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차례 >
Ⅰ. 서지사항
Ⅱ. 저자의 일생
Ⅲ. 구성과 내용
Ⅳ. 역사적 의의
Ⅴ. 본인느낌
Ⅵ. 관련연구논저목록
Ⅰ. 서지사항
Ⅱ. 저자의 일생
Ⅲ. 구성과 내용
Ⅳ. 역사적 의의
Ⅴ. 본인느낌
Ⅵ. 관련연구논저목록
본문내용
더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원전을 직접 접할 수 없을뿐더러 원전을 연구한 논문과 책들은 하나같이 공식적인 말투와 딱딱한 표현으로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과 느낌이 잘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강항의 『간양록』은 대화체로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에 지었던 한시를 함께 첨부하여 마치 소설을 읽듯이 강항에 내 감정이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포로로 살아서 끌려온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나라를 위해 상소를 올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특히 정치가에게 교훈이 될 만한 모습이었다. 정치가 관료들이라 함은 자신의 치적을 높여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하는 권력욕에 빠져서 민생과 나라를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을 겪으면서도 당시 편협하고 고지식한 조선왕조의 집권층은 대변혁의 시련을 겪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구조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사회에도 정치가와 관료들의 이러한 행적은 매한가지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서울 시장시절 실시한 청개천 복원사업은 그 화려한 모습 뒤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나라와 민생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강항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상소를 올리는 모습은 진정한 공직자의 모습을 본받아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으면 한다.
Ⅵ. 관련연구논저목록
- 강재언, 「강호유학과 강항」,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일본학, Vol.13), 1994.
- 김기빈,「호남의 학문전통과 한문학 : 임란시 피부 문인의 체험적 문학의 고찰 -『간양 록』과 『월봉해상록』 을 중심으로 -」, (한국한문학연구, Vol.21), 1998.
- 김동준, 「수은 강항의 삶과 시」,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작가연구, Vol.8), 2003.
- 김명식, 「간양록 연구:전쟁문학적 관점에서」, 1983.
- 김태준, 『(강항의)간양록』, 다락원, 1985.
- 노기욱, 「임난의병장 노인의 일·중편역과 대왜부수책」,한국인물사연구소, (한국인물사연
- 박균섭, 「강항이 일본 주자학에 끼친 영향」,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Vol.37), 1996.
구 제2호), 2004.
- 박균섭, 「간양록에 나타난 일본교육문화의 단편」,청주교육대학교, (논문집 28), 1991.
- 변동명, 「강항의 필사본 『간양록』고찰 -영광 내산서원 소장본을 중심으로-」, 한림대 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 Vol.12), 1996.
- 이동영, 「강항의 일본에서 유학전수와 그의 시세계」,한국국어교육학회, ( 새국어교육, Vol.54), 1997.
- 이동희 , 「한국유학사상 : 수은 강항의 애국정신과 일본에의 주자학 전파」, 한국유교학 회, (유교사상연구, Vol.1), 1999.
- 이채연, 「간양록의 실기문학적 특징」, 한국문학회, (한국문학논총 제13집), 1992.
- 이혜순, 「수은) 강항의 시적 상유와 그 의미 - 귀환 이후의 시작을 중심으로」, 한국한 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Vol.27), 2001.
- 임치균, 「『간양록』 연구 :사실 제시와 체험의 형상화」,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신문화 연구 83), 2001.
- 장미경, 「임란 피로자의 포로체험 한시연구 -정희득을 중심으로-」, (한문교육연구, Vol.20), 2003.
- 홍종석, 「임진사연구의 유일한 간양록 : 서가순례」,대한교육위원회, (새교육 23), 1971.
그리고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포로로 살아서 끌려온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나라를 위해 상소를 올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특히 정치가에게 교훈이 될 만한 모습이었다. 정치가 관료들이라 함은 자신의 치적을 높여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하는 권력욕에 빠져서 민생과 나라를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을 겪으면서도 당시 편협하고 고지식한 조선왕조의 집권층은 대변혁의 시련을 겪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구조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사회에도 정치가와 관료들의 이러한 행적은 매한가지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서울 시장시절 실시한 청개천 복원사업은 그 화려한 모습 뒤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나라와 민생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강항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상소를 올리는 모습은 진정한 공직자의 모습을 본받아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으면 한다.
Ⅵ. 관련연구논저목록
- 강재언, 「강호유학과 강항」,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일본학, Vol.13), 1994.
- 김기빈,「호남의 학문전통과 한문학 : 임란시 피부 문인의 체험적 문학의 고찰 -『간양 록』과 『월봉해상록』 을 중심으로 -」, (한국한문학연구, Vol.21), 1998.
- 김동준, 「수은 강항의 삶과 시」,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작가연구, Vol.8), 2003.
- 김명식, 「간양록 연구:전쟁문학적 관점에서」, 1983.
- 김태준, 『(강항의)간양록』, 다락원, 1985.
- 노기욱, 「임난의병장 노인의 일·중편역과 대왜부수책」,한국인물사연구소, (한국인물사연
- 박균섭, 「강항이 일본 주자학에 끼친 영향」,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Vol.37), 1996.
구 제2호), 2004.
- 박균섭, 「간양록에 나타난 일본교육문화의 단편」,청주교육대학교, (논문집 28), 1991.
- 변동명, 「강항의 필사본 『간양록』고찰 -영광 내산서원 소장본을 중심으로-」, 한림대 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 Vol.12), 1996.
- 이동영, 「강항의 일본에서 유학전수와 그의 시세계」,한국국어교육학회, ( 새국어교육, Vol.54), 1997.
- 이동희 , 「한국유학사상 : 수은 강항의 애국정신과 일본에의 주자학 전파」, 한국유교학 회, (유교사상연구, Vol.1), 1999.
- 이채연, 「간양록의 실기문학적 특징」, 한국문학회, (한국문학논총 제13집), 1992.
- 이혜순, 「수은) 강항의 시적 상유와 그 의미 - 귀환 이후의 시작을 중심으로」, 한국한 문학회,(한국한문학연구, Vol.27), 2001.
- 임치균, 「『간양록』 연구 :사실 제시와 체험의 형상화」,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신문화 연구 83), 2001.
- 장미경, 「임란 피로자의 포로체험 한시연구 -정희득을 중심으로-」, (한문교육연구, Vol.20), 2003.
- 홍종석, 「임진사연구의 유일한 간양록 : 서가순례」,대한교육위원회, (새교육 23),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