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 론
제1부 창조와 구원역사에서 사랑의 일치
(전문 요약)
언어의 문제
에로스와 아가페 - 차이와 일치
성경의 신앙이 지닌 새로움
예수 그리스도 - 강생하신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사랑
제2부 카리타스 -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의 사랑 실천
(전문 요약)
삼위일체 사랑의 표현인 교회의 사랑
교회의 본분인 사랑
정의와 사랑
오늘날의 사회 환경에서 사랑의 봉사의 다양한 구조
교회의 사랑 실천의 고유한 형태
교회의 사랑 실천을 위한 책임자들
결 론
제1부 창조와 구원역사에서 사랑의 일치
(전문 요약)
언어의 문제
에로스와 아가페 - 차이와 일치
성경의 신앙이 지닌 새로움
예수 그리스도 - 강생하신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사랑
제2부 카리타스 -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의 사랑 실천
(전문 요약)
삼위일체 사랑의 표현인 교회의 사랑
교회의 본분인 사랑
정의와 사랑
오늘날의 사회 환경에서 사랑의 봉사의 다양한 구조
교회의 사랑 실천의 고유한 형태
교회의 사랑 실천을 위한 책임자들
결 론
본문내용
도원에서 탄생했는지 설명해 줍니다. 또한 인류의 발전과 그리스도교 교육을 위한 수많은 활동들을 펼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서, 처음에는 수도회와 탁발 수도회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교회의 역사에 걸쳐 여러 남녀 수도회들이 헌신하여 왔습니다. 몇 분의 이름만 들어 보더라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이냐시오 데 로욜라, 천주의 성 요한, 가밀로 데 렐리스, 비첸시오 드 폴, 루도비카 드 마릴락, 주세페 B.코톨렝고, 요한 보스코, 루이지 오리오네, 캘커타의 데레사와 같은 성인들이 선의의 사람을 위하여 사회적 사랑의 영원한 모범으로 우뚝서 있습니다. 이 성인들은 역사 안에서 참된 빛을 비추는 분들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41. 성인들 가운데에도 가장 탁월한 모범은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모든 성덕의 거울이신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우리는 성모님께서 사촌 엘리사벳과 “석 달 가랑”(1,56)함께 지내시면서 출산이 가까워진 사촌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시어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Magnificat anima mea Dominum).” (루카 1, 46)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성모님께서는 일생의 모든 계획을 드러내십니다. 곧,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고 기도와 사랑을 통해서 만나는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세상이 좋아집니다. 성모님의 위대함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들어 높이시고자 한 사실에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겸손되이 그저 주님의 종이 되기를 바라실 뿐입니다(루카 1,38.48 참조).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오로지 하느님의 계획에 온전히 당신을 맡김으로써 세상 구원에 이바지하리라는 것을 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희망의 여인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셨기 때문에, 천사의 방문을 받고 이러한 약속에 결정적인 봉사를 하시도록 부름을 받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믿음의 여인이십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께 “믿으셨으니, 복되시나이다.”(루카 1,45 참조)하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성모님 영혼의 초상인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는 온전히 성경의 실, 하느님 말씀에서 자아낸 실로 짜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모님께서 하느님 말씀에 얼마나 익숙해 계신지, 그 말씀들을 얼마나 속속들이 알고 계신지가 드러납니다. 하느님 말씀이 그분의 말씀이 되며, 그분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에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생각이 얼마나 하느님 생각을 따르고, 성모님의 의지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일치되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젖어 계셨기 때문에 강생하신 말씀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여인이십니다. 어찌 그러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 안에서 하느님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는 신앙인이시니, 성모님께서 사랑하는 여인이 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보이는 그분의 고요한 몸짓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시고 예수님께 알려 드리는 그분의 섬세함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드님께서 새로운 가정을 세워야 하신다는 것을 아시고, 어머니의 때는 예수님의 참된 때(요한 2,4;13,1 참조)인 십자가와 더불어 올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뒤로 물러나 계신 겸손함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달아날 때,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십니다(요한 19,25-27 참조). 나중에 오순절 때에는 이 제자들이 성모님 주변에 함께 모여 성령을 기다립니다(사도 1,14 참조).
42. 성인들의 삶은 지상에서의 일생이 아니라 죽은 다음 하느님안에 살며 활동하는 것까지 다 관련됩니다. 성인들에게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은 인간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으로 인간에게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성모님에게서 이를 가장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께서 당신 제자에게, 곧 요한과 그를 통하여 모든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하신 말씀은 모든 세대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집니다.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모든 믿는 이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은 그들의 온갖 요구와 바람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함께 모일 때에나 성모님의 어머니다운 자애와 동정녀의 순결과 아름다움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성모님의 자애로운 은총을 체험하고 언제나 그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사랑을 체험합니다. 모든 대륙과 문화에서 성모님께 바치는 감사의 증언들은 자기를 찾지 않고 오로지 자비를 베푸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또한 신자들의 신심은 그러한 사랑을 어떻게 가능한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직관입니다. 그러한 사랑은 하느님과 이루는 가장 내밀한 일치를 통하여 영혼이 완전히 하느님으로 충만해질 때에 가능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의 샘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마신 이들이 다시 “생수의 강들이 흘러 나오는”(요한 7,38) 샘이 되게 합니다.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끊임없이 새로운 힘을 얻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교회를, 교회의 사명을 그리고 사랑의 봉사를 맡겨 드립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어머니께서는 세상에 참된 빛을,
당신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주셨나이다.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시어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선의 샘이 되셨나이다.
저희에게 예수님을 보여 주소서.
저희를 예수님께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어
저희도 참된 사랑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목마른 세상 한가운데에서
생명의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되게 하소서.
41. 성인들 가운데에도 가장 탁월한 모범은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모든 성덕의 거울이신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루카 복음서에서 우리는 성모님께서 사촌 엘리사벳과 “석 달 가랑”(1,56)함께 지내시면서 출산이 가까워진 사촌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시어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Magnificat anima mea Dominum).” (루카 1, 46)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성모님께서는 일생의 모든 계획을 드러내십니다. 곧,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고 기도와 사랑을 통해서 만나는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세상이 좋아집니다. 성모님의 위대함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들어 높이시고자 한 사실에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겸손되이 그저 주님의 종이 되기를 바라실 뿐입니다(루카 1,38.48 참조).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오로지 하느님의 계획에 온전히 당신을 맡김으로써 세상 구원에 이바지하리라는 것을 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희망의 여인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셨기 때문에, 천사의 방문을 받고 이러한 약속에 결정적인 봉사를 하시도록 부름을 받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믿음의 여인이십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께 “믿으셨으니, 복되시나이다.”(루카 1,45 참조)하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성모님 영혼의 초상인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는 온전히 성경의 실, 하느님 말씀에서 자아낸 실로 짜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모님께서 하느님 말씀에 얼마나 익숙해 계신지, 그 말씀들을 얼마나 속속들이 알고 계신지가 드러납니다. 하느님 말씀이 그분의 말씀이 되며, 그분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에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생각이 얼마나 하느님 생각을 따르고, 성모님의 의지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일치되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젖어 계셨기 때문에 강생하신 말씀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여인이십니다. 어찌 그러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 안에서 하느님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는 신앙인이시니, 성모님께서 사랑하는 여인이 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보이는 그분의 고요한 몸짓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시고 예수님께 알려 드리는 그분의 섬세함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드님께서 새로운 가정을 세워야 하신다는 것을 아시고, 어머니의 때는 예수님의 참된 때(요한 2,4;13,1 참조)인 십자가와 더불어 올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뒤로 물러나 계신 겸손함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달아날 때,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십니다(요한 19,25-27 참조). 나중에 오순절 때에는 이 제자들이 성모님 주변에 함께 모여 성령을 기다립니다(사도 1,14 참조).
42. 성인들의 삶은 지상에서의 일생이 아니라 죽은 다음 하느님안에 살며 활동하는 것까지 다 관련됩니다. 성인들에게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은 인간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으로 인간에게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성모님에게서 이를 가장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께서 당신 제자에게, 곧 요한과 그를 통하여 모든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하신 말씀은 모든 세대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집니다.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모든 믿는 이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은 그들의 온갖 요구와 바람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함께 모일 때에나 성모님의 어머니다운 자애와 동정녀의 순결과 아름다움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성모님의 자애로운 은총을 체험하고 언제나 그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사랑을 체험합니다. 모든 대륙과 문화에서 성모님께 바치는 감사의 증언들은 자기를 찾지 않고 오로지 자비를 베푸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또한 신자들의 신심은 그러한 사랑을 어떻게 가능한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직관입니다. 그러한 사랑은 하느님과 이루는 가장 내밀한 일치를 통하여 영혼이 완전히 하느님으로 충만해질 때에 가능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의 샘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마신 이들이 다시 “생수의 강들이 흘러 나오는”(요한 7,38) 샘이 되게 합니다.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끊임없이 새로운 힘을 얻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교회를, 교회의 사명을 그리고 사랑의 봉사를 맡겨 드립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어머니께서는 세상에 참된 빛을,
당신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주셨나이다.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시어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선의 샘이 되셨나이다.
저희에게 예수님을 보여 주소서.
저희를 예수님께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어
저희도 참된 사랑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목마른 세상 한가운데에서
생명의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