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풍속사 : '르네상스에서 섹스혁명까지'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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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풍속사 : '르네상스에서 섹스혁명까지' 감상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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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세계풍속사 - ‘르네상스에서 섹스혁명까지’를 읽고
보고서 작성을 위해 교수님께서 주신 리스트를 주욱 읽다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세계풍속사. 제목만 봐도 왠지 위험스런 분위기를 풍기고, 뭔가 자극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바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보았다. 책을 펼쳐 보니 노골적인 삽화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기쁨도 잠시였다. 이 책의 내용이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으며, 반어법과 은유법 등의 수사법이 굉장히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놓치게 되는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엄청나게 방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났다. 그러나 그 구성은 비교적 단순한 듯 하다. 성개방과 성억압, 다시 개방과 억압, 시대별 지역별 인종별 국가별 각종 성풍속의 양태를 넘고 넘다 보면 이 책의 끝에 와 있는 것이다. 파울 프리샤우어는 마치 변증법처럼 그 내용을 물 흐르듯 책 속에 기술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시대의 흐름과 역사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역시 기억에 남는 내용은, 사회가 바뀌고 여성이 경제력을 얻어 더 이상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이루어지고 보니, 섹스 또한 그 목적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전까지는 가족을 이루기 위한 섹스, 즉 결혼과 출산과 연계된 섹스만이 중세적으로 정상적인 섹스였던 반면, 이제 섹스는 출산과 가족 구성만이 목적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말은 오늘날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dink DINK족.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자.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를 일컫는 용어.
족을 들 수 있겠다. 섹스는 즐거움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수단이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의식이 섹스혁명 이후에 확립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세계풍속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서양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성풍속과 성관념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읽는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다만 이 과목이 서양사개론이므로 그 내용은 나의 머리 속에만 남겨 두었다.
1.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르네상스는 인간의 재발견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고대의 자유분방했던 관능을 소생시킨 정신생활의 재생의 시대였다. 지상에서 금욕과 절제를 행하고 천국을 위해서 불신의 사도와 싸울 것을 명령한 가톨릭 교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러한 풍속의 변화에 일조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르네상스는 유럽의 수도원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전에 이슬람교도들이 아라비아 어로 번역한 고대 그리스의 학술서와 문학서들을 교회와 학자들의 통용어인 라틴어로 옮겼던 수도사들은 최초의 대학생들이기도 했다. 지식을 익히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는 데는 특별한 조건이 없었으며 대학생 연합은 향락욕과 신분의식을 공유했다. 예를 들어 볼로냐의 대학생들은 수도사처럼 내숭을 떨었다고 알려졌는데, 그들은 낮 동안만 수도사처럼 행동했으며, 밤에는 매춘부의 꽁무니를 좇아다니던 호색한들이었다. 학생들은 누구나 연초에는 공부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맹세했으나 그것은 모두 위선자의 공염불이었다.
한편 이 당시 여성의 평가는 매우 낮았다. 여성 역시 이러한 평가에 별로 저항하지 않았는데, 현실이 평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직 상대에 대한 일편단심을 다룬 파블리오 fabliaux. 일상 생활에 뿌리를 둔 관능적이고 해학이 넘치는 우화시.
도 없지는 않았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이야기가 그러했는데,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의 관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은 끊어질 수 없는 지고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신에 대한 사랑은 다른 어떠한 사랑보다 강하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매춘은 공공연히 성행했다. 교회는 남성들의 혼외정사를 법률로 인정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 따라 매춘은 결코 억압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장려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독신인 신자들에게 매춘부와 결혼할 것을 권장하였다. 빈에서는 참회한 여자들을 위해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 건물에는 세금과 사용료가 면제되었다.
그러나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과 힘든 수업보다는 부도덕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더 좋아한 매춘부들은 직접 장사를 할 수 없는 경우 주로 뚜쟁이 짓에 나섰다. 뚜쟁이들은 은신처로부터 나와 수도원과 홍등가, 모든 술집들을 뒤지고 다니며 뚜쟁이 짓을 하고 현찰을 손에 넣었다.
남자들은 창가에서 성욕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그 여성이 존경받는 사람일지라도 명예를 잃게 되었으며, 한번 방종한 여자로 낙인이 찍히면 매춘부들보다 더한 욕을 먹어야 했다. 여성은 일상생활에서 남자에 비해 아주 적은 권리밖에 소유하지 못했다.
도시의 풍기는 문란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제일은 기독교의 축일이 아닌 사순절에 앞서서 3일, 또는 1주일간 즐기는 명절. 카니발.
사육제였다. 베네치아의 남녀 귀족과 근면한 남녀 주민들은 억제할 줄 모르는 정욕의 기쁨 속에 빠져들었다. 남녀 모두는

키워드

섹스,   풍속사,   파울,   프리샤우어,   르네상스,   혁명,   풍속,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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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8.11.10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9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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