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기녀의 기원과 제도화
1. 기녀의 기원
(1). 신라의 원화설
(2). 무녀 기원설
(3). 전쟁포로 기원설
2. 기녀제도 발달
(1). 삼국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전기
(4). 조선후기
Ⅲ. 조선시대 기녀의 생활
1. 교육과 일상생활
(1). 교육
(2). 생활
가. 의복
나. 경제
다. 지위와 그 자손
(3). 조선의 유명한 기녀
2. 역할
(1). 예능적 역할
(2). 성적 역할
Ⅳ. 기녀문화의 사회적 성격
1. 사회적 성격
2. 여성사적 성격
Ⅴ. 결론
참고문헌
Ⅱ. 기녀의 기원과 제도화
1. 기녀의 기원
(1). 신라의 원화설
(2). 무녀 기원설
(3). 전쟁포로 기원설
2. 기녀제도 발달
(1). 삼국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전기
(4). 조선후기
Ⅲ. 조선시대 기녀의 생활
1. 교육과 일상생활
(1). 교육
(2). 생활
가. 의복
나. 경제
다. 지위와 그 자손
(3). 조선의 유명한 기녀
2. 역할
(1). 예능적 역할
(2). 성적 역할
Ⅳ. 기녀문화의 사회적 성격
1. 사회적 성격
2. 여성사적 성격
Ⅴ.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속에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하면서 유행 앞에 무력한 자신들의 모습을 한탄하였다. 아울러 부인들이 고운 맵시만을 귀하게 여겨서 가는 허리를 남에게 자랑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요사스러운 옷을 입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18세기가 되면 전기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여인의 모습이 표현된다. 이들은 상체를 조이고 하체를 부풀린 ‘상박하후(上博下厚)’의 모습을 통해 균형의 아름다움을 지니면서 한편으로는 에로틱한 자태를 드러낸다. 좁은 정수리에 틀어 올려 오히려 긴장감과 율동감이 느껴지는 머리모양, 터질 것 같이 밀착된 소매의 짧디 짧은 저고리, 가는 몸통을 더욱 가늘어 보이도록 배려한 겨드랑이 부분의 자색 회장, 목을 감싼 작은 자색 당코깃에 짧고 도톰한 동정, 앙증 맞게 치켜 올라간 섶코, 겨드랑이 밑으로 빠져 나온 자그마한 이색(異色) 안고름, 그리고 노리개를 꿰어 묶은 가는 자주 고름, 잔잔한 주름으로 엉덩이를 한껏 부풀린 풍성한 치마, 가는 몸통을 더욱 조이는 듯 보이게 하는 하얀 허리말기와 그 끈,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세함이 젖어 나온다.
의복 전체적인 혹은 세부적인 형태와 색채에서 긴장감과 육감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욕을 보인다. 이는 ‘관능미’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전쟁의 혼란과 불안정한 사회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갈등이, 인간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출(表出)하는 복식에 반영된 것이다. 또한 목면과 마의 생산기술의 발달을 통한 이러한 직물류의 원활한 공급은 여자들의 복식 생활에 소비 욕구를 자극하였다. 그리고, 유교사상의 쇠퇴와 새로운 문예사조의 대두에 따라 의생활 규범에서 강조된 절제와 도덕성도 해이해지게 되었다.
조선후기 양반 문화에 대항하는 서민문예가 형성되면서 특히 직업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표출에 더욱 적극적일 수 있었던 기녀는 당시 여성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녀로부터의 관능미는 조선후기 여자 복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 중의 하나였다. 이 시기 여자들은 유교규범에 의해 억제되고 절제된 의생활 규범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의 본능과 욕구를 복식으로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풍속화의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양반가 부녀자들로서는 보기 어려운 기녀의 모습을 접하게 됨으로써 이 회화가 유행을 전파하는 시각적 전달매체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하류층 문화가 복식과 함께 상류층 여성들에게 소개되어지기 시작하였고 상류계층의 하층문화구조에 대한 동조 현상 내지 접근화라는 사회전반적인 흐름은 양반계층 여자들도 복식에서 하층민 특히, 기녀의 복식을 모방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Ⅴ. 결론
조선시대의 기녀는 천인이었으나 조선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드문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국가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았고 그 일에 대한 댓가로 국가에서 미(米)를 지급 받기도 했다. 기녀를 천민층이라는 인식 안에서 단지 웃음을 사고 파는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만 생각해 왔던 것은 기녀에 대한 연구가 미비했었고 나아가 여성사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기녀에 대한 이런 편협된 시각을 갖게 된 것도 조선후기에 향락문화가 발달하면서 가무를 담당하던 기녀가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의 상품화가 되어 기녀는 성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녀를 정의 내릴 때 그 기원이 유녀와 관련지어 설명되는 경우가 있는데, 기녀는 본래 어떤 재능을 가진 예능인으로 가무를 담당하고 전수하는 전문예능인이라고 본다. 기녀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벽화나 중국의 역사서에 나타난 기록에서 기녀의 존재를 찾고 있다. 하지만, 관기제도가 생긴 것은 고려시대로 보여 지며, 주로 여악을 담당했다.
조선시대 기녀는 의약, 침선이 기술, 가무의 기예를 익혀 나라에서 필요할 때 봉사하던 여성이었다. 경기(京妓)에는 의녀, 침선비, 장악원기 등이 있으며, 지방기에는 여악을 담당하고, 지방수령이나 사신의 객고(客苦)를 풀어주는 수청의 임무도 있었다. 수청은 혼자 부임한 수령의 수발을 들어주는 일이었는데, 점차 그 의미가 변화되었다.
또한 경기(京妓)와 의녀(醫女)의 자손은 종량(從良)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으니 이도 또한 국가에서 그들의 역(役)에 대한 댓가로 준 특혜였다.
기녀는 천민이었으나 사족(士族)의 부녀(婦女)보다 삶과 생각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었고 사대부(士大夫)들과 더불어 시, 서를 논하는 동안 사회에 대한 주관적 의식을 키울 수도 있었다. 따라서 기녀의 삶은 능동적이었고 사회 변화시에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적극 참여,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기녀의 자유로운 감성은 그들의 재주에 따라 시로 남겨지고 문학사(文學史)에 이름이 남겨지니, 이러한 기녀의 면모들은 여성사(女性史)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기녀는 이렇듯 필요에 의해 여악용(女樂用)으로 설치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처럼 여성들에게 폐쇄된 사회 속에서 이들은 나름대로 활동적 삶을 살았고 여염의 여자들 보다 자유로웠다. 또한 양반 사대부들과 시, 서를 논하며 사회정세를 깨달을 수 있었고 여염 여성들 보다 삶에 능동적이었다. 또한 이들의 재주와 자유로운 감정은 문학에도 드러나 황진이 등 여러 기녀의 뛰어난 시들이 문학사에 길이 남겨지기도 했다.
기녀는 설치목적 자체가 양반의 위로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그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그러나 기녀가 당시 시대에 끼쳤던 영향은 간과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능화, 『조선해어화사』, 이재곤 옮김, 동문선
이능화, 『조선여속고』, 김상억 옮김, 동문선
가와무라 미나토, 『말하는 꽃 기생』, 유재순 옮김, 소담출판사
정연식, 『조선시대 이야기 1』, 청년사
이은주, 『조선시대 여인들의 멋과 맵시』, 이화여대 출판부
전완길, 『한국화장문화사』, 열화당
안길정, 『관아를 통해 본 조선시대 생활사』 상, 하, 사계절
윤종선, 『<춘향전>에 나타난 기녀문화 』, 고려대교육대학원
김영숙, 김명숙 공저, 1998, 『한국복식사』, 청주대학교 출판부
유승옥, 『한국복식사』, 열화당
의복 전체적인 혹은 세부적인 형태와 색채에서 긴장감과 육감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욕을 보인다. 이는 ‘관능미’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는 조선 후기 전쟁의 혼란과 불안정한 사회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갈등이, 인간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출(表出)하는 복식에 반영된 것이다. 또한 목면과 마의 생산기술의 발달을 통한 이러한 직물류의 원활한 공급은 여자들의 복식 생활에 소비 욕구를 자극하였다. 그리고, 유교사상의 쇠퇴와 새로운 문예사조의 대두에 따라 의생활 규범에서 강조된 절제와 도덕성도 해이해지게 되었다.
조선후기 양반 문화에 대항하는 서민문예가 형성되면서 특히 직업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표출에 더욱 적극적일 수 있었던 기녀는 당시 여성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녀로부터의 관능미는 조선후기 여자 복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 중의 하나였다. 이 시기 여자들은 유교규범에 의해 억제되고 절제된 의생활 규범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의 본능과 욕구를 복식으로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풍속화의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양반가 부녀자들로서는 보기 어려운 기녀의 모습을 접하게 됨으로써 이 회화가 유행을 전파하는 시각적 전달매체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하류층 문화가 복식과 함께 상류층 여성들에게 소개되어지기 시작하였고 상류계층의 하층문화구조에 대한 동조 현상 내지 접근화라는 사회전반적인 흐름은 양반계층 여자들도 복식에서 하층민 특히, 기녀의 복식을 모방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Ⅴ. 결론
조선시대의 기녀는 천인이었으나 조선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드문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국가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았고 그 일에 대한 댓가로 국가에서 미(米)를 지급 받기도 했다. 기녀를 천민층이라는 인식 안에서 단지 웃음을 사고 파는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만 생각해 왔던 것은 기녀에 대한 연구가 미비했었고 나아가 여성사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기녀에 대한 이런 편협된 시각을 갖게 된 것도 조선후기에 향락문화가 발달하면서 가무를 담당하던 기녀가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의 상품화가 되어 기녀는 성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녀를 정의 내릴 때 그 기원이 유녀와 관련지어 설명되는 경우가 있는데, 기녀는 본래 어떤 재능을 가진 예능인으로 가무를 담당하고 전수하는 전문예능인이라고 본다. 기녀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벽화나 중국의 역사서에 나타난 기록에서 기녀의 존재를 찾고 있다. 하지만, 관기제도가 생긴 것은 고려시대로 보여 지며, 주로 여악을 담당했다.
조선시대 기녀는 의약, 침선이 기술, 가무의 기예를 익혀 나라에서 필요할 때 봉사하던 여성이었다. 경기(京妓)에는 의녀, 침선비, 장악원기 등이 있으며, 지방기에는 여악을 담당하고, 지방수령이나 사신의 객고(客苦)를 풀어주는 수청의 임무도 있었다. 수청은 혼자 부임한 수령의 수발을 들어주는 일이었는데, 점차 그 의미가 변화되었다.
또한 경기(京妓)와 의녀(醫女)의 자손은 종량(從良)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으니 이도 또한 국가에서 그들의 역(役)에 대한 댓가로 준 특혜였다.
기녀는 천민이었으나 사족(士族)의 부녀(婦女)보다 삶과 생각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었고 사대부(士大夫)들과 더불어 시, 서를 논하는 동안 사회에 대한 주관적 의식을 키울 수도 있었다. 따라서 기녀의 삶은 능동적이었고 사회 변화시에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적극 참여,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기녀의 자유로운 감성은 그들의 재주에 따라 시로 남겨지고 문학사(文學史)에 이름이 남겨지니, 이러한 기녀의 면모들은 여성사(女性史)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기녀는 이렇듯 필요에 의해 여악용(女樂用)으로 설치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처럼 여성들에게 폐쇄된 사회 속에서 이들은 나름대로 활동적 삶을 살았고 여염의 여자들 보다 자유로웠다. 또한 양반 사대부들과 시, 서를 논하며 사회정세를 깨달을 수 있었고 여염 여성들 보다 삶에 능동적이었다. 또한 이들의 재주와 자유로운 감정은 문학에도 드러나 황진이 등 여러 기녀의 뛰어난 시들이 문학사에 길이 남겨지기도 했다.
기녀는 설치목적 자체가 양반의 위로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그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그러나 기녀가 당시 시대에 끼쳤던 영향은 간과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능화, 『조선해어화사』, 이재곤 옮김, 동문선
이능화, 『조선여속고』, 김상억 옮김, 동문선
가와무라 미나토, 『말하는 꽃 기생』, 유재순 옮김, 소담출판사
정연식, 『조선시대 이야기 1』, 청년사
이은주, 『조선시대 여인들의 멋과 맵시』, 이화여대 출판부
전완길, 『한국화장문화사』, 열화당
안길정, 『관아를 통해 본 조선시대 생활사』 상, 하, 사계절
윤종선, 『<춘향전>에 나타난 기녀문화 』, 고려대교육대학원
김영숙, 김명숙 공저, 1998, 『한국복식사』, 청주대학교 출판부
유승옥, 『한국복식사』,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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