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인물선택 배경 및 이유
2)인물의 생장 및 활동
3)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4)인물에 대한 개인적 소감
2)인물의 생장 및 활동
3)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4)인물에 대한 개인적 소감
본문내용
『전태일 그는 누구인가?』
1)인물선택 배경 및 이유
2)인물의 생장 및 활동
3)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4)인물에 대한 개인적 소감
◈날짜: 2008년 4월 28일
◈지도교수: 표영관 교수(님)
◈과목: 한국사의 이해
◈학과: 유통경영전공(A반)
◈학번: 20082011
◈성명: 양 철 준
눈으로는 과거를 향하데...가슴은 미래를 보라....
『목 차』
1)인물선택 배경 및 이유
2)인물의 생장 및 활동
3)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4)개인적 소감
※참고 문헌
『전태일 평전』 『전 태 일』 『하청노동자 전태일』
1)인물선택 배경 및 이유
나는 레포트 작성에 앞서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역사 속에는 자기 목숨보다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훌륭한 분들이 너무 많기에 어떤 한분을 택한다는 게 쉽지 만은 안는 일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인들이라고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국사시간에 배우는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안중근 의사, 백범김구 등의 교과서 속에서나 나오는 인물들이 전부다.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대해 아는 것도 수업시간에 들은 게 전부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역사공부에 관심이 많은 학생으로서 부끄럽게 그분들의 삶을 다룬 도서 한권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레포트를 작성 한다고 그저 인터넷에서 그분들의 삶이 담긴 자료를 읽어보지도 않고 복사해서 레포트를 작성한다는 게 내 스스로에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 때 공장에서 일하면서 읽은 전태일 평전 이라는 책을 문득 생각해 냈다.
사실 스무살 때 책 제목을 보고 전태일이란 사람이 누구지? 라는 생각으로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전태일 평전』이 책속에 주인공인 전태일 열사는 스무살인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고 또한 적지 않은 의문점을 시사해주었다. 또한 그때 내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한터라 어쩌면 그분과 내 스스로 조그마한 공감체를 형성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근대사에서 그 분을 빼놓을 순 없다. 단순히 분신자살을 해서가 아니라 그분으로 인해 우리 근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 또래나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전태일 열사가 누군지도 모른다.
전태일 열사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으니 알아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국사 시간에 배우는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만이 훌륭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위인들일까?
물론 그분들의 업적은 훌륭하고 대대로 기억되어저야 할 위인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사 공부라는게 단순히 누가 가르쳐 준걸 외워야하는 암기과목도 아닌데 단순히 그분들의 업적은 훌륭하다는 식의 생각 말고 좀 더 역사에 한걸음 다가가 왜 라는 질문을 던져 보지는 못하는 걸까?
군 복무중 두 번째로 읽고 제대하고 근 1년 6개월만에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룬 책들을 다시금 읽어보면서 나는 세 번째로 전태일 열사에게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자 전태일 열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2)인물의 생장 및 활동
♣1948년 8월 26일 경북 대구에서 출생.
부친 전상수는 피복제조업계 봉제 노동자였으며 해방 직후 대구의 노동자 파업에 가담했다가 고통을 겪었다. 모친 이소선은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이 일제 경찰에 의해 학살된 후 개가한 모친을 따라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처녀 시절 데이신타이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 도망쳤으며, 8·15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전상수와 결혼 하였다.
♣1954년 6세.
여름 무렵 재봉틀 몇 대로 양복제조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가족 모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어머니가 서울역 근처 염천교 밑에서 노숙하면서 석 달 가까이 동냥으로 가족을 돌보았다. 그후 아버지가 임시로 벌어온 돈으로 어머니는 채소행상을 시작 하였다.
♣1956년 8세.
2년간 모은 돈으로 재봉틀 한 대를 마련한 아버지는 개인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다. 전태일은 남대문초등공민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처음으로 짧은 학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60년 12세.
막내동생 순덕이 태어남. 아버지 사업이 잘 되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4·19혁명 전후로 부친이 브로커에게 속아 사업이 망하면서 가족은 이태원 외인주택 근처의 판잣집으로 이사하였다. 이해 전태일은 남대문초등공민학교에서 남대문국민학교로의 편입 시험에 합격해 잠시 다녔으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신문팔이를 시작하였다. 이즈음 밀린 방세를 내지 못해 이태원집에서도
1)인물선택 배경 및 이유
2)인물의 생장 및 활동
3)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4)인물에 대한 개인적 소감
◈날짜: 2008년 4월 28일
◈지도교수: 표영관 교수(님)
◈과목: 한국사의 이해
◈학과: 유통경영전공(A반)
◈학번: 20082011
◈성명: 양 철 준
눈으로는 과거를 향하데...가슴은 미래를 보라....
『목 차』
1)인물선택 배경 및 이유
2)인물의 생장 및 활동
3)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4)개인적 소감
※참고 문헌
『전태일 평전』 『전 태 일』 『하청노동자 전태일』
1)인물선택 배경 및 이유
나는 레포트 작성에 앞서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역사 속에는 자기 목숨보다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훌륭한 분들이 너무 많기에 어떤 한분을 택한다는 게 쉽지 만은 안는 일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인들이라고는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국사시간에 배우는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안중근 의사, 백범김구 등의 교과서 속에서나 나오는 인물들이 전부다.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대해 아는 것도 수업시간에 들은 게 전부라 할 수 있다. 나 또한 역사공부에 관심이 많은 학생으로서 부끄럽게 그분들의 삶을 다룬 도서 한권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레포트를 작성 한다고 그저 인터넷에서 그분들의 삶이 담긴 자료를 읽어보지도 않고 복사해서 레포트를 작성한다는 게 내 스스로에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 때 공장에서 일하면서 읽은 전태일 평전 이라는 책을 문득 생각해 냈다.
사실 스무살 때 책 제목을 보고 전태일이란 사람이 누구지? 라는 생각으로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전태일 평전』이 책속에 주인공인 전태일 열사는 스무살인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고 또한 적지 않은 의문점을 시사해주었다. 또한 그때 내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한터라 어쩌면 그분과 내 스스로 조그마한 공감체를 형성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근대사에서 그 분을 빼놓을 순 없다. 단순히 분신자살을 해서가 아니라 그분으로 인해 우리 근대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 또래나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전태일 열사가 누군지도 모른다.
전태일 열사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으니 알아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국사 시간에 배우는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만이 훌륭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위인들일까?
물론 그분들의 업적은 훌륭하고 대대로 기억되어저야 할 위인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사 공부라는게 단순히 누가 가르쳐 준걸 외워야하는 암기과목도 아닌데 단순히 그분들의 업적은 훌륭하다는 식의 생각 말고 좀 더 역사에 한걸음 다가가 왜 라는 질문을 던져 보지는 못하는 걸까?
군 복무중 두 번째로 읽고 제대하고 근 1년 6개월만에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룬 책들을 다시금 읽어보면서 나는 세 번째로 전태일 열사에게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자 전태일 열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2)인물의 생장 및 활동
♣1948년 8월 26일 경북 대구에서 출생.
부친 전상수는 피복제조업계 봉제 노동자였으며 해방 직후 대구의 노동자 파업에 가담했다가 고통을 겪었다. 모친 이소선은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이 일제 경찰에 의해 학살된 후 개가한 모친을 따라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처녀 시절 데이신타이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 도망쳤으며, 8·15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전상수와 결혼 하였다.
♣1954년 6세.
여름 무렵 재봉틀 몇 대로 양복제조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가족 모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어머니가 서울역 근처 염천교 밑에서 노숙하면서 석 달 가까이 동냥으로 가족을 돌보았다. 그후 아버지가 임시로 벌어온 돈으로 어머니는 채소행상을 시작 하였다.
♣1956년 8세.
2년간 모은 돈으로 재봉틀 한 대를 마련한 아버지는 개인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다. 전태일은 남대문초등공민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처음으로 짧은 학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60년 12세.
막내동생 순덕이 태어남. 아버지 사업이 잘 되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4·19혁명 전후로 부친이 브로커에게 속아 사업이 망하면서 가족은 이태원 외인주택 근처의 판잣집으로 이사하였다. 이해 전태일은 남대문초등공민학교에서 남대문국민학교로의 편입 시험에 합격해 잠시 다녔으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신문팔이를 시작하였다. 이즈음 밀린 방세를 내지 못해 이태원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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