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단편소설
2. 서사구조
3. 시점
4. 성격
5. 배경
6. 어조와 문체
7. 주제
8. 상징
9. 작가론
2. 서사구조
3. 시점
4. 성격
5. 배경
6. 어조와 문체
7. 주제
8. 상징
9. 작가론
본문내용
구리 덩어리처럼 단단하던 어금니를 뽑던 날에도, 이삿짐을 나르다가 거울을 깨던 날에도, 누군가 트럭 바퀴에 못을 박아놓은 날에도, 아버지는 트럭 적재함에 쪼그리고 앉아 홀로 한숨을 삼켰다. 아버지가 삼킨 한숨들은 아버지의 목 안에서 낡은 풍금이 내는 듯한 소리를 냈을 것이다.
또한 트럭은 아버지 자신이다. 아버지가 처음 트럭을 갖게 되었을 때 트럭은 장장 구만 오천 킬로미터나 달린 트럭이었다. 그리고 언제 서버릴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도 십오 년을 더 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 그리고 이제 다시 달리려고 하고 있다. 이를 아버지와 연관지어 살펴보면 아버지가 중동을 다녀오고, 그 후 6년의 백수생활은 트럭이 구만 오천 킬로미터를 달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십오 년은 트럭과 아버지가 함께 달린 시간이다. 그리고 함께 멈춰 섰고, 아버지 역시 잠시의 방황을 보인다. 하지만 다시 트럭이 돌아온 뒤에는 다시 달리려고 한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볼 때 트럭은 아버지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② 혁대
혁대 역시 가난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백수로 지내던 시간 동안 부업으로 혁대를 붙였다. 그래서 근근이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혁대는 가족을 해체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누구든 가난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난이 집안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실에도, 장롱에도 심지어 자신의 침실에서도... 이렇게 혁대는 온 집엔 곳곳에서 우글댔고, 쉴 틈 없이 가난을 상기시켰으며 모든 가족들 특히 아버지의 숨통을 조였다.
혁대들은 뱀들처럼 집 안 곳곳에 널려 있었다. 안방에서도 마루에서도 자식들의 방에서도 부엌에서도 혁대들이 온통 우글거렸다. (중략)
혁대들은 잠든 아버지의 발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버지의 발목과 허벅지와 등짝을 친친 휘감아갔다. 겨드랑이와 목까지 휘감아 숨통을 조였다. 아버지는 버둥거리다 단말마 같은 숨을 겨우 토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또한 혁대는 어머니의 슬픔,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이 혁대 붙이는 일로 환각 상태에 이른 듯 했고, 손가락들은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는 어머니가 가난한 삶을 살면서 겪는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다.
검은빛은 어머니의 손가락들뿐만 아니라 손등과 손목으로까지 번졌다. 손목은 금방이라도 썩은 가지처럼 부러질 것만 같았다. 자식들은 어나날, 어머니가 한 점의 검은빛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③ 사막, 모래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사막과 모래는 황폐하고 건조한 아무것도 없는 불모의 이미지 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사막과 모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사막은 아버지가 중동에서 지내면서 가족들을 부양했던 가장 자랑스러웠던 시간을 상징하고 모래는 이런 사막을 떠올리게 되는 매개체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있어서 사막과 모래의 이미지는 황폐함이 아닌 풍족함이고 희망인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트럭에 모래를 한가득, 한줌 더 한줌 더 실으면서 자신의 희망을 쌓아올렸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내달리면서 희망을 찾았던 것이다.
④ 중동
위의 상징물들이 작가가 만들어낸 개인적 상징이라고 한다면 중동은 관습적 상징물이다. 그 이유는 당시 상황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1970~80년대는 개발독재가 이루어지던 상황이다. 이 때 우리의 많은 아버지들은 우리나라 뿐 만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가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곳도 중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동에 간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가난을 이기기 위해 일을 하러 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⑤ 아버지, 어머니
이들은 당시 우리의 부모님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그 당시에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기 싫어서 어떻게든 교육을 시켜야만 했다. 당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랬다. 자신은 사막을 걷듯 묵묵히 일을 했고, 자신의 손이 검게 변해도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다. 바로 부모님들의 자식들에 대한 헌신, 사랑. 이를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9. 작가론
“어릴 때 나는 종종 집에 홀로 남겨지고는 했다. 집은 내개 공포 그 자체였다.”,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나는 부족사회를 모방한 대가족을 꾸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김숨’은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가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1974년 출생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5~80년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간이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이 작품에 그려낸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적 그녀의 부모님들은 항상 일을 해야 했고 어머니는 부업까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표현한 대로 혁대가 득실거려서 그녀에게 집은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무서워 집을 떠나는 자식들은 작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가 혁대를 모두 버린 것처럼 자신도 가난을, 고통을 버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당시의 감정을 작품을 통해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버지와 자식이 소통하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꿈꾸는 사랑과 이해가 가득한 가족의 모습을 살짝 내보임으로 자신의 소망, 희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숨의 또 다른 작품인 「백치들」을 살펴보아도 70~80년대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트럭」의 아버지와 같이 중동근로자가 되어 사막으로 떠났다가 6년 만에 백치가 되어 돌아온다. 가방에 모래만을 가지고...
아버지가 사막에서 돌아왔다. 아버지는 푸른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50억년의 시간 동안 사막을 건너온 사람 같았다. 김숨, 백치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이렇게 그녀는 우리의 아버지를 백치로, 트럭기사로 표현하여 당대 사회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 소설이란 것이 작가 자신의 체험, 자신이 처한 상황, 사건들을 재구성하여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트럭은 아버지 자신이다. 아버지가 처음 트럭을 갖게 되었을 때 트럭은 장장 구만 오천 킬로미터나 달린 트럭이었다. 그리고 언제 서버릴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도 십오 년을 더 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 그리고 이제 다시 달리려고 하고 있다. 이를 아버지와 연관지어 살펴보면 아버지가 중동을 다녀오고, 그 후 6년의 백수생활은 트럭이 구만 오천 킬로미터를 달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십오 년은 트럭과 아버지가 함께 달린 시간이다. 그리고 함께 멈춰 섰고, 아버지 역시 잠시의 방황을 보인다. 하지만 다시 트럭이 돌아온 뒤에는 다시 달리려고 한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볼 때 트럭은 아버지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② 혁대
혁대 역시 가난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백수로 지내던 시간 동안 부업으로 혁대를 붙였다. 그래서 근근이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혁대는 가족을 해체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누구든 가난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가난이 집안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실에도, 장롱에도 심지어 자신의 침실에서도... 이렇게 혁대는 온 집엔 곳곳에서 우글댔고, 쉴 틈 없이 가난을 상기시켰으며 모든 가족들 특히 아버지의 숨통을 조였다.
혁대들은 뱀들처럼 집 안 곳곳에 널려 있었다. 안방에서도 마루에서도 자식들의 방에서도 부엌에서도 혁대들이 온통 우글거렸다. (중략)
혁대들은 잠든 아버지의 발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버지의 발목과 허벅지와 등짝을 친친 휘감아갔다. 겨드랑이와 목까지 휘감아 숨통을 조였다. 아버지는 버둥거리다 단말마 같은 숨을 겨우 토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또한 혁대는 어머니의 슬픔,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이 혁대 붙이는 일로 환각 상태에 이른 듯 했고, 손가락들은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는 어머니가 가난한 삶을 살면서 겪는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다.
검은빛은 어머니의 손가락들뿐만 아니라 손등과 손목으로까지 번졌다. 손목은 금방이라도 썩은 가지처럼 부러질 것만 같았다. 자식들은 어나날, 어머니가 한 점의 검은빛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③ 사막, 모래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사막과 모래는 황폐하고 건조한 아무것도 없는 불모의 이미지 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사막과 모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사막은 아버지가 중동에서 지내면서 가족들을 부양했던 가장 자랑스러웠던 시간을 상징하고 모래는 이런 사막을 떠올리게 되는 매개체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있어서 사막과 모래의 이미지는 황폐함이 아닌 풍족함이고 희망인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트럭에 모래를 한가득, 한줌 더 한줌 더 실으면서 자신의 희망을 쌓아올렸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내달리면서 희망을 찾았던 것이다.
④ 중동
위의 상징물들이 작가가 만들어낸 개인적 상징이라고 한다면 중동은 관습적 상징물이다. 그 이유는 당시 상황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1970~80년대는 개발독재가 이루어지던 상황이다. 이 때 우리의 많은 아버지들은 우리나라 뿐 만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가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곳도 중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동에 간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가난을 이기기 위해 일을 하러 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⑤ 아버지, 어머니
이들은 당시 우리의 부모님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그 당시에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기 싫어서 어떻게든 교육을 시켜야만 했다. 당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랬다. 자신은 사막을 걷듯 묵묵히 일을 했고, 자신의 손이 검게 변해도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다. 바로 부모님들의 자식들에 대한 헌신, 사랑. 이를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9. 작가론
“어릴 때 나는 종종 집에 홀로 남겨지고는 했다. 집은 내개 공포 그 자체였다.”,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나는 부족사회를 모방한 대가족을 꾸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김숨’은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가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1974년 출생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5~80년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간이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이 작품에 그려낸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적 그녀의 부모님들은 항상 일을 해야 했고 어머니는 부업까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표현한 대로 혁대가 득실거려서 그녀에게 집은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무서워 집을 떠나는 자식들은 작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가 혁대를 모두 버린 것처럼 자신도 가난을, 고통을 버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당시의 감정을 작품을 통해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버지와 자식이 소통하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꿈꾸는 사랑과 이해가 가득한 가족의 모습을 살짝 내보임으로 자신의 소망, 희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숨의 또 다른 작품인 「백치들」을 살펴보아도 70~80년대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트럭」의 아버지와 같이 중동근로자가 되어 사막으로 떠났다가 6년 만에 백치가 되어 돌아온다. 가방에 모래만을 가지고...
아버지가 사막에서 돌아왔다. 아버지는 푸른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50억년의 시간 동안 사막을 건너온 사람 같았다. 김숨, 백치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이렇게 그녀는 우리의 아버지를 백치로, 트럭기사로 표현하여 당대 사회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 소설이란 것이 작가 자신의 체험, 자신이 처한 상황, 사건들을 재구성하여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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