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가신신앙(家神信仰)
Ⅲ. 무속신앙
Ⅳ. 공동체신앙(당산제)
1. 당산제의 성격
2. 기능
1) 종교적 기능
2) 사회적 기능
3) 정치적 기능
4) 축제적 기능
Ⅴ. 기독교신앙
1. 신앙의 의미에 대한 신학적 고찰
2. 신앙의 의미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Ⅵ. 감리교신앙
1. 성서
2. 전통
3. 이성
4. 경험
Ⅶ. 원불교신앙
1. 일원상 진리의 신앙
2. 사은 신앙
Ⅷ. 고대 삼국의 미륵신앙
1. 고구려, 신라의 미륵신앙
2. 백제의 불교와 미륵신앙
3. 삼국시대 이후의 미륵신앙과 현재적 관점
참고문헌
Ⅱ. 가신신앙(家神信仰)
Ⅲ. 무속신앙
Ⅳ. 공동체신앙(당산제)
1. 당산제의 성격
2. 기능
1) 종교적 기능
2) 사회적 기능
3) 정치적 기능
4) 축제적 기능
Ⅴ. 기독교신앙
1. 신앙의 의미에 대한 신학적 고찰
2. 신앙의 의미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
Ⅵ. 감리교신앙
1. 성서
2. 전통
3. 이성
4. 경험
Ⅶ. 원불교신앙
1. 일원상 진리의 신앙
2. 사은 신앙
Ⅷ. 고대 삼국의 미륵신앙
1. 고구려, 신라의 미륵신앙
2. 백제의 불교와 미륵신앙
3. 삼국시대 이후의 미륵신앙과 현재적 관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악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 (사물)을 전제하지 않은 진리를 표현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일원상 진리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의 전제한 일원상 진리를 설명하고자 할 때, 그 일원상 진리의 내용을 사은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은 사상이 인간의 삶과 수행을 인도하기 위한 진리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나의 존재를 전제로 하였을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천지로 대표되는 우주 자연 환경은 나의 존재를 있게 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우주 자연 환경과 나와의 즉시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는 항상 은(나의 존재를 지지해 주는)의 관계라 볼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러한 구체적이고 즉시적인 관계를 넘어선 궁극적 관계는 분명 은이다. 즉, 천지자연은 때론 우리의 생명과 안위를 위협하는 대상이지만 그래서 천지자연과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는 항상 은혜의 관계는 아니지만, 천지자연은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궁극적인 은이다. 그래서 소태산은 천지와 개체간의 관계를 천지은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것이 생명체이든 혹은 사물이든 간에 모든 존재들은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하나의 장(field)을 구성하고 그 속에서 존재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장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그 존재는 성립될 수 없다. 그래서 그 존재를 궁극적으로 존재케 하는 바탕 또는 환경으로써의 장 그것이 곧 천지로 표현된 것이다.
다른 한편, 부모는 나라는 존재를 구체적으로 있게 한 대상이므로 부모와 나와의 관계를 은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부모는 구체적인 부모를 의미할 수도 있고, 총체적 의미로써의 부모를 의미할 수도 있고, 아주 추상적 개념으로써의 부모를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떠한 개념으로 쓰였던 간에, 천지은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존재나 부모와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관계가 항상 은적이라 볼 수 없는 측면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주어지면 그 존재를 전제하였을 때 그 존재를 가능케 하였던 대상은 경이롭고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한 존재를 가능케 하였던 대상에 대해 은혜의 관계를 직시하고 이를 부모은이라 이름하였다. 생명의 장으로써의 동포들, 그리고 질서의 구심점으로써의 법률들도 나라는 존재를 전제하고 그 존재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나와 나를 둘러싼 존재들과의 관계를 은으로 파악한 것이다. 일원상 진리는 우주 만유 허공 법계에 구현된다. 그래서 모든 존재가 일원상 진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존재들이 어떤 존재인 나에 대해 맺은 관계의 본질을 恩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 은은 어떤 사물의 본질적 속성이나 독립된 작용에서 갖추어져 있는 존재를 가르키는 용어는 아니다. 그것은 어떤 존재를 전제하였을 때 그 존재와 다른 존재간의 관계의 성격에 관한 규정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 충만한 진리 그 자체를 일원상 진리라 표현하였는데 그러한 충만된 진리의 구현체들로써 만물들이 드러났을 때 그 만물들은 서로 의존하여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 서로는 서로를 있게 하는 근원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생명체일 경우는 그 생명을 있게 한 존재이므로 그와 총체적 대상과의 관계를 은으로 보았던 것이다.
자연 과학의 한 분야인 생물학에서 주장해 오고 있는 패러다임을 검토해 봄으로써 우주 자연의 개체들간의 관계의 본질을 살펴보기로 한다. 생물학은 다아윈으로 대표되는 진화론에 의해 생명체들 간의 관계를 생존을 위한 종들간 또는 개체들간 잔인한 투쟁으로 인식이다. 개체들은 자신의 종을 무한 증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도 자연적 견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종으로 지구를 완전히 뒤덮는데는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무한 증식 능력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같은 종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하지 않고 다른 종과 공존하면서 유지되는 것은 적대 세력들의 견제 능력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 드려지고 있는 지식체계)은 이러한 공존 체제에 대한 해석이 다아윈의 살벌한 경쟁과 투쟁의 개념으로부터 조화와 협동의 관계로 시각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면, 모든 종들의 무한 개체 증식 능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들은 놀라울 정도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맺으면서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개체로 보았을 때는 먹이를 위해, 보금자리를 위해, 때론 햇빛과 물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 어떤 종이나 개체도 다른종이나 개체를 제거한 상태에서 자신의 종으로 우리의 공유 환경을 독점하려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서로 상호 관련을 맺으면서 동적 균형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 체계의 비밀은 생물학 또는 생태학의 발달로 우리에게 친숙한 지식이 되었다. 생태학 발전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귀중한 지식은 모든 존재들간의 상호 의존성 (interrelatedness)이다. 모든 생명체의 종들이 자신의 삶들을 준비하며 치열하게 생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연히 다른 종들의 삶의 기반을 형성시켜 나간다. 자신의 삶을 위해 다른 종들을 배제하거나 해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분명 모든 종들은 자신들의 삶을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같은 종의 다른 개체나 또는 다른 종들과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살아남기 위해 휴식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투쟁의 상황으로 그리거나 또는 먹이를 물어뜯느라 이 (齒)와 발 (足)이 피로 붉게 물들여진 상태로 자연을 묘사하여 왔다. 그러나 많은 누적된 발견들에 따르면 종들은 다양한 기제들 (mechanisms)을 이용하여 이러한 살벌한 경쟁을 완화하고 공존과 협동의 장을 마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 개체들간 또는 종들간의 관계의 본질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한때는 경쟁과 투쟁의 관계로 파악하였던 것이 이제는 협동과 조화 또는 균형과 공존, 공유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개체들간에 생사를 건 투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한 영양과 그 뒤를
다른 한편, 부모는 나라는 존재를 구체적으로 있게 한 대상이므로 부모와 나와의 관계를 은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부모는 구체적인 부모를 의미할 수도 있고, 총체적 의미로써의 부모를 의미할 수도 있고, 아주 추상적 개념으로써의 부모를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떠한 개념으로 쓰였던 간에, 천지은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존재나 부모와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관계가 항상 은적이라 볼 수 없는 측면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주어지면 그 존재를 전제하였을 때 그 존재를 가능케 하였던 대상은 경이롭고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한 존재를 가능케 하였던 대상에 대해 은혜의 관계를 직시하고 이를 부모은이라 이름하였다. 생명의 장으로써의 동포들, 그리고 질서의 구심점으로써의 법률들도 나라는 존재를 전제하고 그 존재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나와 나를 둘러싼 존재들과의 관계를 은으로 파악한 것이다. 일원상 진리는 우주 만유 허공 법계에 구현된다. 그래서 모든 존재가 일원상 진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존재들이 어떤 존재인 나에 대해 맺은 관계의 본질을 恩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 은은 어떤 사물의 본질적 속성이나 독립된 작용에서 갖추어져 있는 존재를 가르키는 용어는 아니다. 그것은 어떤 존재를 전제하였을 때 그 존재와 다른 존재간의 관계의 성격에 관한 규정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 충만한 진리 그 자체를 일원상 진리라 표현하였는데 그러한 충만된 진리의 구현체들로써 만물들이 드러났을 때 그 만물들은 서로 의존하여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 서로는 서로를 있게 하는 근원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생명체일 경우는 그 생명을 있게 한 존재이므로 그와 총체적 대상과의 관계를 은으로 보았던 것이다.
자연 과학의 한 분야인 생물학에서 주장해 오고 있는 패러다임을 검토해 봄으로써 우주 자연의 개체들간의 관계의 본질을 살펴보기로 한다. 생물학은 다아윈으로 대표되는 진화론에 의해 생명체들 간의 관계를 생존을 위한 종들간 또는 개체들간 잔인한 투쟁으로 인식이다. 개체들은 자신의 종을 무한 증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도 자연적 견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종으로 지구를 완전히 뒤덮는데는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무한 증식 능력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같은 종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하지 않고 다른 종과 공존하면서 유지되는 것은 적대 세력들의 견제 능력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 드려지고 있는 지식체계)은 이러한 공존 체제에 대한 해석이 다아윈의 살벌한 경쟁과 투쟁의 개념으로부터 조화와 협동의 관계로 시각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면, 모든 종들의 무한 개체 증식 능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들은 놀라울 정도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맺으면서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개체로 보았을 때는 먹이를 위해, 보금자리를 위해, 때론 햇빛과 물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 어떤 종이나 개체도 다른종이나 개체를 제거한 상태에서 자신의 종으로 우리의 공유 환경을 독점하려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서로 상호 관련을 맺으면서 동적 균형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 체계의 비밀은 생물학 또는 생태학의 발달로 우리에게 친숙한 지식이 되었다. 생태학 발전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귀중한 지식은 모든 존재들간의 상호 의존성 (interrelatedness)이다. 모든 생명체의 종들이 자신의 삶들을 준비하며 치열하게 생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연히 다른 종들의 삶의 기반을 형성시켜 나간다. 자신의 삶을 위해 다른 종들을 배제하거나 해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분명 모든 종들은 자신들의 삶을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같은 종의 다른 개체나 또는 다른 종들과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살아남기 위해 휴식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투쟁의 상황으로 그리거나 또는 먹이를 물어뜯느라 이 (齒)와 발 (足)이 피로 붉게 물들여진 상태로 자연을 묘사하여 왔다. 그러나 많은 누적된 발견들에 따르면 종들은 다양한 기제들 (mechanisms)을 이용하여 이러한 살벌한 경쟁을 완화하고 공존과 협동의 장을 마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 개체들간 또는 종들간의 관계의 본질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한때는 경쟁과 투쟁의 관계로 파악하였던 것이 이제는 협동과 조화 또는 균형과 공존, 공유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개체들간에 생사를 건 투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한 영양과 그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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