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영향을 미친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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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체육계 영향을 미친인물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근대 유럽 전기의 체육
-개인적 인문주의
[베르게리우스, 비토리노]
-사회적 인문주의
[토마스 엘리엇, 로저 애스컴]
-종교 개혁기
[츠빙글리, 루터, 칼뱅]

-2. 근대 유럽 중기의 체육
-언어적 실학주의
[밀턴, 라블레, 비베스]
-사회적 실학주의
[몽테뉴]

-3. 근대 유럽 후기의 체육
-자연주의
[루소, 바제도, 구츠무츠, 풀러]
-신인본주의
[페스탈로치, 프뢰벨]
-국가주의
1.독일
[얀, 아돌스 스피이스, 로드쉬타인]
2.스웨덴
[링]
3.덴마크
[나크테갈]
4.영국
[웰링턴, 맥클라렌, 토마스 아놀드]
5.프랑스
[쿠베르텡, 아모로스, 클리아스]

본문내용

지 않도록 운동훈련을 실시하여야 한다.” 면서 그 방책을 강구하였다. 그 중에서 “음악은 마음의 고뇌·우울을 없애주며, 체조는 신체의 탄력성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칼뱅 [1509.7.10-1564.5.27]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방 누아용 출생. 아버지는 지방 귀족의 비서 ·경리 등으로 일한 소시민이었다. 1523~1528년 파리에서 신학을, 그 후 오를레앙 부르주의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다. 1532년 세네카의 《관용에 대하여》의 주해를 발표하여 인문주의자로서의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1533년 에라스뮈스와 루터를 인용한 이단적 강연의 초고를 썼다는 혐의를 받고, 은신해 지내면서 교회를 초기 사도시대의 순수한 모습으로 복귀시킬 것을 다짐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다.
칼뱅은 ‘성서영감설’을 주장하였다. 성서는 절대로 신성한 것이므로, 일자일획일지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칼뱅은 그리스도에 의한 구제를 신의 부르심, 곧 소명이라 해석하고, 이 부르심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신에 의하여 예정되어 있다 하였다. 이 예정설은 신의 의사의 절대성을 주장하면서 역사와 인간의 운명은 신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이라는 확신인데, 칼뱅주의의 기초로 되어 있다.
칼뱅은 인간의 도덕적 훈령의 완수에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오락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도 놀이에 대한 본능적 요구는 억압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약간의 레크리에이션을 장려하였다.
2. 근대유럽 중기의 체육
밀턴 [1608.12.9-1674.11.8]
런던 출생. 대서사시《실낙원》의 저자로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으로 평가된다. 신흥 중산계급인 공증인·금융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로마 가톨릭교도로 자영 농민이었는데, 아버지가 신교로 개종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는 절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턴은 작곡에 재능이 있던 아버지로부터 청교도적인 강렬한 기질과 음악 애호의 소질을 이어받고 문예부흥적인 교양을 몸에 익혔다. 7세에 성 바울 학원에 입학하여 라틴어·그리스어·헤브라이어를 배웠고, 청교도 신학자로부터 신학 지도를 받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문주의와 청교도주의가 밀턴의 생애와 사상의 틀이 되었던 것이다.
밀턴은 “자제의 일상과업은 규칙적인 학습과 신체연습과 식사로 나눌 수 있으며, 신체연습으로는 식사 전 1시간 반의 휴양시간에 신체운동을 하고, 그 후는 적당한 휴양을 하는 것이 좋다.” “운동은 검술, 씨름, 승마, 기타무기를 가지고 행하는 운동이 좋다. 이렇게 하면 건강을 보호하고, 민첩성을 기르며, 불굴의 정신을 기르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함 으로써 그 당시 교육방법에 대하여 비판하고, 그 개선책을 논하였다.
또한 그는 크롬웰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정관이 전투기술이나 전투행동을 위한 군사훈련으로 우리들의 신체를 강화하는 것과 같이 민중의 스포츠와 축제의 오락을 관리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면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유익한 일이다”라고 주장하고, “체육은 젊음을 유지하고, 성장과 민활함 그리고 강력함을 주며, 호흡을 잘 조절하며, 크고 높게 성장시켜 소박하고도 영웅적 굳센 기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나이다운 용기를 용솟음치게 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밀턴이 논한 신체적 레크리에이션은 군사적 목적에 한전되어 있어서 아테네적인 정신보다는 스파르타적인 정신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한편 그는 “점심을 먹은 후 1시간 반은 운동과 휴양이 주어져야 한다.”고 권고하였으며 소년들은 저녁식사 후 2시간 동안 활발한 군사훈련을 행하여 매일 충분한 시간을 체육에 할당하였다.
라블레 [1483-1553.4.9]
투렌주 시농 교외에서 변호사의 막내아들로 출생. 프랑스 르네상스의 최대 걸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의 작가로서, 그 당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던 운동과 스포츠를 총망라하였다. 그는 몽테뉴와 함께 16세기의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며,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에스파냐의 세르반테스에 비견된다. 또한 그 영향은 몰리에르를 비롯하여 발자크, 플로베르 등에 이른다. 청년기를 프란체스코회와 베네딕트회 수도사로서 푸아투 지방의 수도원에서 보냈다. 그 지방 출신의 시인과 법률가들이 모이는 문예 살롱에 드나들면서 이교의 고대문화에 큰 감동을 받았고, 혼자서 그리스어를 배워 시를 습작하였다.
라블레는 “지식과 더불어 감각을 훈련하고, 정신과 함께 신체도 배양하여 인성과 종교적 정신을 발달시켜 학생으로 하여금 사회생황에서 그의 지위를 획득하는 능력을 인간으로서 갖추는 적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는 형식적·권위적 체육방법은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가볍고 비형식적인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체육의 방법이라고 하고, 학생들이 직접 산지식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을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중요시하였다.
비베스 [1492-1540]
라틴어 이름은 요하네스 루도비쿠스. D.에라스뮈스의 친구이며 중세의 스콜라적 방법에 반대하여 경험적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다. 1523년 헨리 8세의 초청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왕녀 마리아의 교사 및 옥스퍼드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5년 후 왕과 왕비 캐서린의 이혼에 반대하여 왕의 총애를 잃고 1529년 이래 브뤼주에 은퇴하였다. 그는 영혼의 본질이 아닌 그 기능을 연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에[학문론]이 있다.
비베스에 의하면, 체육의 목적은 교육의 주요목표로서, 종교적 신앙심을 상화하는 데 있다.
체육은 마음이 지켜 있을 때 힘을 북돋아주는 재생의 역할을 하며, 지력을 유지·강화시켜 생생한 신체를 발달시키는 도구로 생각했다. 그러나 과도한 체육을 강조하는 데는 반대하였다. 비베스는 다른 언어적 실학주의자와 같이 포괄적 교육프로그램을 주장하고, 고전시대에 유행하였던 많은 신체운동을 포함시켰다.
몽테뉴[1533.2.28-1592.9.13]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성 출생. 프랑스의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자이며 《수상록》의 저자이다. 대대로 보르도에서 살았던 부유한 상인 가문으로 에이

키워드

체육계,   인물,   근대유럽체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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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6.16
  • 저작시기2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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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69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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