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종교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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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의 종교신앙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내려가 밀교수행과 경전 번역을 한 역경사 마르파에 의해 창립되어 미라래파에 의해 널리 퍼진 밀교 종파이다. ‘하얀 옷의 거사’라는 이름의 이 2대조사 미라래파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십만송(十萬頌)》이란 유명한 시집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로 역시 신통력이 뛰어난 초능력자로서 알려지고 있는데, 전기에 의하면 그의 생애는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점철된 고행자로서 그려지고 있다. 카일라스 산, 즉 캉린포체 산의 연고권을 놓고 뵌포교 사제와 겨룬 카일라스 산에서의 한판 진검승부는 민간에 회자되는 유명한 설화이다.
이 종파는 초기에는 고행 위주의 두타행에 중점을 두었고 장발에 흰옷을 입었기에 백교(白敎)라고도 한다. 현재는 이 종파도 역시 게룩파와 비슷한 색깔의 가사를 걸치고 삭발을 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역시 부인과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으며 밀교의 전통대로 철저한 사도상승(師徒相承)을 전통으로 삼는다. 이 종파는 밀라래파의 제자 감보파에 의해 이론적인 체계를 갖춘 후에 ‘샹파와 다포’로 갈라졌는데, 후에 ‘다포파’는 다시 ‘4줄기 8갈래’로 분파되었다. 그 중에 ‘칼마파’와 ‘파주파’가 출현하였다. 후에 14세기에 이르러 ‘파주파’는 원나라의 괴뢰정권이었던 샤카 왕조를 무력으로 뒤집고는 파주 왕조를 세워 제정일치의 법왕제도를 만들어 전 티베트 고원을 2백 년 동안 다스렸다. 이는 근대의 달라이 라마 제도와 같은 법왕제도의 효시였다.12세기에 ‘칼마파’는 칼마두숨켄파에 의해 ‘다포파’에서 분파되어 나왔다. 그가 바로 제1대 칼마파 린포체로 추존된 인물이다. 그는 라싸 근교에 추푸 사원을 건립하여 수행하다가 열반에 즈음하여 환생을 명확히 예언하였는데 정말 그의 말대로 그의 영혼을 가진 전생자(轉生者)가 발견되어 제2대 추푸 사원의 법주로 모셔졌다. 바로 ‘튤쿠(Trulku)’, 즉 활불(活佛)제도의 시작이었다. 리빙 붓다(Living Budddha)의 효시였다. 이 제2대 칼마파는 원 세조 쿠비라이 칸에게 초빙되어 검은 모자를 하사받았기에 그 후로 ‘흑모파(黑帽派)’라고도 불리우게 되었다. 이 신비스러운 활불제도는 후에 ‘게룩파’에 의해 모방되어 달라이 라마·판첸 라마 그리고 레팅 린포체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칼마 카규파’는 법왕제와 활불제를 처음 확립한 종파이다.
현재 국내외에서 칼마파는 많은 분파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어서 게룩파 다음으로 중요한 종파이다. 특히 유럽에 많은 지부를 갖고 있어서 게룩파 못지않은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역사적 비중 때문에 얼마 전 추푸 사원을 탈출하여 중국의 감시망을 뚫고 한겨울에 히말라야를 넘어 망명한 제17대 칼마파 린포체는 비록 그가 15세에 지나지 않는 소년이지만 그의 행동거지 하나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의 망명이 받아들여지면 그는 인도 내의 또 다른 해외포교의 거점인 인도 동북부 시킴(Sikim)의 룸텍 사원에서 망명생활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로 11세기에는 ‘샤카파’가 등장한다.
내륙 깊숙한 샤카라는 지방에서 ‘곤’ 씨족에 의해 창건된 종파인데 문수·관음·금강을 의미하는 홍·백·흑색을 주된 문양색(紋樣色)으로 사용하기에 일명 화교(花敎)라고도 부른다. 13세기 원나라를 등에 업고 샤카 정권을 세워 설역고원을 통치하였다. 이 종파는 원나라의 황실을 움직여 ‘샤카파’가 원나라의 국교가 되게 하였으며 전 아시아로 그 세력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끼친 종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마치 중세의 요새같이 생긴 샤카 사원을 중심으로 남부에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데 역시 대처를 하고 있다. 특히 이 사원은 고색창연한 불교문화재를 많이 보존하고 있다.
네번째, 마지막으로 14세기에 ‘게룩파’가 부상한다.
토번제국의 마지막 왕인 랑다르마 암살사건 이후 티베트는 긴 암흑기에 들어갔는데 그 말기에 방글라데쉬 출신의 유명한 밀교승인 아티샤(Atisha)가 설역고원으로 넘어와 전법륜의 기치를 들어 티베트 불교의 후홍기(後弘期)시대를 열었다. 이 아티샤의 법을 이은 제자에 의해 ‘카담파’가 라싸 근교에서 세워졌는데, 이를 토대로 총카파가 기존의 종파들의 폐단을 개혁하고 계율을 정비하여 승려들의 독신을 의무화하여 비구승단을 만들며 티베트 불교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이를 처음에는 ‘신(新)카담파’라고 하다가 후에 ‘게룩파’로 이름을 바꿨다. 곧 티베트 불교사에서 밀교가 아닌 대승불교적인 현교(顯敎)가 출현한 것이었다. 청해성 시닝(西寧)의 타르 사원 근처에서 태어난 총카파는 현재 이 종파의 교조로 추앙되어 법당에 석가상과 나란히 앉아 있을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황색의 옷과 마치 로마병사의 투구 같은 노란 모자를 쓰기에 황교(黃敎) 또는 황모파(黃帽派)라고도 부른다.
이 게룩파는 후에 칼마파를 모방하여 달라이 라마 제도를 확립하여 정교를 양손에 쥐고 토번제국 멸망 후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국토를 통일하여 라싸의 포타라궁을 중심으로 5백 년 간 설역고원을 다스렸으며 밀교 일변도의 역대 티베트 불교를 현밀양교(顯密兩敎)의 형평성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중국에 의해 1950년 국토를 점령당한 뒤에 게룩파는 강력했던 통치권을 잃어버리고 법왕인 14대 달라이 라마는 1959년 무력항쟁의 실패 후에 인도로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 1966년부터의 ‘문화혁명’으로 모든 사원들은 거의 파괴되고 승려들은 환속당하였으나 1984년부터의 ‘햇빛정책’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사원들도 복구되기 시작하여 게룩파는 다시 어느 정도 소생하였다. 현재 티베트 제2의 도시인 타시룬포 사원의 법주인 제11대 판첸 라마를 중심으로 게룩파는 아직도 최대 종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얼마 전 칼마파의 망명으로 동요된 티베트 사회의 새 바람을 넣고자 새로 옹립되었다고 전하는 제7대 ‘레팅 린포체(현재 4세)도 이 파에 속한다.
달라이라마
라마교의 가장 대표적 종파인 겔루크파[黃帽派]의 수장(首長)인 법왕(法王)의 호칭.
1642년 이후 티베트 원수가 된 역대의 전생활불(轉生活佛)에 대한 속칭이다. 초대 원수를 달라이라마 5세라하고, 1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칭호를 붙인다. 이 칭호는 제3세로 꼽을 수 있는 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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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3페이지
  • 등록일2008.05.22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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