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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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냉소주의자들에게, 미란다는 패션에 대한 무관심을 인정받기 원한다면 패션을 향한 열정도 그만큼 인정해야 옳다고 일갈한다. 한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좌지우지하고 전 세계 패션업계를 말 한마디로 뒤흔드는 여왕으로서, 옷 한 벌과 가방 하나, 신발 한 켤레에 쏟는 패션 디자이너의 열정을 이해하는 소수자로서, 미란다의 자부심은 당당하다.
그러나 너무 심각해지지 말 것.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메릴 스트립의 호연과 수정된 각본 덕분에 중층적 의미를 띠기는 했지만 오락영화로서의 본래 의무를 잊는 법이 없다. 소설에 등장했던 앤드리아의 친구와 남자친구, 느끼하게 접근하는 새 남자, 패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딸을 지지하는 엄마와 아빠 등은 아예 사라지거나 주인공의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만큼 줄어들었다. 중심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두 여자다. 두 사람이 펼치는 화려한 캣워크가 끝나고 봄 패션쇼가 열리는 파리로 무대를 옮겨 이야기가 절정에 이를 때 즈음, 영화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의 갈등을 짧고 강렬하게 끝낸 다음 각각의 길을 행복하게 걷는 결말로 도약한다. ‘Fuck you’라고 외치며 미란다를 떠나버리는 소설의 결말이 훨씬 화끈하기는 하지만 앤드리아를 결단하게 만든 이유가 소설에서는 친구의 사고와 가족의 염려 때문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온전히 자신의 뜻으로 결정내린 영화의 결말은 손쉬울망정 덜 보수적이다. 스포일러를 누설할 수는 없지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책의 독자와 영화의 관객 모두를 그럭저럭 만족시킬 만한 형태로 끝을 맺는다. 마돈나, 앨라니스 모리셋, K.T.턴스텔 등 음악의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약하는 멋진 언니들의 노래가 여기 덧입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락영화라면 이들처럼
패션으로 시작해서 패션으로 끝나는 영화지만, 그 외에도 공감의 여지는 넉넉하다. 앤드리아처럼 출간도 안 된 <해리 포터>의 새 책을 보스의 딸이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3시간 안에 구해 와야 하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은 여자, 특히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새파란 20대들은 학교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커피를 준비하고 복사를 하고 전화를 받기 위해서 대학 공부를 마친 것은 아니건만 그런 일들을 해야 한다. 가족 같고 친구 같은 상사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를 하녀 취급하는 회사는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월급이라고는 몇 푼이나 되던가. 그런데도 손쉽게 때려치울 수 없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드리아는 1년을 버텼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보다 긴 시간을 견뎌야 하고 그 후에도 마땅히 옮길 곳을 찾기 어렵다. "패션잡지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첫 직장에서는, 지원자가 많고 선택되는 자는 적은 유명 회사일수록 더욱, 힘든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는 것은, 작가가 겪었던 '보그'에서의 경험이 소설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를 묻는 독자들에게 내놓은 로렌 와이즈버그의 변명이었지만 일정 부분은 사실이기도 하다.
화려한 하이패션, 뜻대로 되지 않는 20대 시절, 사악한 보스의 뒷담화와 패션계의 비하인드 스토리. 이쯤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재미있고 가벼운 이야기, 휴가 갈 때 집어 들고 갈 만한 오락거리"라고 말하는 작가 자신의 말과 연관 짓자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또한 위대한 예술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고 재치 있고 화려하며, 평생 한 벌쯤은 갖고 싶었던 옷들을 초 단위로 좌라락 펼쳐 보인다. 소설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렸던 원작의 수많은 독자라면, ‘머스트 해브 아이템’ 따위에 연연하지는 않아도 패션의 재미를 아는 이라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기꺼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패션영화는 그리 자주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의 컬렉션을 담았던 <언지프>(1995)나 로버트 알트만의 <패션쇼>(1994)가 나왔던 것이 벌써 10여 년 전. 프라다를 비롯한 명품 행진이 아름다운 배우들에게 걸쳐지는 기쁨을 이번이 아니라면 또 언제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TIP | 안나 윈투어는 누구?
1년에 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여자. 2만 5천 달러 상당의 옷을 비롯한 추가 혜택과 운전사가 딸린 차를 지급받으며 유럽출장 시에는 파리 리츠호텔의 스위트룸에 머물곤 한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미국판 ‘보그’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안나 윈투어의 영향력은 이런 수치보다 훨씬 크다. 런던 출신인 그녀는 1980년대 영국판 ‘보그’와 ‘하우스 앤 가든’의 에디터로 일하며, 각 잡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판매 부수를 급격히 신장시켰던 전력을 인정받아 미국으로 건너왔다. 패션업계 바깥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얼음 여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패션계 내부에서는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패션쇼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녀의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세계 4대 컬렉션도 일정을 바꾼다. 윈투어는 존 갈리아노와 마이클 코어스 등의 디자이너를 뒷받침했고 작가와 사진가 등 숱한 예술가들을 ‘보그’를 통해 발굴해왔다. 라이프스타일 중심이었던 과거의 ‘보그’를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키워낸 것도 윈투어의 공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전부터 윈투어는 신문 연예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얼굴이었지만, 소설 출간과 영화 개봉 이후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녀의 이름값을 이용해 책 판매를 노렸다는 비난이 작가에게 쏟아질 만큼 윈투어는 어느 배우 못지않은 유명인의 위치에 올라 있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묘사에 대해 윈투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다. 공식적으로 그녀는 이 책에 대해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영화 개봉 전, 안나 윈투어는 프라다를 입고 첫 시사회에 참석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뱅 스타일의 머리모양도 여전했다. 메릴 스트립은 자신의 캐릭터가 윈투어를 모델로 삼았다는 것을 부인했으며, 극장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다고 말했다. 현 남자친구와 딸을 데리고 극장을 찾은 안나 윈투어는 스트립과 함께 레드 카펫 위에서 포즈를 취해 달라는 제안을 거부했다. 윈투어의 대변인은 그녀가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봤다"고 밝혔다.

키워드

악마,   프라다,   명화
  • 가격2,000
  • 페이지수19페이지
  • 등록일2008.05.17
  • 저작시기200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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