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뿐 만 아니라, 지형을 이용하여 단차를 두고 뒤로 갈수록 높은 자리에 위치시킴으로써 그 위계를 표현 하고있다.
대광명전은 비로자나불처을 봉안하는 곳이다 비로자나는 광명편조라는 뜻이므로 그 집을 대광명전이라 했고, 부처님의 이름을 따서 비로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모든 부처의 본위요, 근본이 되므로 진리의 몸이라는 뜻에서 법신불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비로자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달리 부르는 말에 지나지 않으니, 대광명전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집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중로전의 본전으로서의 위격을 갖추도록 설RP 되었을 것이다.
통도사 약지에 따르면 이 건물은 초창은 통도사 창건당시에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조선 영조 원년(1725)에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현재의 건물은 이 시기에 모습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건물의 기단은 통도사내 여타의 건물과 달리 잡석쌓기로 되어 있는데. 이는 중수과정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여진다. 기타의 건축요소들은 18세기초의 건축적 수법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건물은 평상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를 갖는다. 다만 정면이든 측면이든 중앙어간만은 그 기둥 간격이 3.7M 정도로서 좌우 협간의 기둥 간격인 2.4M정도보다 훨씬 넓다. 내부에는 뒤쪽으로 고주 한 줄을 세워 후불벽을 만들고 그곳에 불단을 설치하였으며, 앞쪽으로 기둥을 세우지 않은 것은 예불공간을 넓게 쓰려는 기능상의 요구를 만족시킨 것인다. 이에 따라 건물구조도 1개의 높은 내부 기둥과 7개의 도리를 구성된 1고주 7량의 구조틀을 만들었다.
이 건물의 외관은 비교적 안정되고 비례감을 갖춘 짜임새를 보여준다. 세부수법들은 하로전의 건물들과 큰 차이가 없으나 장중하고 화려하다는 점에서는 비길 바가 없다. 기둥머리에서 뺄목이 없이 평방으로 가로지르고 포작을 설치한 것은 동일하나, 정면 중앙 어간의 양기둥머리에 뺄목을 사실적인 용머리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한 것은 고급스러움을 더하여 준다. 공포의 쇠서에도 작은 용두와 봉두가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빗꽃살문의 창호 또한 석가모니의 부처가 계시는 집으로서의 품격을 효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초각의 예술적 솜씨는 포작의 모습에서 여실히 보여진다. 다포계 팔작집인 이 건물은 포작의 형식으로 보면 3출목으로서 하로전의 영산적과 같으나, 쇠서에 봉두나 연꽃을 조각한 솜씨는 정교하도 화려함에 있어 탁월하다, 포작의 장식성은 내부에서 더욱 화려하다. 쇠서마다 연꽃과 연봉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4출목으로 올렸고, 그 위에 층급화된 소란반자를 가구하였다. 연꽃이 만발하고 하늘에는 용과 봉황이 날아다니는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해냄으로써 목조가구의 표현가능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용화전
내부공간의 미륵의세계
용화전은 외부보다도 내부가 더 회려했던것 같다. 내부의 미륵불 좌상을 봉안한 이 전의 특징은 안쪽 공포를 5출목 형식으로 천장 높이까지 짜여져 11포의 화려한 공포구성하고 있던것이 가장 기억남는듯하다.
용화전은 대광명전, 관음전과 함게 통도사의 중로전을 구성하는 불전이다. 용화전은 미륵불을 봉안한 건물이면, 미륵불은 관음전의 관음보살과 더불어 대광명전의 비로자나불의협시하고 있는 부처이다. 미륵보살은 석가여래에게 장차 미래에 부처님이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보살로 미래불의 대표이다. 미래에 이 사바세상의 용화수 아래에 내려와 부처님이 되어 석가부처님이 못다 구제한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했으니 미륵불이 계신 곳은 바로 용화수아래, 즉 용화전인 것이다. 그러나 미륵불은 대광명전의 비로자나와 수기관계에 있는 부처로서 위계가 설정된다, 이러한 위계 관계는 건물의 배치뿐만 아니라 규모나 형태에서도 차별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용화전은 고려 공민왕 13년(1369)에 초창되었으나 현재의 모습은 대광명전과 같은 시기인 조선영조 원년 (1725)에 청성대사에 의해 중건된 것으로 나타난다. 평면적인 규모는 정면 3칸, 측명 3칸이지만 여타의 건물처럼 정면 중안의 어간이 넓어 직사각형의 평면을 갖는다. 기둥머리에서 평방을 가로지르고 평방 위에 주두를 놓아 포작을 구성한 방식을 여타의 건물과 유사하다. 또한 중앙 어간의 기둥머리부분은 보뺄목을 용머리로 조각한 점이나 포작형식이 다포계라는 점도 대광명전과 같아 동시대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우선 건물 규모가 작고, 내부 기둥이 없이 통간으로 처리되었다는 점, 중앙 어간에만 교살창을 달았다는 점, 포작을 출목수가 2출목이라는 점, 맞배지붕이라는 점에서 대광
대광명전은 비로자나불처을 봉안하는 곳이다 비로자나는 광명편조라는 뜻이므로 그 집을 대광명전이라 했고, 부처님의 이름을 따서 비로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모든 부처의 본위요, 근본이 되므로 진리의 몸이라는 뜻에서 법신불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비로자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달리 부르는 말에 지나지 않으니, 대광명전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집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중로전의 본전으로서의 위격을 갖추도록 설RP 되었을 것이다.
통도사 약지에 따르면 이 건물은 초창은 통도사 창건당시에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조선 영조 원년(1725)에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현재의 건물은 이 시기에 모습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건물의 기단은 통도사내 여타의 건물과 달리 잡석쌓기로 되어 있는데. 이는 중수과정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여진다. 기타의 건축요소들은 18세기초의 건축적 수법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건물은 평상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를 갖는다. 다만 정면이든 측면이든 중앙어간만은 그 기둥 간격이 3.7M 정도로서 좌우 협간의 기둥 간격인 2.4M정도보다 훨씬 넓다. 내부에는 뒤쪽으로 고주 한 줄을 세워 후불벽을 만들고 그곳에 불단을 설치하였으며, 앞쪽으로 기둥을 세우지 않은 것은 예불공간을 넓게 쓰려는 기능상의 요구를 만족시킨 것인다. 이에 따라 건물구조도 1개의 높은 내부 기둥과 7개의 도리를 구성된 1고주 7량의 구조틀을 만들었다.
이 건물의 외관은 비교적 안정되고 비례감을 갖춘 짜임새를 보여준다. 세부수법들은 하로전의 건물들과 큰 차이가 없으나 장중하고 화려하다는 점에서는 비길 바가 없다. 기둥머리에서 뺄목이 없이 평방으로 가로지르고 포작을 설치한 것은 동일하나, 정면 중앙 어간의 양기둥머리에 뺄목을 사실적인 용머리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한 것은 고급스러움을 더하여 준다. 공포의 쇠서에도 작은 용두와 봉두가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빗꽃살문의 창호 또한 석가모니의 부처가 계시는 집으로서의 품격을 효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초각의 예술적 솜씨는 포작의 모습에서 여실히 보여진다. 다포계 팔작집인 이 건물은 포작의 형식으로 보면 3출목으로서 하로전의 영산적과 같으나, 쇠서에 봉두나 연꽃을 조각한 솜씨는 정교하도 화려함에 있어 탁월하다, 포작의 장식성은 내부에서 더욱 화려하다. 쇠서마다 연꽃과 연봉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4출목으로 올렸고, 그 위에 층급화된 소란반자를 가구하였다. 연꽃이 만발하고 하늘에는 용과 봉황이 날아다니는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해냄으로써 목조가구의 표현가능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용화전
내부공간의 미륵의세계
용화전은 외부보다도 내부가 더 회려했던것 같다. 내부의 미륵불 좌상을 봉안한 이 전의 특징은 안쪽 공포를 5출목 형식으로 천장 높이까지 짜여져 11포의 화려한 공포구성하고 있던것이 가장 기억남는듯하다.
용화전은 대광명전, 관음전과 함게 통도사의 중로전을 구성하는 불전이다. 용화전은 미륵불을 봉안한 건물이면, 미륵불은 관음전의 관음보살과 더불어 대광명전의 비로자나불의협시하고 있는 부처이다. 미륵보살은 석가여래에게 장차 미래에 부처님이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보살로 미래불의 대표이다. 미래에 이 사바세상의 용화수 아래에 내려와 부처님이 되어 석가부처님이 못다 구제한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했으니 미륵불이 계신 곳은 바로 용화수아래, 즉 용화전인 것이다. 그러나 미륵불은 대광명전의 비로자나와 수기관계에 있는 부처로서 위계가 설정된다, 이러한 위계 관계는 건물의 배치뿐만 아니라 규모나 형태에서도 차별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용화전은 고려 공민왕 13년(1369)에 초창되었으나 현재의 모습은 대광명전과 같은 시기인 조선영조 원년 (1725)에 청성대사에 의해 중건된 것으로 나타난다. 평면적인 규모는 정면 3칸, 측명 3칸이지만 여타의 건물처럼 정면 중안의 어간이 넓어 직사각형의 평면을 갖는다. 기둥머리에서 평방을 가로지르고 평방 위에 주두를 놓아 포작을 구성한 방식을 여타의 건물과 유사하다. 또한 중앙 어간의 기둥머리부분은 보뺄목을 용머리로 조각한 점이나 포작형식이 다포계라는 점도 대광명전과 같아 동시대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우선 건물 규모가 작고, 내부 기둥이 없이 통간으로 처리되었다는 점, 중앙 어간에만 교살창을 달았다는 점, 포작을 출목수가 2출목이라는 점, 맞배지붕이라는 점에서 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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