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때에 배수를 극대화 홍수를 조절하고 제방에 대한 물의 압력을 약화시킵니다.
돌 제방은 북거 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북쪽 제방은 대천평이라고 하여 380m의 길이를 갖으며, 남쪽 제방은 소천평 이라고 해서 120m의 길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제방 양쪽에는 수로가 있는데, 상강 상류로부터 흘러내린 물은 화취의 돌 제 으로 인해 양쪽으로 갈라져서 남거와 북거로 흐릅니다.
화취와 천평은 영거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사로, 화취는 해양하의 물길을 두 갈래로 나누어 한줄기는 남거를 통하여 이강에 흘려보내고, 다른 한줄기는 북거를 통해서 상강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해양하의 물의 30%는 이강으로 보냈고 70%는 상강으로 흐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설수천평은 배수 조절을 위해 남거와 북거에 설치된 배수지 제방입니다. 또한 설수천평은 낙차를 조절하여 배의 항해를 돕기도 하였는데, 수로의 물이 깊지 않고 유속이 빠른 부분에 36개의 배수로 문인 두문을 설치하였습니다.
두문의 윗부분에는 구멍이 있는데, 나무 막대봉을 이용하여 옆으로 구멍을 뚤었고, 세 개의 나무 막대기 끝을 묶어서 배수로 다리인 두각을 만든 다음 대나무 조각이나 대쪽 등을 엮어 만든 두단으로 물을 막았습니다. 배가 두문에 들어오면 뒤의 두문을 막아 물을 채워 한층한층 올라갔고, 내려올때는 앞문을 막아서 한층한층 내려갔습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대형의 배도 쉽게 영거를 통과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두문의 구조는 (그림.5)와 같습니다.
이후 영거는 양자강 줄기와 주강의 줄기를 이어 놓아 영남과 중원지역의 교통운수의 대동맥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 후의 역대 왕조들이 영거를 수리하였습니다.
(그림.5)
춘추전국시대와 고대 중국의 구조물들을 조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습니다. 영거의 두문은 현재 파나마 운하의 갑문과 유사하며 한나라의 만리장성의 축조에서 사용된 보강토공법은 현재 옹벽 시공현장에서 볼 수 있는 보강토공법을 보강재의 재료만 달리해서 사용하는것과 유사합니다. 또한 두공은 현재 다리 교각에 상판의 하중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연결부에서 사용하는 것과 그 기능이 흡사합니다. 이와 같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공학적인 사고가 저를 감탄하게 만듭니다.
다만 춘추전국시대의 공학관련 자료, 특히 구조물에 관한 자료는 찾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자료를 찾는다고 해도 그 내용이 깊은 것이 없었고, 수박 겉좍기식의 내용들이라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돌 제방은 북거 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북쪽 제방은 대천평이라고 하여 380m의 길이를 갖으며, 남쪽 제방은 소천평 이라고 해서 120m의 길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제방 양쪽에는 수로가 있는데, 상강 상류로부터 흘러내린 물은 화취의 돌 제 으로 인해 양쪽으로 갈라져서 남거와 북거로 흐릅니다.
화취와 천평은 영거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사로, 화취는 해양하의 물길을 두 갈래로 나누어 한줄기는 남거를 통하여 이강에 흘려보내고, 다른 한줄기는 북거를 통해서 상강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해양하의 물의 30%는 이강으로 보냈고 70%는 상강으로 흐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설수천평은 배수 조절을 위해 남거와 북거에 설치된 배수지 제방입니다. 또한 설수천평은 낙차를 조절하여 배의 항해를 돕기도 하였는데, 수로의 물이 깊지 않고 유속이 빠른 부분에 36개의 배수로 문인 두문을 설치하였습니다.
두문의 윗부분에는 구멍이 있는데, 나무 막대봉을 이용하여 옆으로 구멍을 뚤었고, 세 개의 나무 막대기 끝을 묶어서 배수로 다리인 두각을 만든 다음 대나무 조각이나 대쪽 등을 엮어 만든 두단으로 물을 막았습니다. 배가 두문에 들어오면 뒤의 두문을 막아 물을 채워 한층한층 올라갔고, 내려올때는 앞문을 막아서 한층한층 내려갔습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대형의 배도 쉽게 영거를 통과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두문의 구조는 (그림.5)와 같습니다.
이후 영거는 양자강 줄기와 주강의 줄기를 이어 놓아 영남과 중원지역의 교통운수의 대동맥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 후의 역대 왕조들이 영거를 수리하였습니다.
(그림.5)
춘추전국시대와 고대 중국의 구조물들을 조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습니다. 영거의 두문은 현재 파나마 운하의 갑문과 유사하며 한나라의 만리장성의 축조에서 사용된 보강토공법은 현재 옹벽 시공현장에서 볼 수 있는 보강토공법을 보강재의 재료만 달리해서 사용하는것과 유사합니다. 또한 두공은 현재 다리 교각에 상판의 하중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연결부에서 사용하는 것과 그 기능이 흡사합니다. 이와 같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공학적인 사고가 저를 감탄하게 만듭니다.
다만 춘추전국시대의 공학관련 자료, 특히 구조물에 관한 자료는 찾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자료를 찾는다고 해도 그 내용이 깊은 것이 없었고, 수박 겉좍기식의 내용들이라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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