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러시아 혁명과 정치-------
1. 혁명이전의 러시아
2. 1905년 혁명
3. 혁명운동의 성과
4. 전쟁시기의 러시아
5. 볼셰비키 혁명
6. 러시아 10월 혁명의 의의
7. 러시아 혁명의 영향
Ⅱ. 러시아 혁명과 경제-------
1.신경제정책 ( 1921~1927 )
(1) 개관
(2) 자세히
(3) 부분별 조치
2. 정리
Ⅲ. 러시아 혁명과 사회-------
1. 소련의 공산당
2. 구사회의 붕괴 이후, 소련사회 구성원의 모습
(1) 구사회의 붕괴
(2) 농민
(3) 노동자
(4) 새로운 계급
(5) 소수민족
3. 교육제도의 발전
4. 가족
5. 1920년대의 여가문화
6. 과학의 발전
Ⅳ. 러시아 혁명과 문화-------
1. 혁명 이 전의 문화
(1) 문학
(2) 음악
(3) 미술
(4) 건축
(5) 기타 문화
2. 혁명 이 후의 문화
(1) 문학
(2) 음악
(3) 미술
(4) 기타 문화
Ⅴ. 러시아 혁명과 여성 -------
1. 서론
2. 본론
(1) 혁명의 여성해방을 위한 전제조건
(2) 소비에트정부의 여성해방목적
(3) 소비에트 성립기의 여성 활동
(4) 소비에트 정부의 여성해방 정책
(5) 소비에트 여성들의 생활
3. 결론
1. 혁명이전의 러시아
2. 1905년 혁명
3. 혁명운동의 성과
4. 전쟁시기의 러시아
5. 볼셰비키 혁명
6. 러시아 10월 혁명의 의의
7. 러시아 혁명의 영향
Ⅱ. 러시아 혁명과 경제-------
1.신경제정책 ( 1921~1927 )
(1) 개관
(2) 자세히
(3) 부분별 조치
2. 정리
Ⅲ. 러시아 혁명과 사회-------
1. 소련의 공산당
2. 구사회의 붕괴 이후, 소련사회 구성원의 모습
(1) 구사회의 붕괴
(2) 농민
(3) 노동자
(4) 새로운 계급
(5) 소수민족
3. 교육제도의 발전
4. 가족
5. 1920년대의 여가문화
6. 과학의 발전
Ⅳ. 러시아 혁명과 문화-------
1. 혁명 이 전의 문화
(1) 문학
(2) 음악
(3) 미술
(4) 건축
(5) 기타 문화
2. 혁명 이 후의 문화
(1) 문학
(2) 음악
(3) 미술
(4) 기타 문화
Ⅴ. 러시아 혁명과 여성 -------
1. 서론
2. 본론
(1) 혁명의 여성해방을 위한 전제조건
(2) 소비에트정부의 여성해방목적
(3) 소비에트 성립기의 여성 활동
(4) 소비에트 정부의 여성해방 정책
(5) 소비에트 여성들의 생활
3. 결론
본문내용
. G. 클로우저는 그의 저서 교육 모두에서 영국의 사회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사무엘 버틀러(1835~1902년)가 주장한 ‘행동에 의한 학습’의 원칙에 의거한 교육정책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는 국가로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일정한 연령에 달한 소년에게 노동을 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것을 습득하게 한다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 자녀들은 생산적인 노동을 분담하여 사회 전체의 생산을 높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방면의 재능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기적인 사회에서는 이런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신의 입신출세만을 생각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개인주의적인 교육이 수행될 수 있을 뿐, 인간에게 숨어 있는 뛰어난 재능을 발전시키고, 내재해 있는 지식을 계발하여 사회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입신출세를 위한 교육이 수행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교육의 본질이 왜곡되고, 교육을 받아도 입신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자녀를 낳아 교육시키는 것을 회피하게 된다.
이상이 애니트 찰스에 의해 소개된 소비에트 러시아의 어머니와 자녀와의 관계이다.
다음은 H. W.레이트라에 의해 소개되고 있는 소비에트에서의 결혼과 가족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떠한가를 보기로 하자(레이트라, 『아메리카의 사회주의』, 1937년).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지금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중 일부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다. 교육과 오락을 위한 사회시설이 점차 사회에 의해 발전되고 있다. 이전에는 가족 내에서 조달되었던 식사가 대부분 협동조리장이나 공장의 조리장에서 요리되어 제공되고 있다. 남녀의 결혼은 등록소에서 간단한 수속을 하는 것만으로 가능하다. 그 사람이 이중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결혼임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얼마간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등록소에서 서명을 하는 정도의 간단한 절차를 통해 결혼을 할 수 있다. 또한 이혼하는 것도 당사자들이 이혼 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서술하고,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자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증명하면 이혼 할 수 있다.
이혼 및 재혼은 자유로우나 이혼 후에 자녀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방종한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는 소속된 노동조합에서 재판이 행해지고 정당 및 사회단체에서도 재판이 행해지는 등 함부로 이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합리적인 결혼이라는 낙인이 언제까지나 따라붙어 다니는 것도 없어졌다.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는 양친의 자녀도 정식으로 결혼했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와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이때 아버지로 확인된 사람이 자녀를 부양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혼은 자유로이 할 수 있지만) 정신박약아 및 육체적인 부적격자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으며 또 양친과 그 형제자매 사이의 결혼이 금지되는 것은 말할 것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부다처는 금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제 2의 처를 가지는 것은 형법상의 죄이다. “양친은 자녀들을 부양할 필요가 있으며 자녀들이 육체적, 정신적인 측면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하도록 지켜보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자녀가 장래에 무엇인가 (사회에)
유용한 활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줄 필요가 있다. 소비에트러시아에서는 다른 나라에 유포되어 있는 사고방식과는 달리 법률을 통해 양친에게 자녀들을 자신들과 일치하게 교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27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던 개정혼인법에 의하면, 자녀의 훈육과 교육을 위해 자녀들을 부모의 집에서 내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은 자신의 동의 없이 고용될 수 없다. 자녀들도 또한 의지할 곳이 없고 부양받을 필요가 있는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소비에트에서 아내와 남편은, 한편이 부양받아야 할 상태에 있고 또 다른 한편이 부양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서로 부양의 의무를 진다. 이혼 후 ‘사정의 변화’ ― 재혼 또는 다른 직업에 취직하는 것 ―가 있을 때까지 부양은 계속된다. 남편이 사망하는 경우 그 재산은 아내와 사망자의 부양을 받던 친족에게 평등하게 분배된다. 유언은 평등한 분배를 혼란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허락되고 그때에도 법정상속인은 우위를 점한다.
혁명 직후에는 남녀의 평등한 관계가 성관계를 크게 변화시켰으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관계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이런 방법으로 소비에트정부는 일부일처제 가족을 보호하고 그것을 기본적인 사회단위로 하고 있다.
레이트라도 이렇게 하여 소비에트의 남녀관계는 결혼 및 가족의 영역에서 전정한 의미의 평등을 획득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소비에트에서 남녀의 평등한 지위를 약속하는 법적 변혁이 수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정책이 수립되고 이것이 1930년대 말까지는 충분한 효과를 획득해 모든 영역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3. 결론
공산주의에 입각한 여성해방 사상은 19세기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사상의 강력한 영향 하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공산주의 여성해방 사상의 주요골자는 여성의 임노동자화와 가사노동의 사회화, 여성의 평등과 노동자가족의 보호를 위한 모성보호, 남녀노동자 모두의 요구로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소유관계에서가 아니라 애정에 기초한 결혼 가족관계의 구축 등의 요구를 통해서 잘 드러났다. 비록 공산주의 사상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형성되어 독일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였지만 그것이 꽃피워 실질적 남녀평등에 좀 더 가까운 형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에서였다. 당시 자본주의 국가 들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금지되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보장 되었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이것은 실상 단순한 관념의 변화에 불과한 형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구체적인 개혁안들을 제시하며 일반 여성들에게 와 닿는 정책을 통해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 공산주의는 실패한 국가관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적어도 남녀평등과 여권신장에 있어서는 자본주의 보다 앞서 이를 실천하고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상이 애니트 찰스에 의해 소개된 소비에트 러시아의 어머니와 자녀와의 관계이다.
다음은 H. W.레이트라에 의해 소개되고 있는 소비에트에서의 결혼과 가족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떠한가를 보기로 하자(레이트라, 『아메리카의 사회주의』, 1937년).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지금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중 일부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다. 교육과 오락을 위한 사회시설이 점차 사회에 의해 발전되고 있다. 이전에는 가족 내에서 조달되었던 식사가 대부분 협동조리장이나 공장의 조리장에서 요리되어 제공되고 있다. 남녀의 결혼은 등록소에서 간단한 수속을 하는 것만으로 가능하다. 그 사람이 이중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결혼임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얼마간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등록소에서 서명을 하는 정도의 간단한 절차를 통해 결혼을 할 수 있다. 또한 이혼하는 것도 당사자들이 이혼 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서술하고,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자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증명하면 이혼 할 수 있다.
이혼 및 재혼은 자유로우나 이혼 후에 자녀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방종한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는 소속된 노동조합에서 재판이 행해지고 정당 및 사회단체에서도 재판이 행해지는 등 함부로 이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합리적인 결혼이라는 낙인이 언제까지나 따라붙어 다니는 것도 없어졌다.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는 양친의 자녀도 정식으로 결혼했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와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이때 아버지로 확인된 사람이 자녀를 부양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혼은 자유로이 할 수 있지만) 정신박약아 및 육체적인 부적격자의 결혼은 금지되어 있으며 또 양친과 그 형제자매 사이의 결혼이 금지되는 것은 말할 것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부다처는 금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제 2의 처를 가지는 것은 형법상의 죄이다. “양친은 자녀들을 부양할 필요가 있으며 자녀들이 육체적, 정신적인 측면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하도록 지켜보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자녀가 장래에 무엇인가 (사회에)
유용한 활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줄 필요가 있다. 소비에트러시아에서는 다른 나라에 유포되어 있는 사고방식과는 달리 법률을 통해 양친에게 자녀들을 자신들과 일치하게 교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27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던 개정혼인법에 의하면, 자녀의 훈육과 교육을 위해 자녀들을 부모의 집에서 내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은 자신의 동의 없이 고용될 수 없다. 자녀들도 또한 의지할 곳이 없고 부양받을 필요가 있는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
소비에트에서 아내와 남편은, 한편이 부양받아야 할 상태에 있고 또 다른 한편이 부양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서로 부양의 의무를 진다. 이혼 후 ‘사정의 변화’ ― 재혼 또는 다른 직업에 취직하는 것 ―가 있을 때까지 부양은 계속된다. 남편이 사망하는 경우 그 재산은 아내와 사망자의 부양을 받던 친족에게 평등하게 분배된다. 유언은 평등한 분배를 혼란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허락되고 그때에도 법정상속인은 우위를 점한다.
혁명 직후에는 남녀의 평등한 관계가 성관계를 크게 변화시켰으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관계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이런 방법으로 소비에트정부는 일부일처제 가족을 보호하고 그것을 기본적인 사회단위로 하고 있다.
레이트라도 이렇게 하여 소비에트의 남녀관계는 결혼 및 가족의 영역에서 전정한 의미의 평등을 획득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소비에트에서 남녀의 평등한 지위를 약속하는 법적 변혁이 수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정책이 수립되고 이것이 1930년대 말까지는 충분한 효과를 획득해 모든 영역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3. 결론
공산주의에 입각한 여성해방 사상은 19세기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사상의 강력한 영향 하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공산주의 여성해방 사상의 주요골자는 여성의 임노동자화와 가사노동의 사회화, 여성의 평등과 노동자가족의 보호를 위한 모성보호, 남녀노동자 모두의 요구로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소유관계에서가 아니라 애정에 기초한 결혼 가족관계의 구축 등의 요구를 통해서 잘 드러났다. 비록 공산주의 사상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형성되어 독일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였지만 그것이 꽃피워 실질적 남녀평등에 좀 더 가까운 형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에서였다. 당시 자본주의 국가 들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금지되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보장 되었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이것은 실상 단순한 관념의 변화에 불과한 형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구체적인 개혁안들을 제시하며 일반 여성들에게 와 닿는 정책을 통해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 공산주의는 실패한 국가관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적어도 남녀평등과 여권신장에 있어서는 자본주의 보다 앞서 이를 실천하고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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