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2. 현대인의 허무와 고독
3. 작품 내용분석
4. 혼란과 초현실 속 인간의 믿음과 욕망
2. 현대인의 허무와 고독
3. 작품 내용분석
4. 혼란과 초현실 속 인간의 믿음과 욕망
본문내용
로써 뒤섞여 있기도 하다. 그는 초현실을 바라보자고 말하는 것이 아닌 듯 싶다. 토마스가 공원에 다시 갔을 때 그는 사라진 시체를 보며 여전히 의아해한다. 그는 아직 눈에 보이는 것에 사로잡힌 상태이다.
그가 봐야한다는 욕망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에 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첫 씬을 휘저었던 10대들 무리가 등장한다. 그는 그들이 벌이는 판토마임으로 이뤄지는 테니스 경기를 구경한다. 여기서 10대로 파악한다면 여전히 깨어있는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 시대에 거는 메시지정도로 머물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려면 여기서 그들에게서 10대라는 가면을 벗기고 봐야한다. 초현실의 공간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가시적인 것에 사로잡힌 토마스가 그들과 통할 수 있을까? 여기서 초현실의 공간은 바로 가시적인 것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를 획득한다. 현실과 다른 초월의 의미가 아닌 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들이 토마스가 있던 공간 외에 있는 다른 공간일 뿐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토마스는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한다. 영국의 피폐한 초상의 가면을 쓴 그가 어렵지 않게 초현실의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마지막 토마스가 카메라를 들고 간다는 것은 바로 카메라가 가시적인 것에 대한 집착의 산물을 버리고 자신의 주체적 삶을 위한 도구로써 그 의미를 탈바꿈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를 들고 간다는 것은 주체성에 대해 확신 내지는 자신을 가지고 간다고 볼 수 있다. 욕망을 확대한다. 그러나 너무 크게 된 욕망에는 자신이 전혀 보지 못한 세상이 있었다. 눈이 지배되지 않는 세상. 그것을 믿으려면 우선 자신을 믿는 일에서부터 그 바탕이 이뤄지는 것이다. '없다'는 것을 자신의 프리즘을 통해 그 존재를 산발한다는 것. 결국 확대되는 욕망이 커질수록 자신에 대한 믿음은 커져야만 한다. 믿음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것은 보지 않는다. 문제는 보이는 모든 것은 이미 색이 바랬다는 것이다. 색이 바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유일히 남은 것은 결국 보이는 것에 대한 극대의 호기심이다.
더욱 확대시켜 보길 바라며 그 가운데 필요조건은 믿음이다. 늘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다시 크게 들여다보는 행위가 결국은 희망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어디있다.' 라고 외쳐대는 것은 어쩌면 꿈꾸는 자(?)만의 몫인지도 모른다.
그가 봐야한다는 욕망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에 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첫 씬을 휘저었던 10대들 무리가 등장한다. 그는 그들이 벌이는 판토마임으로 이뤄지는 테니스 경기를 구경한다. 여기서 10대로 파악한다면 여전히 깨어있는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 시대에 거는 메시지정도로 머물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좀 더 넓게 보려면 여기서 그들에게서 10대라는 가면을 벗기고 봐야한다. 초현실의 공간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가시적인 것에 사로잡힌 토마스가 그들과 통할 수 있을까? 여기서 초현실의 공간은 바로 가시적인 것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를 획득한다. 현실과 다른 초월의 의미가 아닌 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들이 토마스가 있던 공간 외에 있는 다른 공간일 뿐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토마스는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한다. 영국의 피폐한 초상의 가면을 쓴 그가 어렵지 않게 초현실의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마지막 토마스가 카메라를 들고 간다는 것은 바로 카메라가 가시적인 것에 대한 집착의 산물을 버리고 자신의 주체적 삶을 위한 도구로써 그 의미를 탈바꿈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를 들고 간다는 것은 주체성에 대해 확신 내지는 자신을 가지고 간다고 볼 수 있다. 욕망을 확대한다. 그러나 너무 크게 된 욕망에는 자신이 전혀 보지 못한 세상이 있었다. 눈이 지배되지 않는 세상. 그것을 믿으려면 우선 자신을 믿는 일에서부터 그 바탕이 이뤄지는 것이다. '없다'는 것을 자신의 프리즘을 통해 그 존재를 산발한다는 것. 결국 확대되는 욕망이 커질수록 자신에 대한 믿음은 커져야만 한다. 믿음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것은 보지 않는다. 문제는 보이는 모든 것은 이미 색이 바랬다는 것이다. 색이 바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유일히 남은 것은 결국 보이는 것에 대한 극대의 호기심이다.
더욱 확대시켜 보길 바라며 그 가운데 필요조건은 믿음이다. 늘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다시 크게 들여다보는 행위가 결국은 희망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어디있다.' 라고 외쳐대는 것은 어쩌면 꿈꾸는 자(?)만의 몫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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