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황동규의 생애
2. 「풍장」 -風葬의 의미
3. 「풍장」- 표현상의 특징
1) 미시적 시각으로서의 관찰
2) 유머의 감각
3) ‘나’로부터의 이별
4. 「풍장」- 여행을 통한 집필
Ⅲ. 결론
Ⅳ. 참고문헌
Ⅱ. 본론
1. 황동규의 생애
2. 「풍장」 -風葬의 의미
3. 「풍장」- 표현상의 특징
1) 미시적 시각으로서의 관찰
2) 유머의 감각
3) ‘나’로부터의 이별
4. 「풍장」- 여행을 통한 집필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수상했다. 제목인 ‘평균율’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음악을 사랑했다.
작가는 고전음악에 대해서 “음악 골목에 빠져 평생 헤맬 뻔 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 2 때 시각적 즐거움이 거의 삭제된 상태였던 한국전쟁의 폐허 서울에서 나는 음악실 르네상스와 돌체에 다니며 청각의 황홀을 만들어 주는 서양 고전음악을 발견했고, 음악을 생의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다.”라고 할 정도로 고전음악을 사랑했으며, 이를 책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황동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68>: 시인 황동규」, 한국일보, 2003년 7월 24일.
영국 유학을 다녀와서 그는 서울대 교양학부 전임강사로 자리를 잡게 되고 고정자씨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후 동아일보에 「계엄령 속의 눈」을 발표하였는데 이때부터 현실 비판적인 시를 많이 썼다. 「계엄령 속의 눈」은 발표 당시에는 「흙빛 눈」으로 그 제목을 바꾸어 발표 되었다. 이 시기 이후의 시에서는 연가풍의 애상적인 분위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모순을 역사적고전적 제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80년대 이후의 시작 활동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점은 작가의 독특한 시법인 극서정시의 실험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후에도 계속 시작(時作)활동을 하면서 그는 서울대학교 영문과의 교수로 재직한다. 2003년에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교수와 시인의 삶을 함께 했던 것이다.
황동규가 2006년 현재까지 발표한 작품들은 시집 13권, 시선집 3권, 산문집 5권으로 모두 21권에 달한다. 시의 편수만 하여도 500편이 넘고, 산문집에 들어있는 산문 역시 편수가 많은 편이다.
이러한 다작이 좋은 시인을 결정짓는 올바른 기준은 아니지만, 황동규의 경우에는 발표하는 시집이나 시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여러 면의 수상 경력이나, 한국인의 애송시에 뽑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광복이후 한국 기가에 큰 획을 긋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시집- 『어떤 개인날』(1961), 『비가』(1965). 『태평가』(1968), 『열하일기』(1972).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악어를 조심하라고?』(1966),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풍장』(1995),
『외계인』(1966), 『버클리 풍의 사랑노래』(2000).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 『꽃의 고요』(2006)
『황동규 시전집 1』(1998), 『황동규 시전집 2』(1998)
□ 시론, 산문집- 『사랑의 뿌리』(1976), 『겨울 노래』(1979),
『나의 시의 빛과 그늘』(1991),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2001),
『시가 태어나는 자리』(2001)
□ 수상경력- 현대문학상 (1968), 한국문학상 (1980), 연암문학상 (1988)
김종삼문학상(1991), 이산문학상(1991), 대산문학상(1995),
미당문학사(2002)
2. 「풍장」-風葬의 의미
1982년에 시작되어 1995년에 종결된 황동규의 「風葬」 연작은 그 오랜 시간적 숙성의 기간에 있어서 그리고 70편으로 구성된 작품의 질과 시적품격에 있어서, 우리 현재 시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빛나는 시작 성취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한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정을 담은 보고서가 된다. 그는 연작을 끝내면서 죽음이 없이 삶의 황홀함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말한 것처럼, 이는 「風葬」의 연작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에 관한 한 어느 정도의 매듭을 지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편들은 표면적으로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삶의 문제, 생명의 문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시인은 죽음을 명상함으로써 생명의 신비로움과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에게 죽음이 허락된다면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의 황홀함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죽음은 생물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권리라는 생각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얻은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과정에서 얻었던 것이다. 누구에게 강의를 듣거나 책을 보고 안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총체적 과정 속에서 그러한 생각에 도달한 것이니 이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자들은 「風葬」에서 죽음에 대한 어떤 논리적 인식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는 가운데 그의 체험을 감성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風葬」 연작은 황동규 시인의 삶과 그의 정신에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해 준 작업이었고 그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연륜과 시적 창조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작업이기도 하다. 이숭원,『서정시의 힘과 아름다움』,새미, 1997, p.112.
풍장(風葬)이란 주로 해안도서 지역에서 행해지는 장례 방법으로 사람이 죽은 후 시신을 땅에 매장하지 않고 작은 초막에 짚으로 덮어주어 비와 바람에 자연히 소멸되게 하는 방법이다. 풍장은 위생을 이유로 금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서해 남해의 섬들에서 지금도 행해지는 독특한 이중 장례 행위이다. 원래는 수주일씩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아들의 부모가 별세했을 때, 돌아와 부모의 시신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근처에 있는 무인도나 섬 깊이 인적이 드문 곳에 임시 건물을 짓고 시체를 거기에 안치한 후 여러 달 지나서 탈골되면 예식과 함께 뼈를 매장하는 장례의식이다.
그는 자신의 산문집을 통해서 「풍장」 독자들을 위한 글을 썼는데 여기에서 이 장례의식에 관심 갖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장례의식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중 장례의 독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풍장 자체가 우리 삶의 알레고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계속 죽어가고 있다. 풍장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느 정도 죽어 있는가, 혹은 어느 정도 해탈(탈골)했는가를 땅속에 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장치다.
뿐만 아니라 원래 매장은 내세가 있다는 형이상학을 앞세워 죽은 자를 산 자들의 삶에서 멀리
작가는 고전음악에 대해서 “음악 골목에 빠져 평생 헤맬 뻔 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 2 때 시각적 즐거움이 거의 삭제된 상태였던 한국전쟁의 폐허 서울에서 나는 음악실 르네상스와 돌체에 다니며 청각의 황홀을 만들어 주는 서양 고전음악을 발견했고, 음악을 생의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다.”라고 할 정도로 고전음악을 사랑했으며, 이를 책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황동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68>: 시인 황동규」, 한국일보, 2003년 7월 24일.
영국 유학을 다녀와서 그는 서울대 교양학부 전임강사로 자리를 잡게 되고 고정자씨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후 동아일보에 「계엄령 속의 눈」을 발표하였는데 이때부터 현실 비판적인 시를 많이 썼다. 「계엄령 속의 눈」은 발표 당시에는 「흙빛 눈」으로 그 제목을 바꾸어 발표 되었다. 이 시기 이후의 시에서는 연가풍의 애상적인 분위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모순을 역사적고전적 제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 시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80년대 이후의 시작 활동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점은 작가의 독특한 시법인 극서정시의 실험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후에도 계속 시작(時作)활동을 하면서 그는 서울대학교 영문과의 교수로 재직한다. 2003년에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교수와 시인의 삶을 함께 했던 것이다.
황동규가 2006년 현재까지 발표한 작품들은 시집 13권, 시선집 3권, 산문집 5권으로 모두 21권에 달한다. 시의 편수만 하여도 500편이 넘고, 산문집에 들어있는 산문 역시 편수가 많은 편이다.
이러한 다작이 좋은 시인을 결정짓는 올바른 기준은 아니지만, 황동규의 경우에는 발표하는 시집이나 시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여러 면의 수상 경력이나, 한국인의 애송시에 뽑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광복이후 한국 기가에 큰 획을 긋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시집- 『어떤 개인날』(1961), 『비가』(1965). 『태평가』(1968), 『열하일기』(1972).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악어를 조심하라고?』(1966),
『몰운대행』(1991), 『미시령 큰바람』(1993), 『풍장』(1995),
『외계인』(1966), 『버클리 풍의 사랑노래』(2000).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 『꽃의 고요』(2006)
『황동규 시전집 1』(1998), 『황동규 시전집 2』(1998)
□ 시론, 산문집- 『사랑의 뿌리』(1976), 『겨울 노래』(1979),
『나의 시의 빛과 그늘』(1991),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2001),
『시가 태어나는 자리』(2001)
□ 수상경력- 현대문학상 (1968), 한국문학상 (1980), 연암문학상 (1988)
김종삼문학상(1991), 이산문학상(1991), 대산문학상(1995),
미당문학사(2002)
2. 「풍장」-風葬의 의미
1982년에 시작되어 1995년에 종결된 황동규의 「風葬」 연작은 그 오랜 시간적 숙성의 기간에 있어서 그리고 70편으로 구성된 작품의 질과 시적품격에 있어서, 우리 현재 시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빛나는 시작 성취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는 한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정을 담은 보고서가 된다. 그는 연작을 끝내면서 죽음이 없이 삶의 황홀함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말한 것처럼, 이는 「風葬」의 연작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에 관한 한 어느 정도의 매듭을 지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편들은 표면적으로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삶의 문제, 생명의 문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시인은 죽음을 명상함으로써 생명의 신비로움과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에게 죽음이 허락된다면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의 황홀함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죽음은 생물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권리라는 생각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얻은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과정에서 얻었던 것이다. 누구에게 강의를 듣거나 책을 보고 안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총체적 과정 속에서 그러한 생각에 도달한 것이니 이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자들은 「風葬」에서 죽음에 대한 어떤 논리적 인식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는 가운데 그의 체험을 감성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風葬」 연작은 황동규 시인의 삶과 그의 정신에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해 준 작업이었고 그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연륜과 시적 창조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작업이기도 하다. 이숭원,『서정시의 힘과 아름다움』,새미, 1997, p.112.
풍장(風葬)이란 주로 해안도서 지역에서 행해지는 장례 방법으로 사람이 죽은 후 시신을 땅에 매장하지 않고 작은 초막에 짚으로 덮어주어 비와 바람에 자연히 소멸되게 하는 방법이다. 풍장은 위생을 이유로 금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서해 남해의 섬들에서 지금도 행해지는 독특한 이중 장례 행위이다. 원래는 수주일씩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아들의 부모가 별세했을 때, 돌아와 부모의 시신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근처에 있는 무인도나 섬 깊이 인적이 드문 곳에 임시 건물을 짓고 시체를 거기에 안치한 후 여러 달 지나서 탈골되면 예식과 함께 뼈를 매장하는 장례의식이다.
그는 자신의 산문집을 통해서 「풍장」 독자들을 위한 글을 썼는데 여기에서 이 장례의식에 관심 갖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장례의식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중 장례의 독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풍장 자체가 우리 삶의 알레고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계속 죽어가고 있다. 풍장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느 정도 죽어 있는가, 혹은 어느 정도 해탈(탈골)했는가를 땅속에 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장치다.
뿐만 아니라 원래 매장은 내세가 있다는 형이상학을 앞세워 죽은 자를 산 자들의 삶에서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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