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조선시대 가단(歌檀)연구, 대표작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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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조선시대 가단(歌檀)연구, 대표작품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가객과 가단
1) 가객이란
2) 가객의 출현 동인
3) 가단의 성립
2. 가단의 구성
1) 사대부 가단
(1) 영남가단과 강호가도
(2) 호남가단과 풍류정신
2) 여항인의 가단
(1) 경정산가단
① 정의와 특징
② 경정산가단의 전개
③ 경정산가단에 대한 논란
④ 작품에서 나타난 경정산가단의 특징
(2) 노가재가단
① 김수장의 생애
② 그의 활약과 업적
③ 김수장의 작품세계
④ 노가재가단의 형성 및 시조사적 의의
⑤ 노가재가단의 작품 고찰
(3) 승평계와 노인계
① 승평계와 노인계의 정의
② 승평계의 활동기간
③ 가곡 풍류회로서의 승평계
④ 승평계의 시조사적 의의
⑤ 승평계 구성원의 면면

Ⅲ.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동으로 말미암아 시조 가단은 풍성한 결실을 맺었으니 「해동가요」와 「청구가요」의 가집 편찬이 그 예이다. 이러한 점에서 노가재가단의 형성이 지니는 의의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인해 예술적인 창작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없던 평민작가들에게 그 여건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가객의 등장과 가창의 활성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 김천택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집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평민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 했었기 때문에 어떠한 신분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직 전문가객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참여한 노가재가단과는 성격을 달리 한다 하겠다.
둘째, 노가재가단에는 사회적 권위나 체면에 관계없이 같은 계층의 예술가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노골적이고 해학적인 사설시조를 창작하고 발전시키는데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김천택과 관련된 인물이 사설시조를 하나도 남기지 않은데 비해 김수장과 후배가객들이 많은 사설시조를 남기고 있다는 점과 대비된다.
셋째, 고유한 문화유산인 고시조 작품을 모아, 이를 가집으로 편찬하는데 결정적인 자리를 만들었다. 이것은 「해동가요」이본 중에서 을해본을 제외한 나머지 가집들이 모두 노가재가단이 형성된 후 엮어 졌다는 사실이 이를 확인시켜준다. 특히 계미본의 부편으로 전하는 「청구가요」는 가단에 출입하는 젊은 가객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엮어진 가집이기 때문에 노가재가단이 존재함으로 인해 빛을 보게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청구가요」에 기록된 발문을 통해 당시 가락계(歌樂界)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⑤ 노가재 가단의 작품 고찰
노가재가단의 작품을 고찰하기에 앞서 가단을 주도하고 형성한 김수장의 작품에 대해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129수에 달하는 시조를 창작한 시조작가로써 조선시대 시조에 있어 양적 크기로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할 수 있겠다. 한 작가가 다량의 작품을 생산했을 때 이는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존재한다. 김수장의 경우도 작품의 내용을 보면 인간사 보편적 일상에서 유교적 덕목, 역사, 종교, 유락(遊樂)에 걸쳐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이러한 작품의 다양성은 주제의 다양함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주제의 다양함은 무엇에서 기인하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김수장이 시조를 단순히 문학으로 인식하지 않고 생활 자체로 여기는 인식자세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시조 문학이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이 경험한 인생의 전 분야에 걸쳐 문학적 대변의 장이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조는 그들에게 창작에서 오는 기쁨과 향유에서 오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생활과 유격된 존재였다. 특히 사대부시조에서 나타나는 음풍농월적(吟風弄月的)인 기상과 김수장 이전 여항 작가들에서 보이는 현실 비판적인 사유는 김수장 이전 시조들에서 보여 생활과의 괴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에 반하여 김수장은 시조 자체가 그의 생활 전반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가 수장으로 머물고 있었던 노가재가단 역시 이러한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의 작품을 통하여 이를 검토해보기로 하자.
心性이 게여름으로 書劍을 못 이우고
稟質이 迂疎으로 富貴를 모르거다
七十載 ㅣ우려 어든 거시 一長歌인가 노라
마음과 성품이 게으름으로 큰 학자, 장군이 되지 못하고
품성과 재질이 세상 물정에 어둡고 민첩하지 못하므로 부귀를 몰랐도다
나이 칠십이 되어 겨우 얻은 것이 일가장가인가 하노라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던 김수장도 이 시조를 보면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심성이 게을러서 학자나 장군이 되지 못하고 성품이 우둔하여 부귀도 모르는 김수장은 70세 말년에 겨우 얻은 것이라고는 한 가닥 노래밖에 없다며 신분의 한계를 심성이 게으름으로 우회하여 비유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룩한 ‘노래’의 경지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수장은 이렇게 가슴 한구석에 풍류의 대가이면서도 신분의 한계에 대한 통념을 뛰어넘지 못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결국 현실에 적응하여 一長歌를 부르는 기질을 발휘한다. 김수장은 입신출세 못한 것, 부귀를 이룩하지 못한 것을 모두 자신의 심성과 품질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후회하거나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가객으로서의 한 평생을 만족하고 일종의 긍지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김천택의 시조와 비교해보면 입신출세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사회적 현실과 세상을 탄식하고 체념하는데 비해 자적하는 지은이의 모습이 더욱 여유로워 보인다.
처음에 모르더면 모르고 있을 것을
어인 사랑 싹나며 움돋는가
언제나 이 몸에 열음 열어 휘들거든 보려뇨 [김우규]
처음부터 몰랐더라면 차라리 모르고나 있었을 것을,
이제는 사랑이 싹트고 움이 돋아 자꾸만 커 가는구나.
이 사랑이 언제나 열매를 맺어 흔들거리는 것을 볼 것인가
이 시는 김우규가 지은 시로 김우규는 영조 때의 가인으로, 경정산가단의 한 사람. 김수장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시조 12수가 전한다. 사랑이 시작되고 열매 맺음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걱정하는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長安甲第 벗님네야 이 말 들으시소
몸치례 연이와 마음치례 여보소
솔直領 쟝도리 風流에란 부듸 a여 말으시
가악생활이 이상적 현실임을 내세우고 가악활동에 긍지를 갖는 그는 몸치레에 바빠 미음치례하지 못하는 장안갑제 벗님네에게 ‘솔直領 쟝도리 風流’라는 하급의 풍류를 내세우며 가악활동을 마음치레하는 최고의 가치로 주장하여 세속의 치유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가악활동이 유교적 덕목과 맞먹을 만한 풍교의 효과를 지녔음을 주장하여 그 활동이 지닌 사회적 의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알고 늙엇는가 모르고 늙엇노라
주색에 겻거든 늙은 줄 어이 알리
귀 밋 백발이 훗날리니 그를 슬허 노라
[ 출전 청구가요 62, 박문욱 ]
알고 늙었는가?, 모르고 늙었노라.
주색에 잠겨 세월을 보냈거늘 늙은 줄을 어찌 알겠는가?
귀밑에 흰 머리칼이 휘날리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오은 비 개거냐 삿갓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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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3.24
  • 저작시기2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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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5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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