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서지적 특성과 국어사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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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서지적 특성과 국어사적 특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용비어천가』의 서지사항
2. 『용비어천가』의 국어사적 특징

Ⅲ. 결론

본문내용

12 뿐인 영본(零本)이나 지질(紙質)로 보나 판심(版心), 어미(魚尾) 등으로 보나 현존 최고본이며 세종대의 초간본으로 추측되고 있다. 권 78910은 권덕규(權悳奎)씨 가장본(家藏本)으로 전하여 오다가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고, 권 3456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일찍이 ‘우리말본’ 최현배, “우리말본”, 정음사, 1976년 p60.
에서 초간본으로 소개했다.
이 판본은 세종 29년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판광(板匡)은 세로 26.4cm, 가로 17.9cm인데, 정음자체(正音字體)는 석보상절체(釋譜詳節體)와 이기문(1962:289)은 ‘ㆍ’와 방점자획 등의 특징에 따라 정음 자체를 ‘훈민정음 해례본체’, ‘석보상절체’, ‘월인석보체’로 구분하였다.
같다. 즉 ‘ㆍ’자나 방점은 모두 완전한 원점(圓點)을 유지하며 자획(字劃)도 붓글씨체가 아니라 처음과 끝이 모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으나, 다른 점은 ‘ㆍ’자가 포함된 중성자들의 원래의 원점 형태가 단선(短線)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2) 고판본(古版本)은 간행 연대 미상의 목판본으로서 서울대 중앙도서관 규장각 도서(奎章閣圖書)에 권 56한 책(柵)이 없는 한 종류와 권 6의 일부가 소실(燒失)되다가 남은 다른 한 종류의 두 질이 있으나, 다 완본이 아니다. 이기문은 만력(萬曆) 이전의 목판본으로 추측하고 있다. 판광이 세로 25.4cm, 가로 17.8cm이다. 소실된 부분뿐만 아니라 10권 전체를 통하여 한 면의 반 또는 많은 행이 흰 공백으로 되어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적지 않은 훼손 때문에 영인에 있어 이 판본이 선택되지 못했던 것이라 보인다.
제1권 원문 1a
제1권 원문1b
‘서울대 규장각’의 ‘전자정보’에서 ‘용비어천가’
『용가』의 권 6은 41장~49장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권 6의 일부가 소실되다가 남은 판본 중 42, 46, 48장은 극히 일부분의 내용만 볼 수 있고, 49장은 완전히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판본은 국문가사만 본다면 몇 개 장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을 볼 수 있으므로 거의 완본이나 다름없이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고판본은 세종대 간행본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정음 자체 등 모든 점이 가람본과 흡사하나 무엇보다도 이 고판본은 판광에 있어 가람본과 차이를 보여준다. 이 고판본은 소실된 부분 이외에 판본의 훼손 때문에 공백이 적지 않은데, 이런 공백은 초간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또한 이 판본은 방점이 있어야 할 부분에 방점이 없는 예가 보인다. 이런 경우 방점이 있어야 할 자리 바로 옆의 종선(縱線)이 또한 끊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판본의 훼손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훼손도 초간본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고판본은 어느 후대의 복간본(復刊本)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복각본은 초간을 모방하여 그대로 다시 새긴 것이므로 초간본과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간본과 다른 점으로서 복각시의 오각(誤刻)과 고의적 변개(變改)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복간본에 있어서는 판목(板木)의 자연적인 훼손이나 마손(磨損)에 의한 차이를 생각할 수 있다. 지질(紙質)은 매우 얇고 거칠며 전지(全紙)가 아닌 상하반지(上下半紙) 이기문(1962:4)은 “고판본의 지질이 『향악구급방(鄕樂救急方)』 권1과 같으며, 이는 이 책의 복간(復刊) 연대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붙인 종이가 대부분이다. 또 이 판본은 서문과 발문에 123장이라고 적혀 있고, 제 100장 이하의 장차 표시 숫자에 중복이나 혼란이 있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제 107장이 중복되었고 108장 다음에는 제 110장이어서 109장이 빠져 있으며 110장 도 중복되어 나온다. 제 120장까지 차례대로 나오다가 제 122장은 없고 바로 123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 고판본은 가람본을 제외하면 초판본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판본으로 확인되고 있다.
고려대 도서관 만송문고(晩松文庫)에도 같은 계통으로 생각되는 4권(1278)2책으로 구성된 판이 있다.
3) 실록본(實錄本)은 『세종실록』악지(世宗實錄 樂志)에 들어 있는 것인데, 국문가사만 수사(手寫)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에는 『용가』극문가사 제125장이 ① 권140 致和平譜上, ② 권141 致和平譜中, ③ 권 142 致和平譜下上, 권143 致和平譜下中, 권144 致和平譜下下, ④ 권145 醉豊亨上, 권146 醉豊亨下에 4차례나 되풀이되어 나오면 오사(誤寫)도 가끔 있다.
4) 만력본(萬曆本)은 임진왜란 뒤의 고전 복간 사업의 하나로 만력 40년(광해군 4년, 1612)에 복각한 것으로 서울대 중앙도서관 규장각도서에 태백산사고본(太白山史庫本)과 오대산사고본(五臺山史庫本)의 두 완질이 있다. 이 만력본은 복각본인데, 고판본에서 공백인 부분이 모두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관본 외에 또 다른 판본(초간본)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특히 고판본에서 누락되었던 방점이 만력본에는 찍혀 있는 예가 많이 있다. 원간본의 복각으로, 원래의 한글자체(석보상절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등 비교적 원간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15세기와 17세기의 언어적 차이에 따른 오각 및 개각이 적지 않다.
5) 순치본(順治本)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뒤인 효종 10년(순치 16년, 1669)에 간행된 복각본이다. 목판본으로 서울대 중앙도서관 규장각 도서에 10권 5책으로 된 내사 이유공본(內賜 李惟恭本)과 10권 10책으로 된 두 완질이 있다, 판광은 세로 26.2cm, 가로 18.5cm이다. 만력본의 오각(誤刻)이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아마 만력본을 대본(臺本)으로 간행한 것이라 여겨진다. 한편 순치본은 그 자체(字體)의 오각(誤刻)과 고의적으로 여겨지는 개각(改刻)이 있어서 『용가』초간본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이기문(1962:6~7)은 “이런 개각은 때로는 언어사적으로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지명 표기의 몇 예를 들면 고판본과 만력본에서 ‘回叱家 횟갸(1:8)’이던 것이 순치본에서는 ‘횟가’로, ‘이개’로, ‘排至 지(6:39)’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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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5.01
  • 저작시기200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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