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기
(2) 조벽암의 시세계
(3) 이찬의 시세계
(4) 이찬과 조벽암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
(2) 조벽암의 시세계
(3) 이찬의 시세계
(4) 이찬과 조벽암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
본문내용
치지 않는 것이 없다. 특히나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들은 개인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벽암과 이찬, 두 시인 또한 그러하였을 것이다.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착실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그 작품 활동들은 두 시인이 살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과 동떨어져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 창작활동 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의 변화가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특히 이 두 시인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살았던 사람들이라 시대적 요인이 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문학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힘들었던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두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요인을 고려하면서 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이들은 월북시인이라서 자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시세계를 다룬 2편의 논문을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아보았다.
(2)조벽암의 시세계
-조벽암의 생애
조벽암은 1908년 5월 19일 충북 진천군 벽암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잡안은 벽암리에서 열 두 고을을 장악하며 살았다는 지주이자 그의 증조부가 청주부사와 의정부 좌찬성을 조부가 통훈대부 행인동부사 겸 대구진영병마 동첨절제사를 지낸 선비의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4형제 중 셋째로서 통정대부 육군부관을 지낸 무관이었고 잘 알려진 대로 포석 조명희는 그의 숙부였다. 아버지 형제 중 유일하게 신교육을 받은 포석 삼촌은 조카인 벽암의 교육문제, 생활문제로 형들과 자주 대립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조벽암의 문학성은 이러한 삼촌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성 제2 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대학 생활 중에 <문학 타임즈>를 간행하였다. 1931년 조선일보에 「건식의 길」을 조선일보 지상에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구인회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시와 소설 장르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조벽암은 해방이 되고 나서 북으로 건너가서 활동하게 되는데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과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1939년 「요동들의 새벽」이후 6년만에 「해방기념시집」등에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시집으로는 『향수』,『지열』 등 두권이 있다.
-조벽암의 시들
조벽암이 살았던 시대는 앞서 언급했다 시피 일제 식민지 시대이다. 일제 식민지라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던 조벽암은 현실과 이상에 대해서 많은 고민들을 하였을 것이다. 특히 그의 가정환경은 대지주에서 소지주로, 소지주에서 빈농으로 점점 몰락해가는 상황이였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들은 가히 좋지 못했다. 처해진 환경들 속에서 조벽암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찰들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그의 시 속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오- 내가 차라리 공장의 아들였던들
나는 벌써 변또기고 기름옷 입고
황혼의 저자를 걸었으리라
이
조벽암과 이찬, 두 시인 또한 그러하였을 것이다.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착실하게 작품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그 작품 활동들은 두 시인이 살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과 동떨어져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 창작활동 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의 변화가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특히 이 두 시인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살았던 사람들이라 시대적 요인이 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문학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힘들었던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두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요인을 고려하면서 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이들은 월북시인이라서 자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시세계를 다룬 2편의 논문을 중심으로 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아보았다.
(2)조벽암의 시세계
-조벽암의 생애
조벽암은 1908년 5월 19일 충북 진천군 벽암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잡안은 벽암리에서 열 두 고을을 장악하며 살았다는 지주이자 그의 증조부가 청주부사와 의정부 좌찬성을 조부가 통훈대부 행인동부사 겸 대구진영병마 동첨절제사를 지낸 선비의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4형제 중 셋째로서 통정대부 육군부관을 지낸 무관이었고 잘 알려진 대로 포석 조명희는 그의 숙부였다. 아버지 형제 중 유일하게 신교육을 받은 포석 삼촌은 조카인 벽암의 교육문제, 생활문제로 형들과 자주 대립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조벽암의 문학성은 이러한 삼촌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성 제2 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대학 생활 중에 <문학 타임즈>를 간행하였다. 1931년 조선일보에 「건식의 길」을 조선일보 지상에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구인회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시와 소설 장르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조벽암은 해방이 되고 나서 북으로 건너가서 활동하게 되는데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과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1939년 「요동들의 새벽」이후 6년만에 「해방기념시집」등에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시집으로는 『향수』,『지열』 등 두권이 있다.
-조벽암의 시들
조벽암이 살았던 시대는 앞서 언급했다 시피 일제 식민지 시대이다. 일제 식민지라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던 조벽암은 현실과 이상에 대해서 많은 고민들을 하였을 것이다. 특히 그의 가정환경은 대지주에서 소지주로, 소지주에서 빈농으로 점점 몰락해가는 상황이였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들은 가히 좋지 못했다. 처해진 환경들 속에서 조벽암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찰들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그의 시 속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오- 내가 차라리 공장의 아들였던들
나는 벌써 변또기고 기름옷 입고
황혼의 저자를 걸었으리라
이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