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칭기즈칸의 리더십에 대해.
칭기즈칸 연대기
리더로서의 칭기즈칸
인간 칭기즈칸에 대해
칭기즈칸 어록
칭기즈칸 연대기
리더로서의 칭기즈칸
인간 칭기즈칸에 대해
칭기즈칸 어록
본문내용
활용했다.
우선 칸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심리전을 최대한 활용했다.
사람의 마음을 잡는 것이 바로 세상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 칭기스칸은 당시 절대적인 믿음의 존재인 샤먼들을 이용해 자신을 하늘이 선택한 사람임을 널리 알려서 자연스럽게 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또 경쟁자 자모카와의 전투에서 진 뒤 자모카가 포로를 잔인하게 죽이도록 유도함으로써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것도 고도의 심리전 결과다.
항상 주변에 대한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방의 심리 상태를 최대한 활용한 칭기스칸의 정보 마인드에 대해 몽골의 원로학자 이시참치 교수는 칭기스칸만이 지닐 수 있었던 기술이자 예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ㅣ공포전술ㅣ
▶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공포전술
그러나 싸워서 이기는 것 보다 싸우지 않고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칭기스칸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포라는 최대의 무기로 활용함으로써 전투 없이 승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적이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 무너지도록 만들거나 두 손을 들도록 만들기 위해 적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나이만과 싸울 때는 병사마다 여러 개의 횃불을 들도록 만들어 나이만군이 겁을 먹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만들었다.
호레즘과의 전쟁 때는 상인들에게 칭기스칸과 몽골군에 대한 소문을 확산시켰다.
몽골군대는 최강의 군대이며 싸워서 이길 군대가 없다.
몽골군은 항복하는 적에게는 최대의 관용을 베풀지만 저항할 경우 씨도 남기지 않는 잔인한 군대다.
상인들이 퍼뜨린 이러한 소문들이 널리 번져 나가면서 호레즘의 병사들과 주민들은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의 성이 일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진 것도 창과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푸른 군대가 심어준 공포심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호레즘과의 전쟁과정에서 많은 지역이 전투 없이 칭기스칸의 수중에 떨어졌다.
▶ 푸른 군대 이미지로 굳어진 공포
그러나 이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푸른 군대가 무섭고 잔인한 군대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 시범케이스에 걸려든 곳은 철저하게 유린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경우에는 성안에 살아 있는 것은 사람은 물론 가축까지 모두 죽이고 그 지역이 폐허가 되도록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러한 사례는 금새 소문을 타고 인근 지역에 알려졌고 그 것을 적에게 공포를 안겨다 주는 수단으로 삼아 인근 지역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호레즘과 유럽에서의 정복 과정을 보면 파괴와 살육으로 이어지는 경우 보다 치열한 전투 없이 마무리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도 몽골의 푸른 군대가 마치 파괴와 살육, 폭력과 야만의 대명사처럼 인식돼 온 것은 그들이 심어준 공포가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져 전해져 내려온 탓도 있을 것이다.
ㅣ복수ㅣ
▶ 뿌리 깊은 복수 의식
복수는 사람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특히 유목민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 가운데 하나다.
당대에 복수하지 못하면 그 다음 대에 가서라도 마무리지어야할 의무로 남겨진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에게 신부를 빼앗겼던 메르키드족이 오랜 세월을 기다려 테무진의 부인 부르테를 납치해간 사례는 유목민들의 일반적인 복수의식을 짐작케 해준다.
자기 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처럼 관대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칭기스칸이지만 적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원한이 얽힌 적에 대해서는 야수와 같이 가차없고 잔인했다.
빚지고는 살수 없다는 의식이 칭기스칸에게 뿌리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죽음으로 이어진 복수 집념
선조 암바가이칸을 목 박아 죽게 만들고 자신의 아버지 예수게이를 독살한 타타르족에 대해서는 수레에 키를 대보게 한 뒤 거의 모두를 처참하게 살해 했다.
자신을 포로로 잡아갔던 타이시우드족은 재조차 남기지 않고 말살했다.
또한 부르테를 납치해 갔던 메르키드족을 처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보낸 사신을 살해하고 호레즘 전쟁을 유도한 오트라르 성의 이날축은 귀와 눈에 끓는 은을 부어 살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스스로 전쟁을 불러들인 뒤 도주 길에 나선 호레즘의 군주 무하마드는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처벌하라는 칭기스칸의 명령을 받은 제베와 수베타이의 끈질긴 추적을 받았고 그 넓은 땅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한 채 카스피해의 한 섬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복수에 대한 집념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끌어 갔다.
노구를 이끌고 나선 2차 서하 원정도 호레즘 원정 때 도움을 주지 않는 대신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탕구드족에 대한 응징으로 단행된 것이었다.
그는 이 원정으로 서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철저히 말살시켰지만 결국 자신도 원정 중에 숨지고 말았다.
ㅣ어머니ㅣ
▶ 개와 어머니가 가장 두려웠던 칭기스칸
칭기스칸은 지극히 인간적인 면도 지니고 있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심약한 일면을 지니고 있어 아버지 예수게이가 그를 미래의 부인인 부르테의 집에 맡기고 올 때 장인에게 이 점을 주지시키기도 했다.
또 어머니 호엘룬을 두려워해 그 앞에서는 언제나 여러 자식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인간 칭기스칸을 총체적으로 보면 그 자신이 가진 친화력과 냉철한 판단력, 권력을 향한 강한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열린 마음 등이 어우러져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원초적인 힘이 됐을 것이다.
칭기즈칸 어록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와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없애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친기즈칸이 되었다.
우선 칸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심리전을 최대한 활용했다.
사람의 마음을 잡는 것이 바로 세상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 칭기스칸은 당시 절대적인 믿음의 존재인 샤먼들을 이용해 자신을 하늘이 선택한 사람임을 널리 알려서 자연스럽게 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또 경쟁자 자모카와의 전투에서 진 뒤 자모카가 포로를 잔인하게 죽이도록 유도함으로써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것도 고도의 심리전 결과다.
항상 주변에 대한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방의 심리 상태를 최대한 활용한 칭기스칸의 정보 마인드에 대해 몽골의 원로학자 이시참치 교수는 칭기스칸만이 지닐 수 있었던 기술이자 예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ㅣ공포전술ㅣ
▶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공포전술
그러나 싸워서 이기는 것 보다 싸우지 않고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칭기스칸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포라는 최대의 무기로 활용함으로써 전투 없이 승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적이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 무너지도록 만들거나 두 손을 들도록 만들기 위해 적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나이만과 싸울 때는 병사마다 여러 개의 횃불을 들도록 만들어 나이만군이 겁을 먹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스스로 무너지도록 만들었다.
호레즘과의 전쟁 때는 상인들에게 칭기스칸과 몽골군에 대한 소문을 확산시켰다.
몽골군대는 최강의 군대이며 싸워서 이길 군대가 없다.
몽골군은 항복하는 적에게는 최대의 관용을 베풀지만 저항할 경우 씨도 남기지 않는 잔인한 군대다.
상인들이 퍼뜨린 이러한 소문들이 널리 번져 나가면서 호레즘의 병사들과 주민들은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의 성이 일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진 것도 창과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푸른 군대가 심어준 공포심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호레즘과의 전쟁과정에서 많은 지역이 전투 없이 칭기스칸의 수중에 떨어졌다.
▶ 푸른 군대 이미지로 굳어진 공포
그러나 이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푸른 군대가 무섭고 잔인한 군대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 시범케이스에 걸려든 곳은 철저하게 유린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경우에는 성안에 살아 있는 것은 사람은 물론 가축까지 모두 죽이고 그 지역이 폐허가 되도록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러한 사례는 금새 소문을 타고 인근 지역에 알려졌고 그 것을 적에게 공포를 안겨다 주는 수단으로 삼아 인근 지역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호레즘과 유럽에서의 정복 과정을 보면 파괴와 살육으로 이어지는 경우 보다 치열한 전투 없이 마무리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도 몽골의 푸른 군대가 마치 파괴와 살육, 폭력과 야만의 대명사처럼 인식돼 온 것은 그들이 심어준 공포가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져 전해져 내려온 탓도 있을 것이다.
ㅣ복수ㅣ
▶ 뿌리 깊은 복수 의식
복수는 사람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특히 유목민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 가운데 하나다.
당대에 복수하지 못하면 그 다음 대에 가서라도 마무리지어야할 의무로 남겨진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에게 신부를 빼앗겼던 메르키드족이 오랜 세월을 기다려 테무진의 부인 부르테를 납치해간 사례는 유목민들의 일반적인 복수의식을 짐작케 해준다.
자기 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처럼 관대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칭기스칸이지만 적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원한이 얽힌 적에 대해서는 야수와 같이 가차없고 잔인했다.
빚지고는 살수 없다는 의식이 칭기스칸에게 뿌리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죽음으로 이어진 복수 집념
선조 암바가이칸을 목 박아 죽게 만들고 자신의 아버지 예수게이를 독살한 타타르족에 대해서는 수레에 키를 대보게 한 뒤 거의 모두를 처참하게 살해 했다.
자신을 포로로 잡아갔던 타이시우드족은 재조차 남기지 않고 말살했다.
또한 부르테를 납치해 갔던 메르키드족을 처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보낸 사신을 살해하고 호레즘 전쟁을 유도한 오트라르 성의 이날축은 귀와 눈에 끓는 은을 부어 살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스스로 전쟁을 불러들인 뒤 도주 길에 나선 호레즘의 군주 무하마드는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처벌하라는 칭기스칸의 명령을 받은 제베와 수베타이의 끈질긴 추적을 받았고 그 넓은 땅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한 채 카스피해의 한 섬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복수에 대한 집념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끌어 갔다.
노구를 이끌고 나선 2차 서하 원정도 호레즘 원정 때 도움을 주지 않는 대신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탕구드족에 대한 응징으로 단행된 것이었다.
그는 이 원정으로 서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철저히 말살시켰지만 결국 자신도 원정 중에 숨지고 말았다.
ㅣ어머니ㅣ
▶ 개와 어머니가 가장 두려웠던 칭기스칸
칭기스칸은 지극히 인간적인 면도 지니고 있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심약한 일면을 지니고 있어 아버지 예수게이가 그를 미래의 부인인 부르테의 집에 맡기고 올 때 장인에게 이 점을 주지시키기도 했다.
또 어머니 호엘룬을 두려워해 그 앞에서는 언제나 여러 자식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인간 칭기스칸을 총체적으로 보면 그 자신이 가진 친화력과 냉철한 판단력, 권력을 향한 강한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열린 마음 등이 어우러져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원초적인 힘이 됐을 것이다.
칭기즈칸 어록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와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없애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친기즈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