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 연극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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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희랍 연극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환경

2. 디오니소스축제와 연극의 발생

3. 테스피스 Thespis

4. 공연․극장

5. 비극 : 그 발생과 구성․특징

6. 에스킬레스 Aeschylus

7. 소포클레스

8. 유리피데스 Euripides

9. 희극

10. 아리스토파네스

12. 마임극

본문내용

나 배우가 생겨 혼자서 2~3인의 역을 맡게 되자 자연이 가면이나 옷을 갈아 입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배우를 위해 조그만 탈의소 내지는 대기소를 겸한 장소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스케네(skene)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scene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된다. 그리고 이 스케네 양쪽에 배우들의 출퇴장을 위한 길이 생겼는데, 이 통로를 parodos라고 불렀다. 스케네 전면에 관객석 첫 제단과 같은 높이 정도의 배우가 나와 연기를 하는 오늘날의 간단한 무대를 연상케 하는 장소가 마련되었는데, 이를 프로스케니온proskenion 또는 로게이온logeion이라고 불렀다. 이 장소 양쪽에 돌출한 장소를 파라스케니온paraskenion이라고 했는데, 오늘날의 proscenium, 즉 무대라는말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본다. 관객석은 ‘보는 장소’즉 테아트론theatron이라고 했다.
희랍인들은 또한 건축의 천재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있어서도 극장을 만들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청각장치(acoustic system)이다. 배우들의 발성이 극장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비상한 주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희랍의 극장은 야외극장이며, 그 규모는 2만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청각장치는 훌륭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적절히 이용한 경사지형이며 관객이 밀접해서 이루게 되는 자연적인 인파방음벽 등 그리고 배우 각자의 풍부한 성량으로 해서 훌륭한 청각을 의지하였다.
극장 구조상 당시의 극중 사건은 대부분이 집 외부 또는 야외를 중심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실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실내에서 일어날 때는 부득이 엑키클레마(accyclema)라는 특수한 이동식 장치를 썼다. 기원전 5세기에 극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이 장치는 바퀴가 달린 조그만 이동식 무대이다. 스케네 뒤에 준비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는 배우를 그 위에 태우고 밀고 나왔다. 특히 유리피데스와 아리스토파네스가 이러한 장치를 즐겨 사용했다. 그들은 또한 페리아크토이(periaktoi)라는 간단한 장치도 사용했던 모양이다. 이것은 마치 프리즘 같이 3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각 면에 양식화된 간단한 장치가 그려져 있어 3면 중 그 1면은 극의 장면 여하에 따라 관객을 향해 세워둔다. 물론 이것도 이동식으로 되어 있었다. 주로 흑백 두 빛으로만 양식화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것이 언제쯤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밖에도 메카네(mechae)라는 장치가 있었다. 극의 종말에 가까워져 최후의 심판을 하기 위해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든가 죽은 사람이 재생되는 장면을 나타내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이동식 기중기를 말한다. 이 기중기에 신을 상징하는 배우를 공중에 매달아 놓아 ‘하늘에 있는 거룩한 존재’를 나타낸다. 에스킬러스와 유리피데스가 이 장치를 사용했으며, Aristopanes의 걸작 「구름」에서 소크라테스가 “나는 공중을 걸으며 태양을 산책하노라.”라는 대사를 말하는 장면은 소크라테스가 이 메카네에 몸이 묶여 종주에 매달려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야외극장에서 2만이 넘는 관객을 상대로 연기를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사의 전달도 그렇고, 웬만한 동작은 관객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애로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랍의 배우들은 자기네들의 몸을 좀더 크게 나타내고 소리를 좀더 크게 나타내고 소리를 좀더 높이고 폭을 넓히는데 여간 부심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소위 사실주의적인 연기법으로는 도저히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무대와 관객석의 사이가 멀었기 때문에 얼굴 표정이나 섬세한 몸짓으로는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다. 가면이 고안된 이유도 이러한 애로를 덜어주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가면은 섬세하고 변화하는 표정을 나타낼 수 없다는 약점은 있지만, 그러나 인물의 성의 구별과 희극의 감정은 분명히 나타낼 수 있었다. 비극적 상황 하에 있는 인물들이 쓴 가면에는 아름다움마저 있었다. 극의 내용, 성질 여하에 따라 가지각색의 가면이 생겼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코러스에서 가끔 새, 벌, 또는 개구리의 가면을 씌우기도 했다. 배우들은 원거리의 관객에게 자기의 몸을 크게 보이기 위해 목에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chiton이라는 의상에다가 신장을 높이기 위해 onkos라는 과장된 머리 수건을 썼고, 밑창이 두껍고 높은 cothurnus라는 신을 신어 관객의 눈에 좀더 크게 보이자고 했다. 이러한 고안은 물론 원거리의 관객에게 자기의 모습을 확대시켜 보이고자 한데서 생겼지만, 또 한편으로는 비극의 주인공들의 장엄하고 위신있는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에서도 나왔다고 보겠다. 대신 코러스는 배우들과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왜소하게 보이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코러스의 수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이 많다. 아리온이 시초에 무질서한 합창곡의 수를 50명으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후에 에스킬러스는 그 수를 12명으로, 이어 소포클레스는 15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코러스는 전원이 똑같이 춤과 노래를 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두 조로 나누어 맡은 역을 다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코러스는 오늘날처럼 노래를 했다기보다는 주어진 詩句를 노래조로 읊었다고 생각된다. 노래가 아니라 영탄이라고 보겠다. 코러스의 기능은 첫째 의견, 충고를 하거나 관객에게 극의 개요를 알려주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둘째는 극의 윤리와 도덕을 설정하여 관객에게 관극태도를 설정해 주었으며, 셋째는 주인공의 행동과 사건에 대해 직각적인 반응을 보여 주는 극중 관객의 역할을 하였다. 넷째로는 극의 분위기와 감정을 고조시켜 주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극의 내용에 따라 그리고 사건의 진전,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이에 부합되는 노래와 춤 또한 대형(隊形)의 변화로 그 분위기를 더욱 고조케 하였다. 다섯째로 오늘날의 연극에서처럼 소도구 또는 장치의 기능도 맡았다. 끝으로 극의 리듬을 이끌고 나아가는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희랍극은 시극이었다. 또한 대사와 노래와 춤이 융합된 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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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4.18
  • 저작시기200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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