이 네 경우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왕께서 정사를 펴고 인정을 베푸시되 반드시 이 네 경우의 사람들을 먼저 돌보셨습니다. <시경>에서도 ‘부자들은 괜찮지만 외롭고 곤궁한 이들이 가엽다’라고 하였습니다.
窮民에 있어서 경제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窮民들을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위의 사궁민들을 위한 경제정책은 그들이 삶을 사는데 불안하지 않도록 강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왕도 정치의 仁政은 비단 궁핍한 사람들을 구제함에 의존 할 데가 없는 사궁민뿐만아니라 또한 정상적인 가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학문, 기술등에 종사하여 생업에만 전념하지 못함으로써 그 활동이 부족한 사람과 외국에서 이주하여 온 어려운 사람까지도 모두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위의 말한 사궁민으로 한정한 빈민들은 현대에서는 그 범위가 광범위해졌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불법 체류자, 부를 창출하지 못하여 도태 되어가는 인문학등은 21세기의 窮民이 아닐까? 이 땅의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내가 풍요롭게 먹을 때 다른 사람은 그 만큼 굶주려야 된다는 제로섬사회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눔의 문화를 실현하고 均의 의미를 실현해 갈 때 제로섬이 아닌 대동사회가 만들어 지고, 우리가 마음 편히 우리의 학문의 진리를 탐구 할 수 있을 것이다.
흉년이 들어 굶주린 해에 임금의 백성이 노약자는 개천과 구렁창에서 굴러 다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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